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대학가에 퍼진 퍽치기 괴담…'10만원' 때문에 살인

강선애 2024. 5. 3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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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30일 방송된 '비 오는 밤 갑자기'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김종서, 간미연, 개그우먼 미자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비 오는 날 갑자기

혹시 알고있는 괴담 있어? 자유로에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 홍콩할매 괴담, 빨간 마스크를 한 여자가 아이들을 해친다는 괴담 같은 것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온갖 괴담이 떠돌았어. 이런 괴담이 퍼지면서 겁에 질린 아이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일도 있었대. 그런데 이런 괴담은 누가, 왜 만드는 걸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가지 '썰'은, 아이들이 딴 데 새지 말고 집에 일찍 들어가게 하려고 이런 괴담을 만들었다는 거야. 그때는 아동 유괴사건이 빈번했던 때거든. 어때? 좀 일리가 있지?

이렇게 괴담은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아. 소문에 소문이 더해지는 게 대부분이지.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달라. 실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괴담이야. 한때 많은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진짜 괴담을 들려줄게.

때는 2003년 8월 20일 새벽.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 도서관이야. 회사원 홍 씨(가명)는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어.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거든. 그러다 시간을 확인한 홍 씨는 집에 가기 위해 짐을 챙겨 도서관 밖으로 나왔어. 그런데 비가 엄청 쏟아져. 우산을 펴든 홍 씨는 학교 앞 하숙집으로 향해.

여름방학 기간에 비까지 와서일까? 거리엔 행인 한 명 보이질 않아. 지하도를 지나는데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그렇게 걸음을 서두르던 그때, 순간 홍 씨의 의식이 끊기고 말았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홍 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게.

"밤에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거든요.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지하도 건너서 대로변을 따라 걷고 있었고, 그 다음 기억이 아무 것도 없어요. 걷던 중간에 기억이 끊긴 거죠. 저는 이제 피곤해서 잔 줄 알았어요. 잠을 깨서 일어나보니까 병원인 거죠. '이게 뭐지? 왜 내가 여기 있지? 이게 웬일이지?' 그랬죠."

-홍 씨(가명)

정신을 차렸더니 병원 중환자실이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옆에 있던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해.

"환자분... 퍽치기 당하셨어요."

퍽치기, 들어봤어? 길 가는 사람을 퍽! 때리고 돈을 훔쳐서 도망가는 강도행위를 말해.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 피해자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남기게 돼. 자칫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어. 얼마 안되는 돈을 빼앗기 위해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안기는 범죄, 아주 비열하고 악질적인 범죄야.

이런 사건의 문제 중 하나가, 피해자가 언제 발견되는 거야. 지나가는 행인이 쓰러진 홍 씨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홍 씨는 사망했을 지도 몰라. 머리에서 출혈이 엄청 심했거든.

"119에 누가 신고를 해주지 않았으면 저는 죽었을 거예요. 아마. 왜냐하면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홍 씨, 퍽치기 피해자

진단명은 외상성 경막하 출혈.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서 뇌와 경막 사이에 출혈이 일어난 거야. 홍 씨가 학교 앞 지하도를 나와 걸어가던 그 때, 누군가 힘껏 그녀의 머리를 때린 걸로 보여. 그리고 홍 씨의 가방을 들고 달아났어. 가방 안에는 핸드폰과 지갑이 있었어. 빼앗긴 지갑 안에는 얼마가 들어 있었을까?

신용카드 2장과 현금 2만 8천원. 지갑에 신용카드가 있었지만, 그걸 노린 건 아냐. 비밀번호를 묻지도 않고 때렸으니까. 범인이 노린 건 현금이야. 한 사람의 생명을 뺏으려고 한 대가로, 고작 2만 8천원을 손에 넣은 거야.

"차라리 돈 달라고 그랬으면 줬을 거예요. 근데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무조건 친 거죠. 그깟 돈이 뭐라고."

-홍 씨, 피해자

범인은 2만 8천원을 손에 넣었어. 하지만 홍 씨가 입은 피해는 훨씬 커. 병원 치료를 받느라 직장도 쉬어야 했어. 오랫동안 준비했던 자격증 시험도 볼 수 없었대. 홍 씨를 가슴 아프게 했던 건 따로 있어. 피해는 홍 씨 한 사람에 그치지 않았어. 가족, 친구, 지인들 모두가 큰 충격과 상처를 받은 거지.

"사실 트라우마는 저희 가족들이 많이 겪었어요. 제가 다쳤을 때 머리 쪽을 다치면서 피가 다 흘러서 옷이 피범벅이 됐거든요. 저희 가족들하고 아는 사람들하고 다 놀랬죠. 너무너무 다들 화를 냈죠.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병원에서 피범벅이 된 옷을 받아서 가져간 저희 가족이... 그때 심정을 얘기하는데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제가..."

-홍 씨, 피해자

그렇게 홍 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누군가 찾아왔어. 피해자 진술 조사를 위해 형사가 찾아온 거야.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할 말이 없어. 왜? 공격당한 기억 자체가 없으니까. 그러다보니 조사는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어. 그런데 병실을 나가던 형사가 무심코 이런 말을 해.

"골치 아프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냐."

이게 무슨 뜻일까? 이 사건 피해자가 홍 씨만이 아니라는 거야. 연쇄 퍽치기 사건일지도 몰라.

"저도 그런 연쇄된 그 중에 하나라고는 생각을 안 했어요. 누가 그렇게 생각을 하겠어요? 그 얘기를 듣고 '아, 내가 연계된 시리즈 중에 하나였구나'. 조금 심각했던 거 같아요."

-홍 씨, 피해자

▲ 연쇄 퍽치기 사건

이 지역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학가야. 무려 다섯 개의 대학이 모여 있어. 홍 씨 사건이 일어나기 약 20일 전인, 2003년 7월 29일 새벽 4시. 북아현동에서 혼자 귀가하던 여성이 누군가에게 머리를 맞고 쓰러졌어. 그리고 일주일 후인 8월 5일 새벽 3시. 또 다른 피해자가 발견돼.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던 여성이 병원에 실려갔어. 그리고 보름이 지난 8월 20일 새벽 1시, 홍 씨가 변을 당한 거야.

사건이 일어난 지역을 보면 어때? 동일범에 의한 연쇄 범죄일까? 좀 애매해. 하지만 세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어. 첫 번째 범행시간. 세 건 다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에 일어났어. 두 번째, 범행대상이 같아. 모두 혼자 걸어가는 여성을 노렸어. 그리고 세 번째, 범행수법이 똑같아. 피해자들 모두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어. 어쩌면 동일범이 저지른 걸지도 몰라.

그럼 혹시 피해자들 중에서 범인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지 않을까? 다른 피해자의 이야길 들어볼게.

"(어디를 맞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김선희(가명), 연쇄 퍽치기 사건 피해자

홍 씨와 마찬가지로 다른 피해자들도 범행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어. 나를 해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거, 너무 무서울 거 같지.

이미 세 명의 피해자가 생겼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세 건의 퍽치기. 범행은 여기서 멈췄을까?

추석 연휴 마지막 날, 2003년 9월 13일 새벽 5시. 가을비가 내리던 날이었어.

바로 여기 대로변에서 골목 쪽으로 막 들어선 곳에서, 범행이 또 일어났어. 이번엔 마포경찰서 관할 지역이야.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형사님의 얘길 들어볼게.

"그때 당시가 추석 연휴중이니까 우리도 연휴를 쉬고 있었는데, 아침에 형사들 동원령이 내려져서 '강도 사건 발생했으니까 강력반 형사들 현장으로 와라' 이렇게 연락이 왔었어요. 피해자는 이미 병원으로 실려가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현장에 도착했어요. 큰 도로를 지나서 철길 바로 옆이에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기 직전이라고 보면 돼요. 큰 대로변인데 '야. 참 용감하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런 곳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었죠."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피해자는 인근 미대에 다니는 졸업반 여학생이었어. 나이는 스물세 살, 이름은 오유리(가명)야. 추석 연휴, 고향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이었대. 택시에서 내려 자취방으로 가다가 누군가에게 머리를 공격당한 걸로 보여.

"여자가 바닥에 큰 대 자로 누워 있었고. 외상은 없었고 머리 뒷부분에 피가 굉장히 많이..."

-당시 현장 출동 경찰

"두개골이 너무 부어있고 그래가지고 함몰돼 있고 그러다보니까, 어떤 치료를 할 수가 없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너무 부어있고 그래서. 그러니까 이제 거의 사망할 수도 있겠다라는 형사들의 생각은 있었죠. 깨어나면 다행이지만 혹시 사망할 수도 있으니까, 준비를 하면서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고 봐야죠. (사망사건이면) 생각도 달라지고 무게도 달라지니까…"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진단은 후두부 함몰 골절. 아주 단단한 도구로 맞은 것 같아. 심지어 여러 번 공격당한 걸로 보여.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야. 하지만 심하게 부어 있어서 손을 댈 수가 없었대. 결국 유리 씨는... 다시 깨어나지 못했어.

이틀 후, 그녀가 다니던 학교 게시판에 이런 글이 붙어.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학교생활에 임했던 4학년 오유리 학우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과 학우들과 오유리 학우와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 모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친구는 되게 밝은 아이였고요. 그리고 항상 주변을 잘 챙기고, 누군가가 힘들어하거나 뭔가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는 서슴없이 도와주려고 애쓰고, 상대방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을 엄청 보였던 친구였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하루아침에 옆에, 그리고 자주 봤던 친구가 없어진 거에 대해서 너무나 슬프고도 너무나 분노가 많았고요. 뉴스에서 볼 법한 일들이 너무나 가까운 친구가 그렇게 된 충격과 슬픔이 엄청 많았습니다."

-피해자의 지인

많은 친구들이 큰 충격을 받았어. 그래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힘든 이야기라고 해.

대학가에서 연이어 일어난 강도사건은 이제, 강도살인 사건으로 바뀌었어. 언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지 몰라. 마포경찰서에 바로 전담반이 꾸려져. 강력반 5개팀이 전부 이 사건에 투입돼.

▲ 얼굴 없는 범인을 잡아라

범인을 잡기 위해선 먼저 뭐부터 해야 할까? 범행동기부터 밝혀야지. 전담반 형사들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봤어.

혹시, 취객이 벌인 우발적인 범행이 아닐까? 아니면 원한 관계? 어쩌면, 애정문제 때문일 수도 있어. 하지만 수사를 해봐도, 별다른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어. 앞선 사건들처럼, 범행현장에서 피해자의 가방은 발견되지 않았어. 결국 형사들은 결론을 내렸어.

"아, 이거는 돈을 노린 강도, 전형적인 강도사건이구나."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리고 형사들은 주변 관할지역 경찰서들에 문의를 했어. 혹시 최근에 퍽치기 사건이 발생한 적 있냐고. 확인 결과, 김형사는 깜짝 놀라. 바로 옆 관할 경찰서에서 비슷한 사건이 여러 건 있었다는 거야. 홍 씨가 강도를 당한 이후 세 명의 피해자가 더 있었어. 그것도 불과 일주일 만에.

"확인한 결과, 우리 인접 서에서 5건인가 6건이 발생된 것이 있더라고요. 그때는 좀 놀랐죠. 이제."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야. 다들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채 발견됐어. 사망한 유리 씨는 7번째 피해자였던 거야. 이 사건, 동일범에 의한 연쇄 퍽치기 사건이 틀림없어.

상황이 아주 심각해. 범행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범행장소도 골목길 안쪽에서 점점 대로변으로 옮겨지고 있어. 범인이 점점 자신감을 가지게 된 거야. 이대로라면 더 큰 피해가 생길 수도 있어.

"처음에는 '고민도 많이 했다'라는 판단을 했어요. 대개 골목길에서만 많이 일어나고. 근데 이제 그 이후에 점점 이제 큰 도로변으로 나오는 걸 봐서 (범인이) 대범해지고 있고 적극적이다…"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퍽치기 전담반은 7건의 범행을 분석해서 범인을 찾기 시작해. 하지만 시작부터 벽에 부딪히고 말아. 범인을 특정할 단서가 하나도 없어. 지금이라면 CCTV를 뒤져보면 되잖아. 하지만 이 때 2003년에는 CCTV가 많지 않았어. 그럼 목격자는 있었을까? 범행시간이 모두 새벽이잖아. 목격자도 없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딱 하나 남아있는 단서가 있어. 7건의 범행현장에 공통적으로 남아있는 단서. 바로 피해자의 머리에 남은 상처. 그 흔적을 분석하면 범행도구를 알아낼 수도 있어. 분석 결과 범행도구는 '한쪽은 뭉툭하고 한쪽은 뾰족한 모양으로 추정된다'라고 나왔어. 피해자들 상처를 분석해 보니, 넓게 함몰된 흔적과 깊게 파인 흔적이 동시에 보였어. 전담팀에서 추정한 범행도구는 이거였어.

'정망치'라는 도구야. 공사현장에서 주로 벽돌공이 사용하는 도구로 알려져 있어. 하지만 이걸 단서로 수사해봤지만 용의자를 찾기는 어려웠다고 해.

"정망치가 어디서 만들어지고 어디서 판매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이것도 확인을 했는데 사실 그거는 건설현장에서 너무 많이 쓰이더라고요."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결국 피해자의 상흔만으론 결정적인 단서를 찾을 수 없었어. 이렇게 수사는 또다시 벽에 부딪혔어. 이렇게까지 단서가 없는 사건은 김 형사도 처음이었대.

▲ 프로파일링으로 범인 분석

이럴 때 필요한 수사기법이 있지. 바로, '프로파일링'. 프로파일링은 범행의 패턴을 분석해서 범인의 프로필을 만들어가는 수사기법이야. 범행이 일어난 지점을 분석해서 다음 범행장소를 예측하거나 범인의 거주지를 추정하는 걸 지리학적 프로파일링이라고 해.

범행이 발생한 장소들을 보고, 뭘 알 수 있을까? 첫 번째 범행은 다른 범행 장소들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어. 하지만 나머지 범행은 대체로 모여 있어. 큰 도로를 따라 범행을 저지르고 있어. 범인은 자신이 익숙한 공간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있을 가능성이 커. 그렇다면 이런 추정이 가능해. '범인은 이 부근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목해야 할 건 하나 더 있어. 바로, 범행 시간.

"범행시간대가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였는데, 부부로 사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매일 나가는 남편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애들이랑도 같이 산다 하더라도 그 시간에 매일 나가는 건 좀 이상할 것 같아서, 이건 '혼자 사는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판단했죠."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리고, 사건들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어. 처음 홍 씨 사건 때 날씨, 기억나지? 비가 내렸다고 했잖아? 공교롭게도 유리 씨 사건 때에도 비가 왔어. 다른 사건들도 날씨를 확인했어. 그런데, 범행이 일어난 날 대부분 비가 내렸어.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어쩌면 범인의 패턴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범인은 왜 비 오는 날 범행을 한 걸까?

비가 오는 새벽이면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 그리고 우산을 쓰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져. 또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아. 피해자에게 발각될 가능성도 적은 거야.

"우리 피해자도 비 오는 날 당했었고, 비 오는 날 그런 어떤 사고가 발생됐다는 것이 확인됐더라고요. 그래갖고 '아, 이거 비 오는 날 좀 조심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그때부터 갖게 됐죠."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렇게 형사들은 공통점을 토대로 가설을 정했어. '범인은 비 오는 날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노린다'라고.

근데, 비 오는 날 여성을 노리는 범죄, 혹시 생각나는 영화 있지 않아? 영화 '살인의 추억'에 비슷한 내용이 있어. 영화 속 범인은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노려. 그럼 혹시, 범인이 이 영화를 본 게 아닐까? 거기에 한 후배 형사는 "퍽치기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있었는데, 혹시 그 영화의 모방범죄 아닐까?"라고 의심해.

영화 '와일드카드'라고 본 적 있어? 퍽치기 일당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야. '살인의 추억'이 개봉한 건 그해 4월 말. '와일드카드'는 5월 중순에 개봉했어. 그리고 연쇄 퍽치기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7월부터야.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이젠 발로 뛸 차례야. 일단 범행지역 인근에 혼자 사는 남자를 찾아야 해. 그런데 문제가 있지. 여기가 어디야? 대학가야. 대학가에 혼자 사는 남자가 엄청 많을 거 아냐. 게다가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아. 이런 상황에서, 혼자 사는 남자, 어떻게 찾아야 할까? 형사들은 중국집을 떠올렸어. 중국집에서 1인분만 배달시키는 남자를 조사하는 거야.

형사들이 찾아간 곳이 또 있어. 바로, 비디오 대여점. 영화 '살인의 추억'과 '와일드카드'를 둘 다 빌려 본 남자를 찾는 거야. 그런데, 대학가 일대에 중국집과 비디오 대여점을 합치면 몇 군데 정도 될까? 이 지역에만 100여 곳이 훌쩍 넘어. 거길 일일이 찾아가서 혼자 사는 남자를 추렸더니 500명이 넘었대. 형사들은 그 500명의 행적을 전부 확인했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었대.

"계속 똑 같은 일의 반복이죠. 사실은 전부 지쳐가는 입장이에요. 어떤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결과가 없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어제 뭐했어?' 하면 한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수사를 하는 거야 안하는 거야' 이런 말도 나오게 되는 거죠."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 대학가에 퍼진 괴담

강력반 형사들은 낮이면 발로 뛰며 용의자를 찾았어. 그리고 밤이 되면 이 일대에서 일제히 잠복근무에 나서.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범인이 잡힐 때까지 비번은 없어. 강력반 5개 팀, 서른 명 전원이 2인 1개조, 총 15개조로 나눠서 관할지역 곳곳을 밤새 지킨 거야. 다들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텐데, 그 중 김 형사에겐 남다른 고충이 있었어. 김 형사는 그 당시 38세, 당시 기준으로 늦은 나이에 결혼했대. 그런데 신혼살림을 차리자마자 이 사건이 터진 거야. 매일 밤 잠복근무에 나서는 동안, 아내는 홀로 신혼집을 지켜야 했어. 김 형사는 그게 그렇게 미안했다고 해.

그렇게 잠복 18일째가 되는 날이었어. 형사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소식이 들려와. 오늘 밤, 비가 내린다는 예보야. 바로 비상이 걸리고, 당직반 형사들까지 총동원 돼.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야간 잠복에 나서.

비 오는 새벽, 거리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아. 대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불을 다 끈 채 조용히 어두운 골목길을 주시해. 그렇게 새벽 3시 반이 됐을 무렵, 무전이 들어왔어.

"여기는 연희동 주택가. 퍽치기 피해자 발견"

그렇게 막고 싶었던, 8번째 범행이 일어났어. 또 한 여성이 쓰러진 채 발견된 거야. 머리가 함몰될 만큼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대. 범인은 지갑과 핸드폰을 갖고 사라진 후였어. 역시 동일범의 소행이야.

"지쳐갈 때쯤 그때 또 한 번 사건이 발생했어요. 다른 서 관할에서 이루어졌는데, 근데 그때 만약에 우리 관할에서 범행을 했으면 잡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생기고. 근데 어찌 됐건 범행은 계속 이어진다, 이건 계속 일어나는 사안이다, 지금 우리가 어느 정도 지쳐서 수사를 종결짓는다거나 이래선 안 된다, 이건 끝까지 잡아야 한다, 잘못하면 다음에는 사람이 죽는다… 또 생각이 들었죠."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이렇게 강력반 형사들이 잠복에 매달릴 때, 인근 대학가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어.

"알죠. 그거 모르는 사람 거의 없거든요. 비 오는 날 신촌에서 여대생만, 범행을 저지른다고 들었어요. 쇠파이프로 뒤에서 머리를 친다는데 생각만 해도 너무 소름끼치는 것 같아요."

-당시 H대 학생

"소문이 되게 무성했죠. 무슨 얘기까지 들었냐면, '신촌에서 누가 죽었다. 그게 첫 번째가 아니다'"

-피해자 과친구

"소문 많이 돌았죠. 여기 저기, 누구도 당했다. 누구도 당했다. 미대 애들만 당했다... 그 이후로 진짜 있었던 일인지 모르겠는데 사건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피해자 과후배

학생들을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이 소문은 곧 '홍대괴담'이라고 불리게 됐어. 원래 이 동네는, 밤늦은 시간까지 인파로 붐비는 대학가야. 그런데 괴담이 퍼진 이후, 밤 열시만 되면 발길이 뚝 끊겨. 클럽의 음악소리도 뚝 끊기고 말아. 비 오는 밤 여학생들을 노린다는 소문에 이 일대 모두가 불안에 떨었어.

"특히 여학생 같은 경우에는 밤늦은 귀가나 늦게까지 남아서 하는 그런 과제들을 빨리 일을 마치고 귀가를 하거나 아니면은 남자 선배들이나 남자 동기들이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지인

이 흉흉한 괴담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방법은 하나 뿐이야. 하루빨리 범인을 잡는 것 밖에 없어.

▲ 드디어 잡힌 범인

마포서 강력반 형사들은 잠복근무를 계속 했어. 그리고 김 형사는 속으로 다짐해. 이놈은 반드시 나타날 거고,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얘는 무조건 또 한다. 잡힐 때까지 한다. 무조건 잡아야 된다라는 생각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고 봐야죠."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8번째 범행 이후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았어. 그래서일까. 범인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그렇게 숨 막히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잠복 한 달째 되는 날...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 8번째 사건 이후, 11일 만이야. 형사들의 신경도 한껏 곤두섰어. 그리고, 그날따라 김 형사는 이상한 예감이 들더래. 전날 밤 희한한 꿈을 꿨거든.

"그날 꿈을 꿨었는데 도둑이 우리 집에 막 그 창문으로 들어오더라고요. 근데 도둑인데 아기를 업고 있어요. 내가 그 도둑과 아이를 잡아서 올렸는데, 그때 아이가 막 웃던 것이 생각나더라고요. 근데 그날 왠지 모르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런 생각을 조금 했었어요."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그렇게 야간 잠복근무가 시작돼. 김 형사는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핏발이 선 눈으로 주위를 살펴.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지나도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 않아. 밤 12시가 넘어서부터는 한 사람도 안 보여. 어느새 시간은 새벽 네 시. 좀 있으면 잠복을 마칠 시간이야. 초조한 마음에 김 형사는 가만있을 수 없었대.

사람이 다닐만한 곳을 찾아, 차를 몰고 좀 더 번화한 장소로 향해. 비 오는 새벽, 거리엔 행인은 물론, 지나가는 차조차 보이지 않아. 그런데 그때, 멀리서 뭔가가 눈에 들어와. 저 앞 대로변 횡단보도에, 한 여성이 혼자 우산을 들고 서 있어.

김 형사는 속도를 줄이면서 여성 옆을 지나쳐. 그 순간 얼굴을 봤는데 외국인 여성이야. 김 형사는 근처에 차를 세웠어. 왠지 이상한 예감이 들더래. 아무래도 이 분이 무사히 가는 걸 봐야 할 것 같았대.

"느낌이 이상해요. 그래서 건물까지 들어가는 것만 보고 가야지 했어요. 여성분이 안전하게 귀가하는 모습을 보려고."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보행신호로 바뀌고 외국인 여성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해. 김 형사는 그 모습을 백미러로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길을 건넌 여성이 맞은 편 건물 앞에 멈춰서. 그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해. 그때였어. 김 형사의 눈에 이상한 게 보여. 건물 앞에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뭔가 시커먼 형체가 움직이는 거야.

"차량 사이에서 뭔가 검은 물체가 탁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번쩍 하는 게 있었어요. 뭔가 반짝하면서 빛나더라고. '아, 저거구나!' 하면서 차를 시동 켜고 이제 돌리는데, 얘는 이미 너무 빨리 가 있는 거야. 그 여자분 바로 뒤에 붙은 거야. 근데 운이 좋아서 진짜, 그때 마침 신문배달부가 샥 지나가는 거야. 오토바이가. 그러니까 이놈이 오토바이 소리 나니까 다시 뛰어들어 가더라고. 그니까 우리는 차를 돌리고 가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오토바이가 지나가자마자 다시 또 나오는 거예요."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때마침 나타난 신문배달부 덕분에 위기를 넘겼지만, 아직 끝난 게 아냐. 오토바이가 지나가자 놈은 다시 어둠 속에서 나왔어. 외국인 여성의 뒤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니, 손에 든 뭔가를 치켜들어. 절체절명의 그 순간! 차창 밖을 향해 김형사가 외쳤어.

"야! 이 자식아!"

그러자 놈이 멈칫해. 놀란 여성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어. 김 형사는 차를 세우고 놈에게 달려갔어. 범인은 손에 든 둔기를 휘두르며 거세게 저항해. 그러다가 둔기를 던져 버리고는 냅다 도망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져. 그리고 2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김 형사는 마침내 범인을 검거하는 데 성공해. 한 달간의 잠복 끝에 드디어 퍽치기범을 현장에서 검거한 거야. 이렇게 범인의 9번째 범행은 미수에 그쳤어.

▲ 증거를 찾아라

범인의 정체는, 32살 김씨. 모든 걸 포기했는지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어. 동대문에서 봉제사업을 하던 그는 사업실패로 2억 5천만원의 빚을 지게 됐대. 채권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린 끝에 아내와 아들과 떨어져 혼자 살게 됐다고 해. 김 씨가 살던 옥탑방은 검거된 장소 바로 옆이었어.

범인을 검거했지만, 아직 아주 중요한 일이 남아있어. 바로, 증거를 찾는 일이야. 지금까지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잖아? 지금은 범인이 순순히 자백을 하지만, 법정에 가서 말을 바꿀 수도 있거든. 증거 없이 자백만으로는 죄를 입증하기 어려워. 이제부턴, 앞선 8건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를 찾아야 해.

김 형사는 김 씨를 데리고 그가 살던 옥탑방으로 올라가. "피해자들한테 뺏은 물건 어딨어?" 묻자 김 씨가 침대 밑을 가리켜. 거기에는 피해자들에게 빼앗은 신분증과 신용카드들이 잔뜩 있었어. 그런데 가장 중요한 증거가 없어. 바로, 사망한 피해자 유리 씨의 물건만 보이지 않아.

"확인해 보니까 침대 밑에 카드, 주민등록증 이런 것들이 잔뜩 있어요. 대여섯 명 정도의 신분을 밝힐 수 있는 증거가 나타났는데, 사망자인 피해자의 물품은 하나도 없었어요."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만약 그게 없다면 살인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워. 김 씨에게, 추석 연휴 때 저지른 범행 피해자에게 빼앗은 물건은 어디 있냐고 추궁했어. 그러자 김 씨가 "집에 오다가 철길 옆에 버렸다"라고 말해.

그렇게 김 형사는 증거물을 찾아 나섰어. 그런데 김 씨가 얘기한 장소에 가보고, 큰 한숨이 나와. 철길 옆이 완전 풀숲이야. 무성한 풀숲을 헤치며 싹 다 뒤졌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더래.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형사들은 제초기를 구해와서 철길 옆에 풀들을 잘라내기 시작해.

"없으면 어떡하지? 이놈이 거짓말하는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죽어라 찾았어요."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형사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어. 고생 끝에 결국 이걸 발견했어.

반만 남은 핸드폰. 액정부분은 사라지고 없고, 아래쪽 기판 부분만 남아있어. 철길 옆에 버렸다는 김 씨의 진술과 일치해. 이게 만약 피해자의 것이라면, 살인 혐의를 입증할 수 있어. 그럼 이 핸드폰, 유리 씨의 것이 맞을까? 아직 몰라. 핸드폰이 반쪽 뿐이라, 작동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야. 게다가, 한 달간 풀숲에 방치됐잖아. 그동안 비를 맞기도 했고. 이게 과연 제대로 켜지기라도 할까?

김 형사는 반쪽 핸드폰을 들고 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갔어. 대리점 직원은 일단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았어. 그리고 전원버튼을 눌렀어. 그러자 다행히 작동이 됐어. 하지만 아직 사망한 피해자의 핸드폰인지 단정할 순 없어. 확인해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형사는 발신 버튼을 눌러봤어.

"불이 들어왔을 때 '혹시 마지막 통화자가 누굴까' 통화를 눌러보면 마지막 통화자가 나오니까. 잘 아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마지막 통화를 눌러봤던 거 같아요."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액정이 없어서 마지막 통화자가 누군지는 확인이 안 돼. 그리고 스피커 부분이 없으니까 통화도 역시 안 되는 상태야. 그런데 바로 그때, 반쪽 휴대폰이 아니라 김 형사의 휴대폰 전화벨이 갑자기 울렸어. 김 형사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어.

"형사님? 방금 죽은 제 딸한테 전화가 왔어요."

사망한 피해자 유리 씨의 아버지야. 결국 이 반쪽 핸드폰의 주인은 유리 씨가 맞았어. 드디어 살인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은 거지.

"그 때는 '이제 됐다' 안도의 한숨을 냈었죠. 이제 됐다…"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근데 너무 신기하지 않아? 반쪽만 남은 핸드폰인데. 한달간 비를 맞으면서 풀숲에 방치돼 있었어. 방수도 안 되는데, 어떻게 작동이 된 걸까.

만약에 휴대폰 기판이 위로 놓여 있었다면, 고장이 났을 거야. 그런데 휴대폰을 발견했을 때, 기판이 아래로 가도록 놓여 있었다고 해. 어쩌면 이 기막힌 우연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싶은 유리 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 범행의 대가, 그리고 처벌

그럼, 과연 범행에 쓰인 도구는 무엇이었을까? 길이 51cm, 무게 2.5kg의 금속 방망이였어. 들어보면 굉장히 묵직해.

"이거에 한 대 맞아서 안 쓰러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참 잔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문상 경감, 당시 사건 담당 형사

채권자에게 시달리던 김 씨는 돈을 벌기 위해 퍽치기를 시작했대. 추리했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 따라 했던 건 아니었어. 7년 전 사기 혐의로 교도소에 있을 때, 퍽치기 수법을 배웠다고 해. 출소 후, 퍽치기를 위한 금속 방망이를 제작했어. 그리고 비 오는 새벽이면 이걸 들고 거리로 나섰어.

김 형사는 김 씨에게 물었어. '지갑만 뺐지, 왜 사람이 죽을 정도로 때렸냐'고. 김 씨의 대답은 뭐였을까.

"보통은 한 대만 때려도 순순히 가방을 주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가방을 안 놓고 버티잖아요. 그래서 몇 대 더 때렸습니다."

그녀가 끝까지 놓지 않던 그 가방 안에는, 어머니가 준 용돈 10만 원이 들어있었다고 해. 그걸 뺏기지 않으려고 유리 씨가 가방을 놓지 않았던 거야. "그 10만 원 때문에 사람을 죽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김 형사가 묻자 김 씨는 이렇게 대답했어.

"지갑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르잖아요. 10만 원이 있을지, 100만 원이 있을지..."

1명을 사망하게 만들고 7명의 생명을 뺏을 뻔한 김 씨. 그 대가로 손에 쥔 현찰은 60만 원 정도였어. 그리고 김 씨는 피해자들에게 뺏은 돈으로 아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사줬다고 해.

뉴스에서는 일제히 김 씨의 구속사실을 보도했어.

"비 오는 날 새벽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강도짓을 해온 30대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꼬박 한달 동안 밤을 새운 경찰의 집요한 수사에 괴담의 주인공이 끝내 붙잡혔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비 오는 날이 좋을 것 같았어요. 사람이 많이 없으니까."

"채권자들한테 시달려서 채권자들이 사람 풀어서 죽인다고 해서 무서웠어요."

-당시 범인 진술 中

이렇게 2003년 대학가를 공포로 몰아넣은 괴담은 끝을 맺고 말아. 그리고 이듬해 김 씨의 재판이 열려. 검사는 강도살인, 강도상해 등 혐의로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해. 피해자들의 머리를 힘껏 내리치고 차가운 길바닥에 버려두고 간 행위는 살인미수, 혹은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로 봐야 한다는 거야. 그럼 판사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돈을 강탈할 목적으로 둔기로 사람을 때려 숨지게 하는 등 죄질이 나쁘고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 정도가 심각하다. 다만 피고인이 사업 실패 뒤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 생활비마저 떨어지자 범행을 저지르게 됐고, 범행 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피고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판결문 내용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어.

▲ 아물지 않은 상처

세 번째 피해자였던 홍 씨는 사건 한 달 후 병원에서 퇴원했어. 하지만 원래 지내던 하숙집으로는 돌아가지 못했어.

"살던 집이 하숙집이었는데 '내가 여기가 좀 무서운데?' '힘든 기억이 있는데'가 속으로 있지 않았었을까요? 좀 같은 길로 가는 게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제 집을 옮겼죠."

-홍 씨, 퍽치기 피해자

그리고 또다른 피해자는 얼굴도 모르는 범인을 두려워하며 지내야 했어.

"여기서 무슨 소리만 나면 (누가) 문 따고 들어오는 것 같아요. 바스락 소리만 나도 문 따고 들어오는 것 같고. 새벽에 잠 못 자고 좀 무서운 꿈 꾸고 나 잡아가는 꿈 꾸고…"

- 또 다른 퍽치기 피해자

이렇게 판결 이후에도 피해자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지내야 했어. 눈에 보이는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될 거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가 아물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범인에게 내려진 처벌이 가볍게 느껴지는 건, 피해자들, 그들의 가족, 친구들... 사건과 관련된 모두에게 남은 상처가 훨씬 더 크고 무겁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처음에 괴담 얘기로 시작했잖아. 빨간 마스크 괴담, 홍콩 할매괴담... 이 괴담이 유행했던 시기를 보면, 이전에 없었던 강력범죄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때였어.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가 이런 괴담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 앞으로는 이런 괴담이, 아예 발을 못 붙이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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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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