러 "한일, 웃음 속에 칼 감춰" 맹렬 비난…한중일 정상회의 '견제구'
한중일 정상회의 직후 北도 불만 표출…북중러 한계 곳곳서 감지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러시아가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언급하며 "한국과 일본이 위선적 행동을 보였다"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북중러 3각 밀착이 원하는 수준으로 진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화풀이'를 중국이 아닌 한일에 돌리는 모양새다.
러시아 외무부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한중일 정상회의 관련 질문을 받고 "베이징, 서울, 도쿄의 문제"라면서도 고사성어인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속에 칼을 감추고 있다)를 언급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중국에 '미소 뒤에 칼을 숨긴다'라는 말이 있다"라며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감독하는 반중·반러 성향의 군사 외교 '클럽'에 참여하는 일본과 한국의 행동에 적절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들은 지역 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중심의 안보 구조를 약화하고 동북아·남중국해·대만 주변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라고 비판했다.
한중일 3국은 지난 27일 서울에서 4년 5개월 만에 정상회의를 재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이번 회의를 통해 '정상회의 정례화' 기조를 재확인하고 경제·통상, 인적 교류, 기후변화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미중 패권 경쟁 심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국제사회가 이른바 '민주주의 대(對) 권위주의 국가'로 블록화되는 가운데 이번 한중일 정상회의에 중국이 성의 있는 모습을 보이며 참가한 것을 두고 대회 개최 그 자체로 유의미한 외교적 함의가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이번 반응은 한일 양국과 협력의 공간을 넓히는 중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방러로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을 즈음해 기존의 중러 연합군사훈련에 북한을 참여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발신한 바 있다.
'북중러 3각 연대' 가동을 통해 '한미일 3각 협력' 등에 대응하겠다는 논리인데,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 검토 사실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의 입장과 달리 북중러 3각 구도에 있어선 '거리두기'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철저히 중러, 북중 양자 차원에서만 협력 도모를 모색하고 있다.
이달 16일~17일 1박2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북중러 3각 구도 진전의 기류는 감지되지 않았다.
대신 양 정상은 "양국은 북한과의 대결을 고조시켜 한반도 무력 분쟁과 긴장 고조를 야기할 수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 행동에 반대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통해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 책임론'을 제기했는데 이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이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북한도 최근 북중러 3각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접은 것으로 보이는 조짐이 감지된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끝난 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국이 무슨 '비핵화'와 '평화의 안정'에 대해 운운하는 것 자체가 지역 나라들과 국제사회에 대한 우롱이며 기만"이라고 주장했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공동 선언문엔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라는 내용이 명시됐다. '각각 재강조'라는 표현은 중국이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것을 중국이 받아들인 것은 최근 정세를 봤을 때 꽤 전향적 자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에 북한이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해 공동성명을 비난한 것은 결국 중국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고 우리 정부도 판단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인 러시아가 현재 가장 공을 들여야 하는 국가는 단연 중국"이라며 "이런 가운데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한 북러 양측의 불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국이 바라보는 북한, 러시아는 양자 관계는 유지하지만, 북러가 협력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선 부정적이다"라며 "이에 중러 양국보다 북·중 양자 차원에서 불편한 불협화음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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