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변방의 변호사들이 만든 ‘사법 공화국’

황대진 사회부장 2024. 5. 3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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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문제에 이어 의대 증원까지 법원이 결정
盧·文·李가 길 낸 ‘정치의 사법화’… 갈등 키우고 국민 분열시켜
21일 오후 22대 국회 초선 당선인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자투표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로텐더홀 계단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방 출신”이란 말을 자주 했다. 변호사였지만 고졸이고, 국회의원이었지만 비주류였던 그는 세상의 중심에서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되자 취임사에서 “변방의 역사를 종식시키겠다”고 했다. 자신과 대한민국을 동일시하고 변방 탈출을 선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노무현은 대통령까지 지냈지만 끝까지 ‘변방인’이었다”고 평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겉으로는 ‘적폐 청산’을 내걸고 속으로는 ‘대한민국 주류 교체’를 시도했다. 퇴임 후엔 ‘변방에서 중심으로’란 책을 냈다. 노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신이 이뤘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그 역시 ‘변방 의식’에 시달렸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17년 대선 출마 때 자신을 ‘변방의 벼룩’에 비유했다가 2022년 대선에선 ‘변방의 장수’로 바꿨다. 그는 “변방이 중심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한다”고 했다. 노·문·이 세 사람은 ‘변방의 DNA’를 공유한 변호사였고, ‘중심’에 진입하는 길로 정치를 택했다.

변방의 변호사들은 민주화와 인권 향상에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이들이 정치권력을 잡으면서 생긴 문제도 작지 않다. 가장 큰 것은 정치를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법률 지식을 앞세워 정치를 대화와 타협이 아닌 법조문 다툼으로 만들었다. 서로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게 정치인데, 어디서부터 불법이냐만 따진다. 그 결과 국회에선 온갖 꼼수와 편법이 난무하고 사회의 도덕과 상식도 불법 바로 직전까지 후퇴했다.

노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자기 이름으로 헌법 소원을 낸 대통령이다. 선관위의 ‘선거 중립 준수’ 요청이 자신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는데, 헌재는 기각했다. 수도 이전으로 아예 나라의 ‘중심’을 옮기려다 헌법 재판을 받았고, 한미 FTA, 이라크 파병 같은 외교 문제도 헌재를 거쳤다. 정치·외교의 사법화가 이때 시작됐다.

문 전 대통령은 정치가 극단적으로 사법화된 형태인 탄핵을 배경으로 집권했다. 그의 임기 중 전직 대통령 2명과 대법원장이 옥살이를 했다. 민생도 사법화됐다. 임대차 3법을 시행해 관련 분쟁이 10배 이상 늘었다. 국민을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갈라 싸움 붙인 꼴이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일반 국민을 형사 고소한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

정치의 사법화는 결국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는 길을 열었다. 문 전 대통령이 재가한 징계를 법원이 뒤집으면서 윤석열 총장은 정치인이 됐다. 윤석열 정부도 사법화의 악순환을 멈추지 못했다. 집권당 대표 교체에 법원이 개입하고 의사 증원 같은 정부 정책도 법원을 거쳐야 시행할 수 있게 됐다. 해병대 수사 의혹, 김건희 여사 사건에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정권의 명운이 걸려있다. 법원은 7개 사건 10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미래도 손에 쥐고 있다. 나라의 대소사를 사법부가 결정하는 사법공화국이 됐다.

변호사에겐 분쟁이 있는 곳에 돈벌이가 있다. 정치에 진출한 변방의 변호사들은 분쟁을 만들어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했다. 그래서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키우고 국민을 통합하기보다 분열시킨다. 22대 국회의원 300명 중 61명이 변호사다. 인구 대비 변호사는 0.0006%인데, 국회의원은 20%다. 상당수가 변방의 후예다. 이들의 권력욕에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국민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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