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어둠 속 불빛은 어떻게 우리를 매혹하는가

최원형 기자 2024. 5. 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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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한 저녁부터 빛이 완전히 사라진 밤 사이 '불 켜진 창'은 형용할 수 없이 수많은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건물 정면 그 모든 불꽃이/ 타오르는 거리 모퉁이/ 벽이 통곡하던 그곳/ 핏빛 안개의 상처"('사랑받지 못한 자의 노래' 부분) 시인에게 사랑의 절망을 환기시킨 안개 도시의 불빛은 코넌 도일이 창조한 홈스 이야기에서는 긴박한 미스터리가 벌어지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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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빛의 제국’(1954). 구겐하임미술관 누리집 갈무리

불이 켜진 창문
시와 소설, 그림 사이를 거니는 저녁 산책
피터 데이비드슨 지음, 정지현 옮김 l 아트북스 l 1만8500원

어스름한 저녁부터 빛이 완전히 사라진 밤 사이 ‘불 켜진 창’은 형용할 수 없이 수많은 감정들을 불러 일으킨다. 도시이건 시골이건 그것은 익숙했던 일상을 삽시간에 낯설고 이상한 것으로 만들고, 우리에게 고요한 안정을, 낭만적인 분위기를, 사건이 일어날 듯한 긴박감을, 쇠락해버린 삶의 황량함을, 도리 없는 고독을 전해준다.

영문학과 미술사를 함께 연구하는 피터 데이비드슨의 ‘불이 켜진 창문’은 이 한 가지 테마에만 집중한 책이다. 영국 옥스퍼드에서부터 벨기에, 영국 런던 등을 산책하며, 불 켜진 창을 테마로 삼은 시와 소설, 그림 등 온갖 예술작품들을 소환해낸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불빛이 안개에 스며드는 런던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했다. “건물 정면 그 모든 불꽃이/ 타오르는 거리 모퉁이/ 벽이 통곡하던 그곳/ 핏빛 안개의 상처”(‘사랑받지 못한 자의 노래’ 부분)… 시인에게 사랑의 절망을 환기시킨 안개 도시의 불빛은 코넌 도일이 창조한 홈스 이야기에서는 긴박한 미스터리가 벌어지는 배경이다.

새뮤얼 파머의 작품 ‘외로운 탑’(1868). 위키미디어 코먼스

존 밀턴은 ‘사색하는 사람’에서 “한밤중에 나의 등불이/ 외로운 높은 탑에서 비치네/ 큰곰자리까지 보이는 이곳”이라 노래했는데, 이 정서는 불빛이 켜진 탑을 멀리서 바라보는 새뮤얼 파머의 동판화 ‘외로운 탑’을 경유해 윌리엄 예이츠로까지 이어졌다. 예이츠의 시들은 “시간의 다층 구조, 즉 창문 안쪽 시간이 저 아래 들판의 시간과 똑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체계적인 분석보다는 자유로운 감상을 앞세운 지은이의 저녁 산책을 따라가다 보면, ‘불 켜진 창’이 담고 있는 다채롭고도 불가해한 매력에 저도 모르게 푹 빠지게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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