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女골프 ‘파’만 할 건가[뉴스와 시각]

방승배 기자 2024. 5. 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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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영상을 다시 봤다.

전 국민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시름에 잠겨 있을 때 용기와 희망을 줬던 바로 그 경기.

30일 개막한 제79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 한국 선수 20명이 출전했다.

8경기에 출전해 5연속 우승을 포함, 6승을 하고 있는 '지구 최강' 넬리 코르다(미국)가 버티고 있는 데다 다른 아시아권 선수들의 실력이 한국 선수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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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배 체육부장

1998년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영상을 다시 봤다. 전 국민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시름에 잠겨 있을 때 용기와 희망을 줬던 바로 그 경기. 국민을 울컥하게 했던 CF에서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의 배경이 됐던 그 유명한 ‘호수 맨발샷’.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고 했던 가사 내용처럼 끝났던 경기에서 새삼스럽게 다가온 장면들이 있었다. 해저드 옆 경사진 깊은 러프에 박힌 볼을 치기 위해 물에 들어가려고 양말을 벗었을 때 드러난 박세리의 하얀 발. 새까맣게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팔·다리와는 달리 유독 하얗던 발은 얼마나 연습량이 많았을지를 가늠케 했다. 72홀 경기를 하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연장전 18홀을 치렀는데도 결판을 못 내자 재연장전을 벌인 경기 방식도 참 가혹해 보였다.

30일 개막한 제79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 한국 선수 20명이 출전했다. US여자오픈은 한국 선수 10명이 11승을 할 정도로 한국 선수와 인연이 깊은 대회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의 하락세가 몇 년 전부터 뚜렷해지면서 우승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다. 한국은 현재 12경기 무승이다. 8경기에 출전해 5연속 우승을 포함, 6승을 하고 있는 ‘지구 최강’ 넬리 코르다(미국)가 버티고 있는 데다 다른 아시아권 선수들의 실력이 한국 선수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진출한 한국 선수층이 얇아진 게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높아진 상금과 위상 등으로 굳이 미국 가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톱랭커들의 KLPGA→LPGA 코스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뀐 지가 좀 됐다. ‘우물 안’이 좋아지다 보니 ‘개구리’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도전정신은 둘째치고 스포츠맨십도 흔들린다. 최근 끝난 E1 채리티 오픈 2라운드에서 무려 8명의 선수가 기권했다. 몸이 아픈 경우도 있었겠지만, 평균타수 관리 의도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 총상금(9억 원)이 적은 편인 데다 상금의 일부를 자선기금으로 내야 하기에 선수들이 가져가는 상금이 적기 때문 아니겠냐는 골프계 안팎의 비판도 나왔다. 기권 선수들 때문에 출전 기회를 못 잡고 대기하다 짐을 싸야 하는 선수들의 절망감은 생각지도 못했을 터다.

선수들의 조로(早老)현상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심각하다. KLPGA에서는 20대 중반만 돼도 고참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임진희 선수가 LPGA에 도전한 이유 중 하나로 “선수 생활을 한국에서보다 더 하고 싶어서”라고 했던 인터뷰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54세 나이에 최근 KPGA 대회를 우승한 최경주 선수가 아니더라도 한·미·일 골프를 모두 석권하고도 40이 가까운 나이에 파리올림픽 출전 꿈을 버리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신지애를 보고 어린 선수들이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26년 전 박세리의 호수 맨발샷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벌타’를 먹고 안전하게 치는 것이 ‘코스 매니지먼트’상 더 확률 높은 선택일 수도 있었겠지만, 박세리는 승부처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을 했다. ‘버디’를 노리지 않고 따박따박 ‘파’ 세이브만 해서는 리더보드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기 어렵다.

방승배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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