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이것, 그렇게 예뻐져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5. 3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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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중식삼림(中食森林) ⑦] 꽃보다 '슈마이'… 딤섬 꽃만두의 탄생과 진화
 
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홍콩의 딤섬 만두는 그 모양이 너무 예뻐서 차마 젓가락으로 집어 입속에 넣기 아까울 때가 종종 있다. 슈마이도 그런 딤섬 만두 중 하나다. 만두 끝이 꽃잎처럼 벌어져 있고 그 속에 빨갛게 익은 새우가 꽃술인 양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어 꽃만두라고도 부른다.

슈마이(燒賣)라는 광동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만두는 광동성에서 발달해 홍콩이 영국 통치를 받던 시절 홍콩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또 홍콩에서도 슈마이를 흔히 광동 음식(粤菜)으로 분류하지만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다.

원래는 중국 북방 만두에서 비롯돼 광동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훈툰(餛飩)이라는 북방의 작은 만두가 홍콩의 딤섬 전문점에서 완탕(雲呑)으로 발전한 것과 비슷하다. 애써 비유하자면 중국 짜장면이 한국에서 중국과는 완전 다른 한국식 짜장면으로 변한 것과도 닮았다. 실제로도 지금 북경을 비롯한 중국 북방에서 오리지널 슈마이 만두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딤섬 만두 슈마이가 홍콩 음식인지 혹은 그 뿌리가 중국 북방 만두인지가 우리한테 뭐가 중요하냐 싶기는 하다. 하지만 중국 음식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그 구분을 알아두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고 입담이 좋다면 딤섬 먹을 때 흥미로운 화젯거리로 삼을 수도 있다.
 

중국 진남(晉南). 출처 : 바이두

 
시기적으로는 원나라 무렵 내지 그 이전에서 생겨난 음식으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슈마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우리니라 문헌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고려말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朴通事)』에 장사를 하러 떠난 고려 상인이 당시 원나라 수도였던 대도(大都)에서 이 만두를 먹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슈마이의 뿌리는 일단 중국 진남(晉南)으로 추정한다.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남부 지역으로 예로부터 만두의 원료가 되는 밀 재배가 활발했던 곳이다. 동시에 산서성 성도인 태원(太原)에 자리를 잡고 중국 전역을 무대로 장사를 했던 상단집단인 진상(晉商)의 본고장이기도 했다. 슈마이는 이들이 찻집에서 상담을 하며 상업활동을 할 때 차와 함께 먹었던 만두였다.
 

진상(晉商) 거주지. 출처 : 바이두

 
시기적으로는 원나라 무렵 내지 그 이전에서 생겨난 음식으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슈마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우리니라 문헌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고려말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朴通事)』에 장사를 하러 떠난 고려 상인이 당시 원나라 수도였던 대도(大都)에서 이 만두를 먹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박통사에는 지금 홍콩에서 쓰는 단어인 슈마이(燒賣) 대신 벼줄기 끝 초(稍), 보리 맥(麥) 자를 써서 초맥, 중국어 발음으로 사오마이라고 나온다. 초맥, 즉 사오마이는 만두 윗모습이 밀 이삭이 파여 벌어진 것처럼 생겼기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혹은 몽골 내지는 서역의 언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북방 만두 훈툰(餛飩)이 홍콩에서 완탕(雲呑)으로 바뀐 것처럼 사오마이(稍麥)도 홍콩에서 슈마이(燒賣)로 이름이 바뀌었다.
 

완탕(雲呑). 출처 : 바이두

 
주목할 부분은 진나라 상인들이 먹었던 만두, 그리고 원나라 때 고려 상인들이 먹었던 사오마이 만두, 즉 슈마이는 교자 만두처럼 음식점에서 식사를 위해 먹었던 만두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신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상담을 하거나 담소를 나누며 차와 함께 가볍게 먹었던 다과였었고 딤섬(點心)이었다. 그렇기에 양보다는 질이 중요했고 맛과 함께 보기도 좋아야 했다. 슈마이가 꽃만두라고 불리울 만큼 꽃잎이 열린 것처럼 예쁜 만두가 된 이유다.

슈마이의 윗부분이 꽃이 핀 것처럼 열린 이유는 또 있다. 슈마이가 발달하기 시작한 원나라는 상업을 중시하는 국가였다. 다양한 나라의 상인들이 활동했는데 서역과의 교역도 활발해 회교도인 서역의 색목인(色目人)이 많이 들락거렸고 그런 만큼 지역별 민족별로 기피하는 음식도 다양했기에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돼지고기가 들었는지, 양고기가 들었는지, 파와 함께 넣었는지 등을 구분하기 위해 만두 윗부분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청나라 때 소설 『유림외사』에는 돼지고기를 넣은 슈마이와 거위 기름과 설탕을 넣어 찐 슈마이 등으로 구분하는 내용이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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