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밤은 공공재, 모두가 겪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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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의 최근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은 시 읽는 일의 쾌감을 전한다.
이 '모두'에는 방금 막 잠든 "아기"도, "밤 갈피에" "먼 훗날"을 접어둠으로써 그것이 "버섯처럼 자라날" 시간을 살아갈 이들 역시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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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박연준 지음 l 문학동네(2024)
박연준의 최근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은 시 읽는 일의 쾌감을 전한다. 독자가 시를 통해 이를 수 있는 진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얘기다. 시는 저벅저벅 나아가는 데 망설이지 않고 때론 진창 사이를 사뿐사뿐 춤추듯 걸어가며, 멈추어야 할 때는 신중하게, 지긋이 멈춘다. 다양하게 발을 놀린다. 신경림 시인이 오래전 시의 몫을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몰고” 오는 일로(‘그 여름’) 짚어냈다면, 박연준의 시는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깃든 절망과 희열, 그 낙차에 들이찬 호흡까지 헤아리고 보듬는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런 시 한 편을 나눈다.
“오해입니다. 당신은 밤을 압니다. 당신은 밤을 사랑합니다. 오해입니다. 당신은 밤을 사랑한 적 없습니다. 뒤척이는 사이, 당신은 잠들었습니다. 베개 위에 당신 아닌 것이 당신을 따라와 눕고, 침대는 축축해집니다. 오해입니다. 당신은 누운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잠든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잠에 끌려갑니다. 점점 무거워집니다. 오해입니다. 밤이 누구에게나 찾아간다는 것, 오해입니다. 밤은 공공재입니다.//…// 어제 태어난 아기도 밤을 압니다. 이미, 오해입니다. 늦은 오해입니다.// 오늘도 옵니다./ 내일도 옵니다/ 어제도 옵니다// 인류가 사라진 뒤에도 밤은,// 오해입니다.// 지나가는 밤을 쏟아지는 밤을 이토록 무거운 밤을 오래된 밤을 처음인 밤을,// 당신은 사랑하는 밤 속에 있습니다. 잠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는 밤을 맞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밤이야, 라는 말은”(‘어제 태어난 아기도 밤을 겪었지요’)
시는 ‘이해’라는 말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문장 사이마다 “오해입니다”라는 말을 둔다. 이 말을 곁에 두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자부해왔던 것이 정말 그러한지, 이때 ‘앎’이란 무엇인지 자꾸 생각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우리가 “밤”을 안다고 여기고 서슴없이 “잠에 끌려”가고 “점점 무거워”질 때, “밤”이 덮인 지금 세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오해입니다”라는 말을 경유하면서야 “잠에 끌려”가는 방식으로 맞이하는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 이때 “밤”은 각자의 삶마다 상이한 방식으로 모두에게 찾아간다는 의미로 “공공재”임을 곱씹게 된다.
“오해입니다”는 말을 디딤돌 삼아 걸어나가되, 모두에게 다른 방식으로 찾아오는 압도적인 크기의 “밤”을 살피다 보면 그 밤을 “어제 태어난 아기”도 겪는다는 사실에 새삼 이를 것이다. “우리의 밤”은 “우리가 사는 밤”이란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이들 모두의 것. 이 ‘모두’에는 방금 막 잠든 “아기”도, “밤 갈피에” “먼 훗날”을 접어둠으로써 그것이 “버섯처럼 자라날” 시간을 살아갈 이들 역시 속해 있다. 요컨대 “인류” 혹은 “인류가 사라진 뒤에” 남겨진 존재들까지 포함해서.
그 누구도 비켜서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모두가 “무거운”과 “오래된”, 때때로 “처음인” 것을 매섭게 겪어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밤”은 모종의 비유로 읽히기도 한다. 겪지 않은 자는 없다. 삶이 그렇고, 세상이 그렇고, 지금 우리 시대가 그렇다. 그러니 “밤이야, 라는 말은” 다음에 올 말을 고민하는 자리에서 제외된 이는 아무도 없다. 시의 전언이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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