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요" 절규에도 주검으로…온 국민 충격 빠뜨린 그날[뉴스속오늘]

박상혁 기자 2024. 5. 3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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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가 이슬람 과격단체 '유일신과 신앙'에 살해당하기 전 찍힌 마지막 장면이다./사진=MBC '뉴스투데이'


지난 2004년5월31일. 이라크 내 군납업체 가나무역 직원이었던 김선일(34)이 팔루자 인근 지역을 지나던 중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에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약 400㎞ 떨어진 미군 기지 '리브지 캠프'에 물건을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김 씨를 납치한 단체는 잔인하기로 악명높은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

뒤늦게 납치 사실을 알게 된 전 국민은 그가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납치된 지 20여일이 지난 6월22일. 결국 그는 팔루자 인근 도로에서 참수된 주검으로 발견됐다.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혹자는 당시를 '대한민국에서 9.11사건 정도 급의 테러가 발생한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전후 이라크… 위험지역에 입국한 청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가 전쟁 중이던 2003년3월21일 공습을 당한 직후 찍힌 사진이다. /사진=로이터

당시 이라크는 2003년부터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군이 그해 4월14일 북부 티크리트 중심부로 진입해 사실상 전쟁은 끝났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총성과 포격이 들리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이런 이라크에 김 씨가 미국과 전쟁 중이었던 이라크에 어떤 이유로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아랍어과를 졸업한 뒤 동시 통역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 했던 그가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군 군납업체 가나무역에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가게 됐다는 설이 있다.

기독교 선교를 하기 위해 이라크에 갔다는 정황도 있다. 그가 가나무역 입사를 위해 작성한 자기소개서로 알려진 글에는 '중동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됐다', '영어와 아랍어와 미용 기술로 복음으로 다가가겠다' 등 표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김 씨는 한 인터넷 카페에 올린 자기소개 글에 장래 희망을 '중동선교사'라고 적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 인터넷 카페는 폐쇄됐다.

이러한 정황들을 고려했을 때, 김 씨의 이라크 방문은 '학비를 마련할 겸, 중동에 선교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무장단체, '한국군 철군 요구'… 구조에 최선 다했지만
외교통상부 관계자가 언론에 김선일씨가 2004년6월22일 오전8시쯤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고 있다./사진=MBC 뉴스

김 씨가 납치된 후 며칠 후인 6월21일. 유일신과 성전이 김 씨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영상이 알자지라를 통해 공개됐다.

이 영상엔 김씨가 "한국 군인들! 제발 여기를 떠나세요.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소중하고, 제 생명도 중요합니다"라며 절규했다.

'유일신과 성전'이 내건 김 씨의 석방조건은 '24시간 안에 한국군을 이라크 아르빌에서 철수시키고, 더 이상의 군대를 보내지 말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김 씨를 참수할 것이라며 협박했다.

청와대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김 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최영진 당시 외교 차관을 반장으로 한 긴급 대책반을 가동했고, 국외 테러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또 장재룡 당시 외교부 본부대사 등이 현지에 파견됐고,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알자지라 방송에서 직접 출연해 김 씨의 석방을 호소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고심 끝에 '파병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공표했다. 정부는 2004년 6월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정부는 자이툰부대의 이라크파병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린 바 있었다.

6월22일. 바그다드에서 35㎞ 떨어진 지점에서 김 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유일신과 성전이 공개한 테이프엔 김 씨가 살해당하는 모습이 그대로 공개됐다. 국민들은 어떻게 김 씨가 피랍된 지 20여일이 지난 6월21일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건지, 자국민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했는지 등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 돌렸다.

또 김씨가 이미 사망한 이후 정부 대책반이 뒤늦게 협상을 위해 요르단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의 부실한 해외정보력이 도마에 올랐다.

물론 김 씨 피랍 사실을 대사관 측에 알리지 않고 자체 해결하려고 했고, 뒤늦게 한국 대사관에 접촉했을 때 그의 피랍 날짜를 여러 차례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인 가나무역 사장 김천호 씨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선일 씨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재외 국민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전 국민 충격과 분노…그 이후의 이야기들
외교부는 2007년부터 이라크를 여행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사진=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캡쳐

김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반이슬람 정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경찰은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경력을 배치하는 등 소동이 있었다.

김 씨를 살해한 유일신과 성전의 지도자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는 2년 후 미군에게 사살됐다.

그가 사살된 뒤 유일신과 성전의 세력이 크게 약화했지만, 3대 수장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1971~2019)가 새로운 세력을 규합하는데, 그들이 바로 IS다.

이들은 인질을 사로잡고 참수하는 영상을 공개하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이건 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이 사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김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연중무휴 24시간 운영되는 영사콜센터가 그해 11월15일 문을 열었다.

또 외교부는 2007년부터 이라크를 여행금지 최고 단계 구역(흑색 경보)으로 지정했다. 이라크를 여행할 예정인 사람은 여행금지를 준수해야 하고, 체류하고 있는 사람은 즉시 대피하거나 철수할 것을 권고한다.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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