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과학 보여주기와 과학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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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매일 같이 봉착한다.
'전시'(展示)는 '펼쳐서 보인다'는 단어의 뜻처럼 보여주는 일이 핵심인데, 과학기술의 경우 우리의 직관과 감각으로는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잭 챌로너 역시 런던 과학박물관의 교육 분야에서 일하며 같은 질문을 수없이 던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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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기술
잭 챌로너 지음, 변정현 옮김 l 초사흘달(2024)
과학관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매일 같이 봉착한다. ‘전시’(展示)는 ‘펼쳐서 보인다’는 단어의 뜻처럼 보여주는 일이 핵심인데, 과학기술의 경우 우리의 직관과 감각으로는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잭 챌로너 역시 런던 과학박물관의 교육 분야에서 일하며 같은 질문을 수없이 던졌을 것이다. 2022년 발간된 ‘과학의 눈’은 저자가 과학의 시각화를 주제로 펴낸 세 번째 책이다. 전작들이 세포와 물이라는 특정 물질을 주제로 했다면, 이 책은 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과학 연구와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시각화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지면을 가득 채운 아름답기도, 또 추상적이기도 한 이미지들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과학의 본질에 대해 어느새 조금 더 잘 알게 된다. 각각의 이미지 생성 방식은 관찰, 해석과 분석, 예측 등 과학의 수행 방식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각종 과학 이미지들을 생성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사물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술로 만들어 내는 것, 데이터를 분석하여 만들어 내는 것, 수학 모델과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과학에 영감 받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17세기부터 최근까지 만들어진 과학 이미지의 콜라주를 통해, 이 책은 모든 과학은 곧 또 다른 눈을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현미경 개발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로버트 훅은 1665년 저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 서문에서 스스로의 작업을 “감각의 확대”를 통한 “새로운 가시적 세계”의 발견으로 평가했다. 현미경과 각종 망원경, 가시영역 외의 주파수 등을 사용해 관찰하는 방법이 직접적으로 감각을 확장시키는 기술을 사용한다면, 방대한 데이터를 정제하여 해석하고, 수학 모델과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관찰로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다.
크림 전쟁 중 나이팅게일이 만든 병사들의 사망 원인 통계 그래프는 정제되지 않은 데이터들을 거르고 다듬어 낸 작업물이다. 나이팅게일은 달마다 사망병사 수에 따라 크기가 다른 피자 조각 모양의 그래프를 그리고 사망 원인을 색으로 구분하여, 높은 사망률의 원인이 감염에 있으며 이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편, 이산화탄소의 해양-대기 간 이동을 추적하는 ‘ECCO2-다윈’ 프로젝트는 지구 전체를 순환하는 대기와 해류 모델과 미생물의 활동 데이터를 결합하여, 해양의 어느 부분에서 이산화탄소가 흡수되고 방출되는지 보여준다. 복잡한 수학 모델과 실측 데이터가 빚어낸 “새로운 가시적 세계”는 기후변화의 여러 얼굴들을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한다.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대중에게도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에, 과학 이미지는 어느 때보다 큰 힘을 갖고 있다. 이 책을 유심히 읽는다면, 많은 과학 이미지가 사실은 우리가 ‘본다’고 믿는 대상이 아닌 그 대용물이거나 가상의 모델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인류 최초로 만들어진 블랙홀 이미지는 블랙홀로 떨어지는 물질이 뿜어내는 전파를 분석해 표현한 것이다. 과학을 ‘보는’ 일에 훈련과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강연실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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