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호우, 우리]⑤ 한국, 1+1=3이 되는 길 찾아야…반지하 거주민 대책도 필요(끝)
[편집자 주] 최근 몇년간 지구촌은 그간 본 적 없는 큰 비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3월 케냐에선 홍수로 200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고 4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엔 12시간 동안 1년 치 비가 쏟아졌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집중호우로 34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매년 여름 강수가 집중되는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후변화가 현재 추세대로 지속될 경우 50년 내에 시간당 200mm의 비까지도 내릴 전망입니다. 이는 서울시가 대응할 수 있는 홍수량의 두 배입니다. 우리는 예견된 재앙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알아봤습니다.
● 서초2동에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비가 내린다면
강준석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팀은 서초2동에 하수관과 같은 그레이 인프라(콘크리트 기반 시설)를 확충했을 때와` 옥상 녹화나 투수성 포장과 같은 그린 인프라(도심 내 녹지요소)를 적용했을 때 침수가 얼마나 개선될 지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서초2동에 현재 기준의 100년 빈도 강우(시간당 92mm)와 기후변화 시나리오 RCP 4.5. RCP 8.5상 100년 빈도 강우(각각 시간당 103mm, 120mm)가 내린다고 가정했다. RCP 8.5는 인간이 지금의 추세로 온실가스를 저감 없이 배출할 경우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RCP 4.5는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상당히 실행될 경우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뜻한다.
모든 시뮬레이션에서 그레이 인프라의 빗물 처리 능력은 그린 인프라에 비해 월등했다. 서초2동에 RCP 8.5 시나리오 기준 100년 빈도의 비가 내리면 총 349만 8264세제곱미터의 빗물이 고이는 것으로 예측됐지만 특히나 비가 많이 모이는 지역의 하수관 단면적을 2배 늘렸다고 가정하면 고인 비의 45% 이상을 배수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 인프라를 적용했을 때 즉 서초2동에 있는 전체 건물 면적의 50%에 옥상 녹화를 적용하고 전체 불투수면적(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면적, 건물 제외)의 50%에 투수성포장을 적용, 전체 녹지 면적의 50%에 식생체류지를 적용했다고 가정하면 같은 양의 비가 내릴 때 고인 비의 9% 이상을 그린 인프라가 해결할 수 있었다.
이때 주목할 만한 점은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가 서로 상호보완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레이 인프라는 고인 비의 45% 이상을 배수해 확실한 성능을 보였다. 하지만 강우량이 늘수록 빗물 배수 처리 성능은 떨어졌다. 한편 그린 인프라는 강우량이 늘어도 비교적 동일한 빗물 배수 처리 성능을 유지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빗물 처리 용량이 큰 그레이 인프라의 장점과 빗물 처리 용량은 작으나 강우량이 증가해도 성능을 유지하는 그린 인프라를 함께 설치할 경우 두 인프라의 약점이 상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CP 8.5 시나리오에서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함께 적용할 경우 191만 6928세제곱미터의 빗물(고인 피의 54.8%)을 배수할 수 있다. 연구결과는 5월 5일 국제학술지 '서스테이너블 시티즈 앤드 소사이어티'에 발표됐다.
● 경기 수원에서 찾은 '1+1=3' 마법의 공식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함께 적용하면 마법의 공식이 탄생한다. 강 교수팀은 경기 수원시에 3시간당 200~400mm의 비가 내릴 때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로 얼마나 홍수를 막아낼 수 있을지 또 다른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하수도 정비 등 그레이 인프라를 확충할 경우 전체 홍수 유량의 20.04%를, 옥상 녹화, 투수성 포장 등 그린 인프라를 적용할 경우 6.55%를 막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레이 인프라가 막을 수 있는 홍수 유량이 전체의 20.04%, 그린 인프라가 막을 수 있는 홍수 유량이 6.55%라면 둘을 모두 확충할 경우엔 26.59%의 비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20.04+6.55=26.59다. 그런데 실제 시뮬레이션 결과에선 전체 비의 33.91%를 처리할 수 있다는 의외의 값이 나왔다.
3월 2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강 교수는 20.04+6.55=33.91이란 식을 두고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의 시너지"라고 설명했다.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함께 적용할 경우 강수량 조건에 따라 전체 비의 3.65~7.32%를 추가로 더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의 상호작용을 수치적으로 평가한 연구결과는 2023년 5월 6일 국제학술지 '서스테이너블 시티즈 앤드 소사이어티'에 실렸다.
● 그린 인프라 효과, 직접 비 내려보니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의 시너지, 그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직접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에 물을 부어볼 필요가 있었다. 4월 2일 경남 양산에 위치한 부산대 한국그린인프라·저영향개발센터(이하 센터)를 찾았다. 센터에는 옥상 녹화 시설, 투수성 포장, 식생수로 등 주요 그린 인프라가 설치돼 있다. 강우모사실험을 통해 이 같은 인프라의 빗물 처리 효과를 검증할 수도 있다.
"이게 시간당 200mm 비입니다!" 박재록 한국그린인프라·저영향개발센터 연구원이 레버를 돌리며 소리쳤다. 마른하늘에 비가 내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퍼졌다. '200mm'라는 수치는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의 계산에서 나왔다.
기후 전문가인 민 교수는 향후 50년 뒤 우리가 얼마나 큰 비를 겪게 될지 묻는 질문에 "기후변화에 의해 대기 중 수증기량이 많아지면서 현재까지 서울이 경험한 강수량 중 최댓값인 시간당 141.5mm에서 약 50% 증가한 정도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에 따라 센터에선 시간당 50mm, 100mm, 150mm, 200mm의 비가 내릴 경우 그린 인프라의 일종인 투수성 포장이 불투수성 포장에 비해 얼마나 비를 잘 투과시킬지 알아보는 실험이 진행됐다.
실험 결과 투수성과 불투수성 포장의 빗물 처리 효과는 눈으로 봐도 확연히 달랐다. 투수성 포장 위에 떨어지는 물은 바로 그 자리에 스며든 반면 불투수성 포장에 떨어진 물은 그대로 흘러 수로로 들어갔다. 차이는 실험 데이터로도 드러났다. 5월 8일 데이터 분석을 위해 박 연구원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 '그레이+그린=시너지'의 비결
"강수량이 달라져도 투수성 포장과 불투수성 포장의 빗물 처리 양상은 비슷합니다." 박 연구원이 그래프를 차례로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 그래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첨두유량과 총 유출량, 그리고 지체시간입니다."
땅에 떨어진 빗물은 땅속으로 스미거나 땅 위를 흐른다. 이렇게 땅을 떠나는 빗물의 양은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한 시점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에 더 많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세숫대야에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세숫대야가 가득 찬 직후 세숫대야에서 넘치는 물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다 점차 증가한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양과 세숫대야에서 넘치는 물의 양이 같을 때 평형지점에 도달한다.
땅을 떠나는 빗물의 양이 가장 많은 지점, 이 지점을 첨두유량이라고 부른다. 땅을 떠나는 비의 양이 많다는 건 결국 하수도로 들어가는 비의 양이 많아진다는 뜻이므로 첨두유량이 높다는 말은 홍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 된다.
한편 총 유출량은 이렇게 땅을 떠나는 물의 전체 양을 말한다. 빗물을 저장하는(저류) 기능을 갖춘 그린 인프라의 경우 땅속에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통을 설치한다. 이 통의 용량만큼 총 유출량이 줄어들게 된다. 총 유출량이 줄어든다는 말은 하수도를 포함한 전체 빗물 처리 인프라가 감당해야 할 빗물의 양이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짐을 덜어주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지체시간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첨두유량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 차이다. 그린 인프라는 지체시간이 길다. 빗물이 그린 인프라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빠져나오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그린 인프라가 그레이 인프라보다 지체시간이 길다는 말은 곧 그린 인프라가 홍수 발생 초기에 그레이 인프라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 준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레이 인프라는 그린 인프라보다 더 많은 양의 빗물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대신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 그레이 인프라의 처리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그린 인프라는 그레이 인프라로 들어갈 빗물의 일부분을 분담해 처리한다.
총 유출량을 줄여주는 빗물 저류 기능을 갖춘 그린 인프라가 대표적 예시다. 빗물 저류 기능이 없는 그린 인프라의 경우에도 지체시간이 길다 보니 빗물을 잠시 잡아 뒀다가 그레이 인프라로 흘려보내게 된다. 그린 인프라가 마련해준 여유시간 동안 그레이 인프라의 빗물 처리 부담이 줄어든다. 강 교수가 말한 '시너지'가 바로 이것이다.
● 그린 인프라 추가하면 비용 94% 아낀다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의 조합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지아 하이펑 중국 칭화대 환경공학과 교수팀이 중국 난징시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연구팀은 이곳에서 그레이 인프라만 활용해 빗물을 처리할 경우 필요한 비용과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활용해 빗물을 처리할 경우 필요한 비용을 비교했다. 이 비용에는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의 건설 비용과 운영 및 정비 비용 등 각 인프라에 전주기적으로 투입돼야 하는 비용이 포함된다.
비교 결과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동시에 설치하면 그레이 인프라만 설치했을 때보다 비용을 약 94% 아낄 수 있었다. 그린 인프라가 빗물 저류 등으로 경제적 이득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2019년 9월 2일 국제학술지 '리소스, 콘서베이션&리사이클링'에 발표됐다. (doi: 10.1016/j.resconrec.2019.104478)
이 같은 데이터에 힘입어 한국에서도 그린 인프라를 적용해 빗물을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빗물 요금'을 만들어 부동산 보유자가 자발적으로 그린 인프라를 증설하도록 유인책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권경호 스톰워터바이오 대표와 3월 22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권 대표는 "옥상 면적 비율을 기준으로 빗물을 배출하는 데에 대한 요금을 도입하자는 내용의 행정 소송을 2024년 초 제소했다"면서 "현행 하수 처리 요금을 보다 형평성 있게 재편하자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에선 내리는 빗물은 모두 하수도로 흘러간다. 이를 처리하는 데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사실 우리는 이미 빗물 처리에 대한 비용을 하수도 요금에 더해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 이 요금 기준이 상수도 사용량에 비례하게 책정되는 것이 현행 방식이다. 실질적으로 빗물을 많이 내보내지만 상수도는 덜 사용하는 쇼핑몰, 물류창고 등에서 지불하는 빗물 처리 요금이 빗물은 적게 내보내지만 상수도를 더 사용하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보다 더 저렴하다.
현행 하수도 요금의 불합리함을 지적해 빗물에 대한 책임이 더 많은 이들이 그린 인프라를 더 활용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권 대표의 의도다.
실제로 독일에서도 1985년 독일 연방행정법원과 지방고등법원이 빗물 사용료와 하수 사용료를 구분해 부과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이후로 빗물 요금이 자리 잡은 상태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건물주가 빗물을 처리하는 그린 인프라를 설치할 경우 빗물 요금을 감면해주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 그레이도 그린도 완벽한 대안일 수 없다면
다시 강 교수팀의 시뮬레이션으로 돌아가보자. 걸리는 점이 하나 있다. 시뮬레이션을 보면 서초2동이나 수원시나 그레이, 그린 인프라만으로는 쏟아지는 비를 전부 처리할 수 없다. 서울시에 빗물저류배수시설(대심도 빗물터널)을 지었을 때를 가정한 시뮬레이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당 200mm 비 앞에선 대심도 빗물터널도 홍수를 100% 막을 순 없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앞으로 기후변화에 의해 찾아올 극한호우를 100% 막아낼 수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레이 인프라와 그린 인프라를 통해서도 막아내지 못하는 홍수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4월 5일 조재웅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침수예측연구팀장은 과학동아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그레이 인프라나 그린 인프라와 같은) 구조적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새로운 구조물을 끝없이 짓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으므로 비구조적 대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점차 강한 비를 불러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라 발목 정도로 오는 비, 그러니까 20cm 정도 수위의 침수는 받아들여야 하는 미래가 온다고 지적한다. 그런 미래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약자다.
조 팀장은 "최소한 24시간 전에 극한호우를 경고해주기만 해도 최소한 30%의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저감할 수 있다"면서 "반지하 거주민, 이동 약자 등 취약계층의 대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회적 인프라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획물은 SNU 팩트체크 센터의 취재보도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 김소연 기자,특별취재팀= 이다솔 기자,특별취재팀= 전성훈 PD,특별취재팀= 신수빈 기자 lecia@donga.com,dasol@donga.com,pabiano95@donga.com,sb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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