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미국주식 결제 'T+1' 단축하는데 우리나라는?
국내에서도 결제주기 단축 요구 거세지는데
결제 단축, 왜 어렵나?…"비용·절차·외국투자"
T+1 결제, 글로벌 표준 되면 국내 도입 가능
"우린 언제까지 결제주기 'T+2'를 해야 하나요? 우리도 'T+1'로 줄이면 안 될까요?"
지난 28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증권시장 결제주기가 하루 단축되면서 국내 증권시장 결제주기도 단축할 가능성이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결제주기를 단축하면 주식 매매대금을 하루 먼저 인출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고도로 전산화된 주식시장에서 주식거래부터 결제일까지 2영업일이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주식 팔면 돈은 이틀 뒤 인출…T+2일 결제주기
현재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글로벌 주식시장에서는 보통 'T+2일' 결제주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T'는 '거래(Trade)일'을 뜻하고요. 따라서 'T+2일 결제주기'는 증권시장에서 거래일(T)로부터 이틀 뒤에 증권과 대금을 정산하는 시스템을 의미하는데요.
'T+2일 결제주기'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하면 2영업일 후 계좌에 돈이 들어옵니다. 즉 목요일(T)에 보유한 주식을 매도할 경우 금요일(T+1)이 지나고 월요일(T+2)에 돈을 인출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때 필요한 계정이 '예수금'인데요. 예수금은 주식거래 시 투자자가 증권사 계좌에 넣은 금액 중 주식 매매결제 대금으로 사용하지 않은 금액을 의미합니다.
주식을 매도하면 자금이 예수금으로 들어오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요. 임시로 들어온 거죠. 이 예수금 계정에 있는 돈으로 다른 주식을 매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금 인출은 2영업일 후(T+2)에 가능한 거고요.
마찬가지로 주식을 살 때도 먼저 예수금에서 주식 대금이 빠져나간 후 2영업일 후(T+2) 정산되고요.
그렇다면 왜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T+2일 결제주기'를 채택하고 있을까요.
처음부터 주식시장에서 'T+2일 결제주기'를 사용한 건 아닙니다. 지금처럼 주식시장이 전산화되기 전, 결제주기가 최대 'T+5일'로 더 길었는데 점차 줄여왔던 것이죠.
미국은 1993년 'T+5일' 결제주기를 'T+3일'로 단축했습니다. 'T+5일 결제주기'에 따르면 5영업일이 지나고 6영업일째 거래 대금을 인출할 수 있었던 거죠. 이후 2017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제안으로 'T+2일'로 결제주기가 단축됐어요.
국내 주식시장도 과거 'T+5일' 결제주기를 채택하고 있었는데요. 1972년 2월 'T+2일'로 줄인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어요. 사실 국내는 결제주기 단축이 미국보다 훨씬 빨랐죠.
이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지난해 2월 증권시장 결제일을 하루 더 앞당기기로 결정했는데요. 이에 따라 오는 28일부터 미국 시장 결제주기가 'T+1일'로 줄어들게 된 것이죠.거래·청산·결제, 알고 보면 복잡한 주식거래 절차
왜 주식결제는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한 걸까요. 먼저 '비용 효율성'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미국 주식시장 결제주기 단축과 대응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0월을 기준으로 국내 주식시장의 일평균 주식 거래량은 14억주, 거래대금은 15조원입니다. 이는 국내 주식시장 상장주식 수의 23.22배, 시가총액의 12.4배 규모에 해당하고요.
모든 거래를 실시간으로 결제할 경우 상장주식과 시가총액의 몇 배가 되는 규모의 증권과 대금이 초 단위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이죠. 이에 반해 결제일을 뒤로 미루면 증권사들은 지불해야 할 금액에서 받아야 할 금액을 차감해 대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되면서 증권과 대금의 이동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복잡한 거래 단계 때문입니다.
증권사를 비롯한 투자자가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면, 한국거래소에서 '청산'을 하게 되는데요. 이게 바로 앞서 말한 '지불해야 할 금액에서 받아야 할 금액을 차감하는 절차'입니다. 청산 작업이 끝나면 한국예탁결제원에서 증권을, 은행에서 대금을 결제하게 되고요.
세 번째 이유는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권시장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환전도 필요하고 시차도 있습니다. 실시간 결제가 더욱 어려워지는 이유 중 하나죠.
자본시장연구원의 정수민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매매체결을 통해 필요한 대금이 한화로 확정된 후 환전지시가 이루어지고, 매매확인, 결제지시 등이 시차가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최종 결제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T+1일' 결제주기?…"미국, 인도 뿐"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이 결제주기를 'T+1일'로 단축하게 된 건 2021년 벌어진 '게임스탑 사태' 때문입니다.
정 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개인투자자들이 이른바 '밈 주식'으로 게임스탑을 폭발적으로 거래하면서 증권사들이 증거금을 감당하지 못해 이 주식 매입을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거든요. 매입을 중단하자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자 손실이 확대됐고요.
이 사건 이후 증권업계를 중심으로 증거금 부담 완화와 결제위험 축소를 위해 결제주기 단축 요구가 제기됐어요. 거래일과 결제일 사이의 기간이 길수록 '결제위험'이 커지기 때문인데요. 미국 중앙예탁청산기관(DTCC)은 결제주기를 하루 더 단축하면 증거금을 41%가량 줄일 수 있다고 밝혔고요.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은 결제주기 단축을 발표할 당시 "이 개정 규칙으로 지연 시간을 줄이고 위험은 낮추며 자본의 효율성과 시장 유동성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증권시장 업무 연관성이 높고 중복 상장 종목이 많은 캐나다, 멕시코에서 최근 결제주기 단축을 발표했고요. 그 외 'T+1일' 결제주기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인도 뿐입니다. 인도가 2022년 2월부터 단계적으로 'T+1일' 결제주기를 채택했거든요.국내 결제주기 단축 "아직은 먼 미래의 일"
우리도 'T+1일'로 단축하면 안 되느냐고요. 금융권 관계자 대다수가 "아직은 이르다"고 입을 모읍니다.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 주요국에서 'T+2일' 결제주기를 채택하고 있어 국내만 독단적으로 결제주기를 단축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만약 'T+2일' 제도를 채택한 국가에서 'T+1일'로 단축한 한국 증권사와 거래하기 위해서는 외국 증권사의 야간 근무와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게 됩니다. 환전 절차까지 고려하면 더욱 까다로워지죠.
금융권 한 관계자는 "미국이 결제주기를 단축하면 다른 국가에서 시스템을 개선해서라도 거래하겠지만, 국내 주식시장의 경우 그만큼 밸류에이션이 높지 않다"며 "결제일 단축으로 외국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미국에서 T+1일 단축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유럽 등의 국가에서 실무적 어려움을 표하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두번째는 역시 '비용'입니다. 결제주기 단축을 위해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는 설명입니다. 각 증권사를 포함해 예탁결제원, 한국거래소 등 증권시장 전반의 시스템을 한번에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도 역시 결제주기를 단축하는 과정에서 업계 종사자들이 어려움을 표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인도의 결제주기 단축은 안정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평가되는데요. 정 연구원은 "증권업계의 3교대 근무 도입과 사전 자금 조달 등 많은 비용 지출로 이뤄낸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국내에서도 'T+1일'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증권사의 야간근무와 이에 따른 인건비, 시스템구축 비용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다만 결제주기 단축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T+1 결제일로 정착한다면 국내에서도 결제주기 단축에 대한 담론이 다시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송재민 (makmi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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