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년 전 ‘1인칭 사실주의’ 소설…고대 이집트인은 통째 외웠다 [책&생각]
‘시누헤 이야기’ 번역서 겸 연구서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
유성환 옮김 l 휴머니스트 l 2만4000원
인류가 낳은 최초의 서사시로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한 ‘길가메시 서사시’가 꼽힌다. 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소설은 언제 태어났을까? 최초의 소설은 ‘길가메시 서사시’와 거의 같은 시대에 고대 이집트에서 출현했다. 이집트학 전문가 유성환(서울대 인문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최초의 소설 시누헤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초기 소설 가운데 하나인 ‘시누헤 이야기’를 번역하고 해제를 단 책이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언어, 문학과 종교에 관한 지식도 상세히 담아 소설의 이해를 돕는다. ‘시누헤 이야기’는 근년에 영문 중역본이 나온 바 있지만, 원전 번역은 이 책이 처음이다. 고대 이집트어의 다섯 판본을 저본으로 삼고 여러 언어의 번역본을 참조하여 우리말로 옮겼다. 국내 이집트학 연구의 이정표로 기록될 만한 작업이다.
고대 이집트 역사는 크게 초기왕조-고왕국-중왕국-신왕국-후기왕조로 나뉜다. 이 다섯 시기 가운데 고대 이집트사의 중심이 되는 것이 고왕국(기원전 2680~2160)-중왕국(기원전 2055~1650)-신왕국(기원전 1550~1069) 세 시기다. 고왕국은 거대한 피라미드가 조성된 문명의 도약기이고, 중왕국은 인간의 내면이 발견되고 내세와 영생의 관념이 퍼진 문명의 성장기이며, 신왕국은 람세스 2세를 비롯해 개성 강한 파라오들이 배출된 문명의 전성기다. 신왕국 멸망 이후 고대 이집트는 긴 혼란기와 페르시아-그리스-로마 지배기를 거치며 종말에 이르렀다.
이 이집트 문명의 정신적 내용은 고유한 이집트 문자가 있었기에 전해질 수 있었다. 흔히 ‘상형문자’라고 부르는 그 문자를 이집트학자들은 ‘성각문자’(hieroglyphs)라고 부른다. 성각문자가 출현한 때는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 발명 시기와 겹치는 기원전 3250년경이다. 표의문자와 표음문자가 뒤섞인 성각문자는 여러 차례 변형을 거쳤다. 먼저 ‘성각문자 흘림체’로 바뀌었고 다시 필기체로 바뀌었는데, 이 필기체를 ‘신관문자’라고 한다. 기원전 650년경에는 신관문자를 더 간략화한 민용문자가 등장했다. 글자체의 이런 변화와 함께 고대 이집트어도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특히 중왕국 시대 이집트어는 고대 이집트 ‘고전어’로서 이후 이집트 문명이 끝날 때까지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 중왕국 시대에 고전어로 창작되고 신관문자로 기록된 서사문학이 꽃피었는데, 이 시기에 나온 ‘시누헤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중왕국은 고대 이집트 3000년 역사의 31왕조 가운데 제11왕조, 제12왕조, 제13왕조를 포괄한다. ‘시누헤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은 제12왕조를 개창한 아멘엠하트 1세(기원전 1985~1956)와 그 뒤를 이은 센와세레트 1세(기원전 1956~1911)가 다스리던 시대다. 이 소설의 필사본은 지금까지 32점(파피루스 7점, 석편 25점)이 발견됐는데, 다른 서사문학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이다. 이 소설에는 ‘찬가’ ‘비문’ ‘포고문’ ‘서신’ ‘일지’ 같은 당시 공식적 표현양식이 망라돼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서기관 양성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됐다. 학생들은 공문서의 본보기가 담긴 이 소설을 통째로 외우고 베껴 썼다.
‘시누헤 이야기’는 ‘자전적 기록’(autobiography) 형식으로 쓴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다. 자전적 기록은 고왕국 말기에 등장한 서사 양식인데, 귀족이 분묘에 자신의 업적을 기록한 데서 출발했다. 이 자서전 양식이 소설의 틀이 된 것이다. 주인공 시누헤는 아멘엠하트 1세의 궁정 관리로 설정돼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왕태자(센와세레트 1세)의 정벌 전쟁을 수행하던 시누헤는 국왕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갈피를 잡지 못하다 진영을 이탈한다. 국경을 넘어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도망간 시누헤는 그곳 선한 족장의 도움을 받아 정착하고 그 족장의 장녀와도 혼인한다. 이어 위기가 온다. 시누헤를 시기한 다른 족장이 싸움을 걸어온 것인데, 시누헤는 적수를 제압하고 위기를 영광으로 바꾼다. 이방의 땅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시누헤는 고향을 잊지 못하고 돌아갈 길을 찾는다. 늙은 시누헤에게 왕이 포고령을 내려 탈영의 죄를 사면하고 귀국을 허락한다. 돌아온 시누헤는 왕의 자비 속에 죽음과 영생을 준비한다.
‘시누헤 이야기’의 플롯을 끌고 가는 ‘물음’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왜 시누헤는 도주했는가’다. 소설은 그 이유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이 물음에 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멘엠하트 1세 암살설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절대적 존재였지만, 궁중에선 암투가 자주 벌어졌고 암살도 적지 않았다. 여러 역사적 자료를 보면 아멘엠하트가 암살당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시누헤는 왜 도망했을까? 자신이 모시던 왕자가 암살에 연루된 것을 알게 돼 이대로 있다간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암살을 둘러싼 그 비밀스러운 내막이 이야기의 문을 열고 플롯을 끌어간다. 이야기를 이끄는 다른 하나의 물음은 ‘왜 시누헤는 귀향하려고 하는가’다. 답의 핵심은 이집트인의 생사관에 있다. 그 시대 이집트인은 이방의 땅에 묻혀서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죽어서 영생을 얻으려면 이집트로 돌아가 이집트 방식으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 죽음 이후를 염려하는 시누헤의 그 마음이 소설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더 눈여겨볼 것은 소설의 문학적 장치들이다. 왕의 죽음 소식을 들은 왕태자가 급히 왕궁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매는 원정대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종자들만 거느리고 날아올랐다.” 이때의 매는 ‘오시리스 신화’에서 오시리스의 후계자가 되는 호루스의 상징이다. 왕의 후계자인 태자를 매로 비유한 데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장면을 ‘날아올랐다’고 표현한 데서 창작자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볼 수 있다. 소설 전체는 사실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시대의 ‘길가메시 서사시’와 비교해보면 이 소설의 사실주의는 더 도드라진다. 또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누헤가 신에게 이집트로 자신을 보내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하는 장면은 ‘개인 신심’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는 점에서 종교사적 주목을 받는다. 개인의 내면이 발견되고 묘사되기 시작하는 순간을 이 소설이 품고 있는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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