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특검법 재발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고려할 일
(시사저널=전영기 편집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자신이 진두지휘한 '순직 해병대원 특검법안'의 재의결이 국회에서 실패로 끝난 만큼 이 문제를 또다시 꺼내지 않았으면 한다.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동일한 법안이 아무런 사정 변경이 없었는데도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된다면 그 나라 입법의 안정성과 계속성 문제는 어떻게 되겠나.
해병대원 특검법의 원래 긴 이름 속엔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라는 용어가 들어있다. 즉, 이 법안은 시작부터 대통령실의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를 전제하고 있다. 사건의 범죄성를 시작 단계부터 설정해 놓고 설정값이 나올 때까지 파고들겠다는 의도가 법안 명칭에 배어있는 것이다. 특별검사든 일반검사든 이런 방식은 곤란하다. 대통령이 최종 임명할 특검 후보 2명을 야당이 모두 추천한다는 조항도 수사 주체의 편향성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법리에 맞지 않다. 보편적 법리에 맞지 않아도 '특별'이란 말을 붙이면 정치적으로 가능해진다는 발상법을 이젠 극복할 때가 되었다.
윤 대통령의 '버럭 화' '즉흥 스타일' 등으로 상황 악화
무엇보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국회 찬반토론에서 발언했듯이 "공수처가 현재 의지를 가지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일반' 수사기관인 공수처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후 미진하면 '특별'검사 얘기를 하는 것이 법 원리와 상식에 부합한다. 이재명 대표가 우물에서 숭늉 찾듯 특검법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조급증을 낸다면 설사 다수 여론이 특검법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물론 해병대원의 안타까운 죽음이 대통령 탄핵론으로 번질 정도로 커진 데는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문제가 적지 않았다.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종종 그의 벌컥벌컥 화를 내는 태도와 즉흥적인 의사결정 스타일, 정치 경력의 일천함에서 비롯된 국정 관리의 미숙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상황 악화를 자초하지 않았나 싶다.
상황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2023년 7월31, 8월2일 이종섭 국방장관과의 수차례 통화에서, 보기에 따라서는 버럭 화를 내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질책성 발언을 한 건 사실인 것 같다. 이른바 '격노설'의 배경이다. 대통령 주변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당시 "기소된 8명 가운데 사망한 해병대원과 함께 수색을 하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하사, 중사들이 있는데 이들이 왜 과실치사 범죄자가 되어야 하나. 작전 중 벌어진 일로 사단장에게 형사책임을 묻는다면 군 지휘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취지를 이 장관한테 전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군 사망자나 성희롱 등의 사건은 내부의 은폐, 조작을 막기 위해 외부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하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해병대 수사단은 수사권이 없지 않나"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작전 중 벌어진 일로 지휘관에게 형사책임 물어야 하나"
만일 이런 발언과 정황이 사실이라면 법 전문가인 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격노한 상태에서 이종섭 장관과 서너 차례 연속 통화를 했다거나, 개인 휴대폰을 사용했다거나, 그 후 박정훈 수사단장이 해임됐다거나 하는 점은 좀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그 자체로 위법이나 불·탈법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을 가리는 일은 한국의 법체계상 대통령을 포함해 고위 공직자의 불법·비위를 수사하게 돼있는 공수처가 담당하는 게 정상이다.
이 같은 사리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대표가 공수처를 생략한 채 또다시 특검을 고집한다면 애초부터 선출된 대통령 탄핵을 위한 기획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칼은 휘두를 때보다 칼집에 들어있을 때 더 묵직하고 강한 효과를 내는 법이다. 칼을 빼들어 실제 살상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십수 명에 불과하지만 그보다 뛰어난 검객은 칼집을 단지 부여잡는 것만으로 훨씬 많은 적을 두렵게 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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