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없던 감각, 눈 뜬 심청이 아버지는 행복했을까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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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의 아버지는 눈을 뜨고 행복했을까.
그런 이야기들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끝맺으니 믿어야겠지만, 평생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면서 그는 진정 행복했을까 궁금하다.
미국 마운트홀리요크 칼리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인 수전 배리의 '내게 없던 감각'은 그 궁금증을 일정 부분 풀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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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없던 감각이 새로 생긴다면?
유아기 지나도 새 감각 얻고 적응
학습하고 적응하는 인간의 능력
내게 없던 감각
보는 법을 배운 소년, 듣는 법을 배운 소녀 그리고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수전 배리 지음, 김명주 옮김 l 김영사 l 1만8800원
심청이의 아버지는 눈을 뜨고 행복했을까. 그런 이야기들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끝맺으니 믿어야겠지만, 평생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면서 그는 진정 행복했을까 궁금하다. 미국 마운트홀리요크 칼리지 생명과학과 명예교수인 수전 배리의 ‘내게 없던 감각’은 그 궁금증을 일정 부분 풀어줄 만한 책이다. 지은이는 보는 법을 배운 소년과 듣는 법을 배운 소녀 이야기를 통해 후천적으로 얻은 감각이 주는 충격과 인간의 회복탄력성 등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보통은 볼 수 없던 사람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면, 듣지 못하던 사람이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야말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각막 수술을 통해 “난생처음으로 앞을 볼 수 있게” 된 50대 초반 남성은 수술 직후부터 “점점 우울해지고 건강이 나빠져 결국 사망”했다. 앞을 보지 못했을 때는 “쾌활하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던 남성은 새롭게 보게 된 세상이 혼란스러웠다. 어릴 때 청력을 잃은 어떤 이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30년 만에 청력을 회복했지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에 압도되었다”면서 “딱 죽고 싶은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내게 없던 감각’을 얻는 일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다.
리엄 맥코이는 태어날 때부터 백색증과 근시, 사시로 인해 앞을 거의 보지 못했다. 활동력만큼은 탁월해서 다섯 살 넘어서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정도였다. “소리와 촉각, 공간 기억을 통해 세상을 지각”하던 리엄은 15살 무렵 인공수정체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인공수정체가 “원거리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자연수정체를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원거리뿐 아니라 근거리에서도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수술이었다. 시력은 “의사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개선”되었고, 색각도 정상을 회복했다. 다만 이런 개선 자체가 리엄은 혼란스러웠다. “날카로운 선과 모서리로 이루어진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리엄은 “색들이 섞여 뭉개져 보였던 수술 전”을 그리워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리엄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기 위해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었고, 지팡이와 휴대용 지피에스(GPS), 점자 읽기를 활용해 새로운 세상을 하나씩 체득해갔다.
탄자니아에서 태어난 조흐라 담지는 “90데시벨 이하의 소리”는 듣지 못했다. 일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쩌렁쩌렁 울리는 가스 잔디깎이처럼 큰 소음”만 들렸다. 조흐라는 12살에 인공와우 이식 수술을 받았다. 듣는다는 기쁨은 잠시, 세상의 모든 소리가 뒤섞이면서 불협화음처럼 들렸다. 입안에서 “감자칩이 톡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씹을 때 나는 소리”조차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조흐라는 감각을 익히는 데 열중했다. “들리는 소리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듣기로 부족한 것은 입 모양 읽기 등을 활용해 최대한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
지은이 수전 배리는 그 자신 선천적 입체맹이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세상을 입체로 보게 된 리엄과 조흐라의 감각에 대한 이해가 폭넓을 수밖에 없었고, 10년이 넘는 그들의 유대는 새로운 감각을 이해하는 하나의 전형을 만들었다. 흔하게 보고 듣는 세계가 어떤 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일 수 있다는 인식.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감각이 아닐 수 없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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