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僧 140여명 도움 받아 코로나 때 연 도심 선원… 대기자 줄서 놀랍고 감사
“저도 나이가 들면서 수행자로서 책무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40년 넘게 선방(禪房)을 다니면서 경험한 좋은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서울 상도동 보문사 주지 지범(68) 스님이 최근 ‘당신은 이미 완벽한 사람입니다’(불광출판사)를 펴냈다. 그는 6년 전 첫 책 ‘선원일기’를 통해 선승(禪僧)들의 내밀한 수행 과정과 선원 풍경을 전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지범 스님은 1978년 출가 후 40여 년간 전국의 선원을 다니며 안거(安居)한 선승. 계룡산 대자암, 설악산 백담사, 지리산 진귀암 등 무문관(無門關·밖에서 문을 잠근 채 수행하는 곳)은 물론 봉암사·고운사에서 100일 용맹정진하는 등 정통 선승의 길을 걸었다. 2000년 은사 스님이 갑자기 입적하면서 보문사 주지를 맡게 된 것은 그의 출가 인생의 전기(轉機)가 됐다. 그 이전까지는 선가(禪家) 전통에 따라 책을 멀리했지만, 주지로서 포교하고 법문하게 되면서 1주일에 한두 번은 서점을 찾아 신간을 훑고 글을 쓰게 됐다. 수행 경험과 단상은 수십 권의 노트에 모여 법문의 재료가 됐고, 책의 원고가 됐다.
이번 책에는 선승들의 수행담도 소개되지만 불자들에게 들려준 마음 공부에 관한 글이 많아졌다.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늙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마음이란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가꾸느냐에 따라 늙은 나가 있고, 젊은 나가 있을 뿐입니다’ ‘얼굴은 업(業)의 표상이고, 음성은 영혼의 메아리이며, 눈은 지혜의 안목이고, 귀는 우주의 속삭임이다. 지금 내가 하루하루 지어가는 언행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운명이 되고 삶으로 피어난다’ 같은 글이다.
스님의 나이도 어느새 60대 후반. 삭발하다가 면도 칼날 위에 흰 털이 수북한 것을 보고 새삼 놀라며 초심과 출가자의 책무를 더욱 새기게 된다고 했다. 출가하던 날 어머니는 3만원을 주머니에 넣어주시며 “집 생각 말고, 서산 스님 같은 큰 도인이 되어 어미를 구제해다오”라고 당부했다. “수행승의 사명은 무명(無明)과 번뇌에서 침몰해가고 있는 중생들을 건져내는 일이다. 이 책무를 등진다면 ‘놀고 먹는 중놈들’이란 소리를 면할 길이 없다.” 옛 스님들이 ‘중노릇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고 했던 말씀의 뜻도 새삼 절감한다.
지범 스님은 2022년 보문사 옆에 보문선원을 개원했다. 전국의 선원을 다니며 1000배씩 올리며 염원했던 꿈이다. 선원을 열면서 두 번 놀라고 감사했다고 한다. 첫째는 코로나 와중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고비 때마다 전국의 선승(禪僧) 140여 명이 십시일반 총 7억원 가까이 도와준 일이다. 둘째는 ‘도심 선원에 선승들이 올까’ 하는 기우를 날려버리고 정원 8명은 물론 대기자가 40명에 이를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지난주 시작한 올해 하안거엔 스님 8명과 출퇴근식으로 정진하는 재가자 79명이 선원 위아래 층에서 수행 중이다.
스님이 꿈꾸는 노년은 ‘한고추(閑古錐)’ 같은 모습인 듯하다. 선가(禪家)에서 쓰는 표현으로 ‘닳아서 무딘 송곳’이란 뜻. 지식보다는 자비의 모습이다. “한고추 같은 스님들은 참선이나 화두, 견성 등에 관해 말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묵묵히 몸소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수행자의 덕성인 겸손과 청빈, 온유함이 봄날의 청매화처럼 피어나는 스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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