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뇌 수술 의사의 어금니
뇌 수술을 직접 본 건 지난 3월이었다. 두개골을 절개하니 뇌출혈 환자의 하얀 뇌경막이 수술 모니터를 꽉 채웠다. 양구현 강릉아산병원 신경외과장은 뇌경막을 잘라 핀으로 고정했다.
양 교수는 숨을 죽였다. 혈관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위험하다. 거미줄같이 빽빽한 혈관들을 천천히 헤집고 들어가 허연 조직이 나오면 절개했다. 바늘 구멍만 한 틈을 만들어 출혈이 있는 혈관을 찾아 계속 들어갔다. 피가 고이면 뽑아내고 또 헤집고 절개하는 과정이 몇 시간째 이어졌다.
‘잘 되고 있나?’, ‘이 수술이 끝은 날까?’ 구경만 하는데도 막막해 한숨이 났다. 큰 숲에서 혼자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미동 없이 이 수술을 7시간 동안 한 그는 환자와 사경(死境)을 같이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수술 후 인터뷰에서 그는 “벼랑 끝 환자를 살리려고 이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두 손으로 양 볼을 비볐다. 수술 중 긴장이 될 때마다 이를 꽉 깨물다 보니 오른쪽 어금니에 금이 갔다고 했다. 왼쪽 어금니는 부서져 이미 뺐다. 그는 전공의 이탈 후 거의 매일 병원의 4평짜리 자기 연구실에서 먹고 자며 하루 2~3명씩 응급수술을 한다.
그가 스스로 혹사하는 이유를 외부인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환자에 대한 집착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양 교수에게서만 느낀 게 아니었다.
직·간접적으로 접한 의사 대부분은 이 집착이 강했다. 핏자국 묻은 슬리퍼를 신고 산모에게 달려가던 김서연 강북삼성병원 산부인과 교수, “죽음 직전의 환자를 돕는 건 특권”이라는 안윤혜 서울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밤샘 심장 수술을 일상으로 삼아 2000명을 살린 윤영남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교수⋅⋅⋅.
이들은 자기 지식과 체력, 시간을 쏟아부어 환자를 살리고 싶어했다. 집착이 큰 만큼 ‘사람 살리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컸다. 둘은 동전의 앞뒷면 같았다.
이들은 개원을 하거나 피부 미용을 하면 워라밸을 챙기면서 돈도 더 벌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고 응급 콜을 받으면 달려나가는 삶을 산다. ‘살린다. 난 그런 사람’이란 집착과 자부심이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쳐 몸에 박인 것 같았다. 의사들은 이 자부심을 ‘자존심’이라고도 표현한다. 전공의 1만명이 동시에 이탈했는데도 병원이 돌아가는 건 자존심 센 의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존심이 무너지면 곧바로 의료 붕괴다.
정부는 최근 ‘집단 행동’에 가담했다며 일부 전공의·의대생 수사에 들어갔다. 의사 갑질을 신고하면 최고 30억원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발표도 했다. 의사도 죄 지으면 벌 받는 게 맞지만, 의사를 압박하는 성격이 더 크다. 의사를 ‘예비 범죄자’로 보고 적대시하면 의사 자존심에 금이 간다. 지금은 의사 자존심이 무너지면 환자는 물론 정부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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