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흑인 오고, 印尼상인 호주로… 亞의 ‘대항해시대’[북리뷰]

2024. 5. 3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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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500년 해양사
에릭 탈리아코초 지음│이재황 옮김│책과함께
亞해양, 서양인 진출 전부터 연결
유럽지배 시각 바다역사 고쳐써
15세기초 中 정화 함대, 阿 도달
16세기 열강들에 무역 등 큰 변화
아시아도 교역망 틈새활용 맞서
서구 제국들 남중국해 장악때도
동아시아·동남아 끈끈하게 응집
게티이미지뱅크

바다의 역사를 떠올릴 때 우리는 우선 대항해 시대를 떠올린다. 16세기 이후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대서양을 넘고 희망봉을 돌아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침략하고 정복하고 지배하는 과정을 생각한다. 그러나 바다의 역사를 단지 유럽의 팽창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아시아 500년 해양사’에서 에릭 탈리아코초 코넬대 역사학과 교수는 주로 유럽 지배라는 시각에서 기술해 온 아시아 해양사를 뿌리부터 고쳐 쓴다. 서양인이 드나들기 수천 년 전부터 아시아의 바다는 이미 역동적 네트워크로 엮여 왔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한국과 일본에서 아라비아반도와 홍해에 이르는 항구들을 드나들면서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고, 사상과 종교와 문화를 교환했다. 그 역사는 유럽인 진출 이후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바다는 항상 가장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연결 수단이었다. 16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국가 인도네시아 상인들의 활약은 유사 이래 눈부셨다. 그들은 동으로 오세아니아 쿨라 교역망에 뛰어들고 북으로 필리핀까지 항해했으며, 서로 자바인과 교류하고 남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드나들었다. 아마도 그들은 배를 타고 인도양을 건너서 동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나아간 듯하다.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벵골, 예멘 사람들도 기꺼이 계절풍을 타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들은 바다를 가로질러 아시아를 그물망처럼 잇는 무역 네트워크에 뛰어들어 부를 쌓고자 했다.

15세기 초 정화 함대가 아프리카에서 기린을 싣고 돌아온 데서 드러나듯 아시아의 해양 무역로는 북중국 해안가에서 인도양 서쪽 끝 동아프리카(모잠비크 소팔라)에까지 펼쳐져 있었다. 중국 등 아시아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아프리카 해안가 도시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게 그 증거다.

반대로 당나라 때 이미 중국에 흑인들이 드나들었다. 중국 역사엔 684년 한 곤륜인(崑崙人)의 죽음이 기록돼 있다. 송나라 이전에 이미 곤륜인은 중국에서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명나라 때 정성공은 흑인 호위대를 두기도 했다. 정화 함대의 원정은 아시아 교역망을 폭발적으로 촉진했다. 유럽인의 활동이 없었더라도 이 교역망은 갈수록 확대돼 오늘날처럼 번영하게 됐을 테다.

16세기 이후 유럽 열강이 밀려들면서 아시아 해양 교역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교역은 더욱 활발해지고, 해양 패권을 향한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야망은 거세졌다. 아시아인들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영국이 식민지 경영 및 상업적 이익 확보를 위해 아시아 해상 교역망을 재구성하고, 전통적 무역 중심지를 자기한테 유리하게 조정하는 동안, 또한 유럽 제국들이 이스탄불에서 부산까지 아시아 곳곳의 항구를 엮어 식민지 회로를 구축하는 동안, 아시아인들도 바다를 내주고 수동적으로 머무르는 대신 틈새를 찌르고 교역망을 흐트러뜨리는 등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이득을 챙기려 애썼다. 해양 무역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베트남조차 유럽인 도착 초기부터 중간 기지적 성격을 활용해 전통적 아시아 교역망과 유럽인 교역망을 넘나들면서 이득을 취했다. 19세기에 나라를 닫고 고립을 택했을 때 그들은 빠르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남중국해의 무역과 밀수를 통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단단히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을 섬세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 지역은 지정학적 중요성과 엄청난 물동량 때문에 늘 주변 국가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저자는 근대 이후 서구 제국주의 국가가 이 해역을 지배하는 동안 중국인 등 여러 국가의 사람이 서로 교역하고 습격하고 협상하면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오늘날에도 이 바다에선 이러한 응집성과 역동성이 여전히 작용 중이다.

저자는 장대한 500년 아시아 해양사를 ‘중국이 바다를 지배한다면’이라는 질문과 함께 마무리한다. 오늘날 중국은 정화 이후 600년 만에 아시아 해상 패권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바다는 정치나 권력이 아니라 언제나 무역의 힘, 즉 서아시아와 일본 사이 물결 위에서 펼쳐지는 두려움 없는 상인들의 욕망과 능력이 지배한다. 지난 2000년의 역사가 보여주듯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바다에선 대화와 타협을 중심에 놓은 관계가 중심에 놓이리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656쪽, 3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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