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지역 차등 전기요금제, 정말 실시됩니까

최우용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4. 5. 3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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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 차등제 시행 예고, 수도권 설득전략이 관건
원전 인근, 늘 위험 노출…특혜 아닌 특수성 인정을
최우용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산은 관광 도시이다. 그리고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원전 도시이기도 하다. 마천루가 즐비한 해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원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아간다.

2023년 개봉한 ‘더 데이즈(the days)’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다. 2011년 3월11일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사고를 다룬 드라마다. 당시 도쿄전력 직원들의 사투를 그린 드라마로, 원전 직원들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런데, 드라마는 당시 일본 정부의 치부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이다. 사고 발생 후 우왕좌왕하는 일본 정부, 원전에 무지한 낙하산 인사가 원전 안전 총책임을 맡는 아이러니한 현실, 사고 회사인 도쿄전력의 무책임한 대응 등 정치와 행정이 얼마나 현장과 단절되어 있는지를 비교적 상세히 고발한다. 당시 수상이었던 간 나오토 총리는 그 후 원전 반대론자가 된다. 세계를 돌며 반(反)원전 운동의 선봉에 서고 있다. 그가 부산에서 강연할 때 “원자력 사고 당시, 전문가라는 그 누구도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원전 사고가 나면 이를 종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는 이 세상에 없다. 아직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열변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편하지 않았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만약 부산에서’라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의 친환경 중심 에너지 정책은 현 정부 들어 원전 중심으로 복귀했다. 고리1호기 원전 해체작업도 시작됐다.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다. 부산은 원전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까지 머리 위에 이고 사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작금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이하 차등요금제)가 화두이다. 정부는 2026년부터 차등요금제를 실시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2일 ‘전력시장 제도개선 방향’이라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에는 차등요금제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시행한다’가 아니고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많은 과제를 극복해야 가능하다. 6월 14일부터 시행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차등요금제에 대한 법적 근거는 있지만, 그 시행을 위한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이 아직 제정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전기사업법의 개정도 필요하고, 내년 상반기로 계획된 ‘전력도매가격(SMP) 차등제’도 먼저 실시되어야 한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의 경영 상황 또한 중요한 변수이다. 무엇보다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보다 높은 가격으로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수도권의 반발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관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정치의 시간이다. 지역 균형발전이나 지방분권 이슈는 국정과제로서 소외된 지 오래된 느낌이고, ‘지방시대’는 2년 만에 종식된 듯하다. KDB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은 희망 고문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 중이고, 대기업의 지방 이전이나 지역 유치는 요원하다. 부산시가 역동적으로 글로벌허브특별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물 건너가는 모양새다. 그 사이 강원도와 전북도는 특별자치도가 되었고, 수도권은 이미 초집중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수도권 신도시의 재개발을 위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제정했다. 수도권의 과밀화, 집중화는 점점 더해가고 있다. 지방시대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린 듯하다.

이번 차등요금제를 바라보는 필자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차등요금제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데이터 산업이나 반도체 산업 등은 다량의 전기를 필수로 한다. 따라서 싼 전기를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지식 기반 대기업을 유치하는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지역발전의 시금석이 바로 차등요금제이다.

지역을 차별하는 것과 지역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원전의 위험을 안고 사는 지역민에 대한 차등요금제의 적용은 지역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 법령을 개정하고, 한수원의 경영 정상화를 기다리고, 수도권의 반발을 잠재워야 하는 등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는 과제들이지만, 이번에야말로 차등요금제는 실시되어야 한다.


정치와 행정은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존재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정치의 으뜸은 신뢰라고 하지 않았던가. 위정자들은 ‘백성의 신뢰 없이 정치가 바로 설 수는 없다(民無信不立)’는 말을 깊이 새기기 바란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에 대한 약속, 이번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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