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사후 100주년…그가 그린 또 하나의 ‘암호’ 공개 [책&생각]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
안드레아스 킬허 외 지음, 민은영 옮김 l 문학동네 l 4만8000원
“오고/ 감/ 이별이 있다/ 그것도 자주 - 재회는 없다.”
프란츠 카프카가 14살이던 1897년 처음 쓴 시로 알려져 있다. 카프카는 110편 이상의 시, 초단편과 단편들, 그리고 장편 셋을 남겼다. 서구에선 그를 “현대문학의 암호”라 이른다. 산문과의 경계 흐릿한 시, 미완의 장편, 심지어 가장 널리 알려진 ‘변신’까지 무엇 하나 예외이기 어렵다. 그의 글 전체가 출간된 게 1980~90년대다. 그리고 이제야 그가 생애 걸쳐 남긴 160여편 그림이 전체 공개된다. ‘시각적 암호’가 내던져진 격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그림들’(2021)은 반세기 걸쳐 질금하게 공개됐던 그림에, 1956년 이래 스위스은행 금고에 잠겨 있던 100여편까지 카프카 그림 전체를 수록해 비평한 첫 책이다. 막역한 대학 친구 막스 브로트(1884~1968)가 1937년 펴낸 ‘프란츠 카프카: 전기’에 삽화로 넣은 소묘 2점과 자그마한 흑백 채색 인물화 6점이 최초 대중에게 공개된 그림이었으니, 전체가 드러나기까지 84년 걸렸다.
카프카는 법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소묘화 수업이나 미술사 강의를 들었다. 1901년부터다. 예술사를 전공한 친구 오스카 폴락의 영향이 컸다. “우리에게는 마치 불행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필요하다”며 “한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내용의 카프카 편지(1904)를 받은 그 벗이다.
그림은 스케치북과 대학노트에 그린 것, 편지나 일기에 삽입한 것, 글에 덧붙인 형상들로 분류된다. 독립된 그림 대부분은 그의 첫 단편 발행(1908) 즈음까지 그려졌다. 텍스트만큼 그림에 집요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다만 시가 소설과 긴장하며 ‘카프카적’ 세계의 밀도를 높이듯, “양립 불가”에서 “단정적 해석에 저항하는 내러티브 기술”까지 뜻하게 된 “카프카에스크”의 어원과 용례에 그의 그림이 빠질 법하다면, 지난 반세기 그림을 소개·확보하려는 출판사, 문학기관의 사력과 10여년 걸친 그림 저작권 분쟁이 설명이 될까. 책은 그 행적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나치로부터 친구의 유작을 지켜낸 브로트가 이후 그림 공개에 방해가 되고, 원본도 훼손한 사실 또한 추궁한다. 이달 3일 카프카 사후 10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르는 유럽의 저작답다.
독일 문학연구자인 저자는 “(대부분이) 아무런 배경 없이 대개 허공에 떠 있는데, 인물 자체도 불균형적이고, 평평하고, 허약하고, 캐리커처 같고, 기괴하고, 카니발적”이라고 카프카의 그림을 설명한다. 해석보다 묘사에 가깝다.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작품들이 어떤 독립성을 지니든, 그것은 문자적 형식과 단절함으로써 얻어낸 것”이라고 짚는다. 감상보다 개관에 가깝다. 다들 카프카가 그림 비평에 허락한 최대치 같달까. 팔다리가 과장된 군상, 미완의 표정들은 인물이 아니라, 인물을 압박하거나 부유시키는 세계를 함축한 듯 기호적이고 파편화하며 때로 ‘광대적’이다. 카프카는 글과 함께 그림도 꼬집어 브로트에게 태워달라 유언했다. 심지어 ‘입수해서까지 태워달라.’ 다음 말이 그림에 부재한 ‘작가의 말’처럼 맴돌았다.
“진실의 길은 공중 높이 매달려 있는 밧줄이 아니라, 땅바닥 바로 위에 낮게 매달린 밧줄 위에 있다. 그것은 걸어가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걸려 넘어지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카프카의 그림이 텍스트와 대결하고 회화와도 불화하는 또 하나의 언어로서, ‘불완전한 세계’를 불완전한 서사로 증언해보려던 게 아니었을까.
1983년 탄생 100주년 맞춰 유럽서 시도되었던 ‘그림 전집’이 사후 100주년 된 2024년 한국에 번역 소개됐다. 그 밖에 카프카의 단편집(‘우연한 불행’, 위즈덤하우스), 신형철의 평론과 이기호의 소설 등이 더해진 ‘카프카, 카프카’(나남), 카프카의 생애와 문학적 특성을 갈파한 ‘케임브리지 카프카 입문’(그린비), ‘프란츠 카프카’(소전서가) 등 기념 출간물이 풍성하다. 카프카의 첫 시와는 달리, 사후 100년이 되어서도 이별이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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