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 ‘자생력 없는’ 한국의 프로 스포츠, 이대로 둬선 안된다…미국의 프로농구를 보라
프로스포츠는 냉엄한 곳. 미국 남자프로농구(NBA)가 얼마나 차가운지를 보여준다. 냉정하다 못해 잔인하다 할 정도. 여자농구(WNBA)와의 차이에서다. 연봉 등에서 어마어마한 격차는 프로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블룸버그 뉴스는 프로여자농구가 2023년 2430억~2700억 원(1억8000만-2억 달러)을 번 것으로 ‘추산’만 했다. 공식 발표가 없는 탓. WNBA 대변인은 이 추산 등 재정 상황에 대한 어떤 언급도 거부했다. 밝힐 수 없을 만큼 사정이 좋지 않다는 뜻. ‘분명한 진실’을 피하는 것이 여자농구의 불문율처럼 보인다.
■남녀농구 수익 차는 50배 이상
NBA는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프로스포츠. 23년 총수입은 14조3000억 원(106억 달러) 가량. 여자농구의 50배가 넘었다. 이러니 스태판 커리, 캐빈 듀란 등 최고 선수들은 700억 원 가량의 연봉을 받는다.
그에 비해 여자 최고 선수들 연봉은 3억4000만 원 수준. 남자선수들의 0.5%에 지나지 않는다. 신인도 남자 1위 연봉은 135억 원. 여자 1위 1억 원의 135배다. 남자 30위조차 27억 원으로 여자 1위의 27배. 다른 수입들을 포함하면 남녀 격차는 훨씬 더 커진다.
여자선수들은 말이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여자농구 관계자나 일부 물정 모르는 미국인들, 이념 단체들은 너무 심한 ‘남녀 차별’이라고 아우성이다. ‘형평’을 주장한다.
역설이지만 여자농구의 운명은 남자농구에 달려있다. 200억 원을 매년 NBA가 지원해 준다. WNBA가 버티고 있는 것도 남자선수들 덕분이다.
미국 여자농구는 세계여자농구의 절대 지배자다. 올림픽 금메달 9개, 세계선수권 우승 11번. 국제대회 성적은 결코 남자농구에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잔인하리만큼 차가운 대우를 받는 것은 WNBA도 수익을 내야 생존할 수 있는 ‘프로’기 때문. 인기가 남자농구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인기의 잣대는 관중 수와 텔레비전 중계료 등. 지난해 남자 경기 평균 관중 수는 1만8234명. 전체는 2250만 명이었다. 여자는 평균 6600명. 전체는 159만 명. 남자농구가 14배 이상 많았다. 중계료는 3조7800억 원 대 877억 원. NBA가 40배 이상이다. 여기에 각종 상품 판매 등을 더 하니 50배 이상의 수익 차가 생기는 것이다.
프로구단은 자선을 받는 단체가 아니다. 미국은 국민세금으로 프로스포츠에 돈을 대는 지방자치단체나 어마어마한 빚에 허덕이면서도 프로구단을 운영하는 공기업이 없다. 프로구단을 직접 꾸리거나 지원하는 은행 등 사기업도 없다. 인기 없는 스포츠가 자선금으로 프로를 꾸려가는 경우는 없다. 지자체·기업 등이 운영하는 직장 운동부조차도 없다.
자유시장경제가 프로스포츠를 가능케 한 바탕인 만큼 모든 구단은 그 원칙을 따라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야 한다. 체육관을 찾거나 방송 중계를 보는 국민들이 많지 않다면 생존할 수 없다. 수익을 남기지 못하면 선수들도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WNBA가 실증하고 있다.
적자가 쌓이면 구단도, 리그 전체도 문을 닫는다. 미국에는 1978년 첫 여자농구 프로리그가 생긴 이후 3개가 1~3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나마 NBA의 도움으로 1997년 WNBA가 시작된 지 27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재정난에 허덕인다.
일부에서는 “여자농구도 대단하다. 남자농구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형평에 따른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프로의 원칙에 어긋나는 얘기라 공감을 얻지 못한다.
■자생력이 없으면 프로가 아니다
이쯤에서 한국 프로스포츠와 비교해 보자. 남자농구의 2023~24년 시즌 관중 수는 73만8,000명. 여자농구는 9만여 명. 여자배구도 35만 명뿐. 농구는 비공개이나 남녀배구 중계료는 1년에 50억 원. 미국 여자농구 877억 원의 겨우 0.6%다.
그런데 남자농구 연봉 1위는 8억 원. 여자 최고 연봉은 4억5500만 원. 3억 원 이상이 7명. 전체 선수 92명 가운데 1억 원 이상이 33명이나 됐다. 여자배구의 최고 연봉은 8억을 넘었다. 5억~7억 원 선수도 여러 명이다. 남자 배구 1위는 10억8,000만 원.
단순하게 관중 수로만 따져보자. 한국 남자농구는 미국 여자농구 관객 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데도 최고 연봉은 2배가 넘는다. 여자농구는 5% 수준인데도 최고 연봉은 1억 원 이상 높다. 여자배구도 미국 여자농구의 관객 수의 23%밖에 되지 않으나 연봉은 오히려 2배 이상이다. 중계료 차이까지 고려하면 상식 밖이다.
지난해 WNBA 최우수선수였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2개나 딴 브리아나 스튜어트의 연봉은 2억8,000만 원. 연봉 순위 15위. 올림픽 금메달 5개에 세계선수권 우승 3회의 다이에나 토라시는 3억2,000만 원. 5위. 그녀는 올해 42세인데도 파리 올림픽 대표에 뽑혔다. 여느 선수들처럼 결코 ‘국가대표 은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전체 선수 151명 중 3억 원이 넘는 선수는 6명. 가장 연봉이 적은 선수는 216만 원. 1350만원(1만 달러) 이하를 받는 선수도 8명. 이들은 모두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WNBA에 뽑혔다. 중계료 877억 원에다 NBA 지원금 200억 원을 받고도 그렇게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에는 흥행이 되지 않으니 세계 최강의 남녀배구도 제대로 된 프로리그가 없다.
한국 프로스포츠는 프로가 아니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프로스포츠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기에 세계 최대의 스포츠 시장인 미국 선수들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는가? 그들 모두 올림픽 메달은커녕 출전조차 못하는 선수들이다.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자체나 모기업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자선 지원을 하는가? 국민들도 스포츠의 정상 발전을 위해 그들을 나무라야 한다. 프로 아닌 프로스포츠를 언제까지 그렇게 둘 것인가? 자생력으로 생존하는 프로스포츠가 자리잡을 때 국제경쟁력도 살아날 것이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