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출판사의 생존 공식 ‘구간 발굴과 개정판 출간’ [책&생각]

한겨레 2024. 5. 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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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1년에 출간되는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약 8만종이다.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퍼스트펭귄'이라는 '신생 출판사'에서 '첫 책'으로 출간한 개정판은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처럼 구간을 개정판으로 출간해 성공하는 사례가 늘면서, 자금력이 열악한 신생 출판사 대표들은 요즘 대형 중고서점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구간 발굴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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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철의 이래서 베스트셀러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마티아스 뇔케 지음, 이미옥 옮김 l 퍼스트펭귄(2024)

우리나라에서 1년에 출간되는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약 8만종이다. 2013년에 6만종을 넘어선 발행 종수는 가파르게 늘어, 2018년에 8만종을 넘어섰다. 출판 시장의 불황은 심화하고 있는데, 신간 발행 종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고, 신생 출판사의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문체부에 등록된 출판사 숫자는 7만7324개. 매년 3천개 이상의 신생 출판사들이 생겨난다.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 종합독서율 43%(2023년 기준)의 대한민국에서 호기롭게 출판에 도전해보겠노라며 시장에 진입하는 신생 출판사들은 용감한 걸까, 무모한 걸까? 우후죽순 생겨나는 신생 출판사는 출판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최근 출판인들 사이에서는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퍼스트펭귄)라는 책이 화제다. 마티아스 뇔케(Matthias Nöllke)라는 독일 언론인이 쓴 책인데, 지난 3월 출간 직후부터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올라 있고, 좀처럼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 책은 사실 2017년 국내에서 출간됐던 ‘조용히 이기는 사람들’(이마)의 개정판이다.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퍼스트펭귄’이라는 ‘신생 출판사’에서 ‘첫 책’으로 출간한 개정판은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먼저 도전하고 처음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프런티어’를 의미하는 퍼스트 펭귄이라는 출판사 이름이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라는 감각적인 책의 제목 역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하다.

잘난 척, 센 척, 강한 척 등 ‘척’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 물질 만능과 성공 강박의 시대에 책은 ‘겸손과 절제의 미덕’에 대해 전한다. 모든 것이 과하게 요구되고, 또한 요란하게 포장되는 시대에 ‘더 현명한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외부의 기대와 평가에 주눅 들지 말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차분하게 설득한다. 성공하는 법, 부자 되는 법, 말 잘하는 법, 주목받는 법 등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는 ‘역발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최근 들어 성공지향형 사람들이 결국 어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언론을 통해 목격하면서 책의 진가가 더욱 빛나고 있다.

한번 출간된 적이 있는 구간을 새로운 카피와 제목으로 재출간한 점부터, 휴대하기 편한 핸디 사이즈로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인 점, 그리고 ‘관종(관심종자)’, ‘플렉스(과시형 소비)’, ‘오버씽킹(생각 과잉)’과 같은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모든 것이 너무 과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시대 분위기를 포착한 점까지, 이 책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처럼 구간을 개정판으로 출간해 성공하는 사례가 늘면서, 자금력이 열악한 신생 출판사 대표들은 요즘 대형 중고서점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구간 발굴에 몰두하고 있다. ‘흙 속에 숨겨진 진주’를 찾는 심정으로 오래된 책들을 뒤적거리며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 ‘구간 발굴과 개정판 출간’이 신생 출판사의 생존 공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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