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못 하는 건 정부 탓"…촛불 든 의사들, '의료 사망 선고' 집회

정심교 기자 2024. 5. 30.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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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거리에 모인 의사들과 시민들이 촛불과 스마트폰 조명 등을 활용해 불을 밝히며 정부의 의대 증원책에 반발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의 촛불은 사직 전공의(1년 차)가 든 것이다. /사진=정심교 기자

"정부는 자기들이 대처를 잘해서 의료체계가 안정적으로 잘 굴러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 진단된 암 환자가 치료를 못 받고, 기존에 치료받아 살 수 있던 암 환자들이 병원 사정상 퇴원하라는 말을 듣고, 암 치료도 약제를 본인이 가방에 담아 투약받을 수 있는 병원 찾아 전전하고, 간에 복수가 차도 복수를 못 빼서 숨차하고 고생하는 게 제대로 된 안정적 대처입니까?"(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30일 오후 9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임현택 의협 회장이 이같이 언급하며 정부를 비난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대한민국 정부 한국의료 사망 선고 촛불 집회'란 행사명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 연 집회에선 의협 추산 기준, 서울·경기·인천 2000명을 비롯한 전국 7개 권역 총 1만여 명이 정부의 의대증원책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다. 이날 2025학년도 대입 시행계획이 확정·발표되면서 정부가 추진해온 의대 증원책이 현실화하게 됐다.

이날 임현택 의협 회장은 개회사에서 "출석 점호부터 하겠다"며 "의료제도가 망가져 환자 살리는 자긍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100일 넘게 분노하며, 힘든 세월을 보낸 전공의 여러분들 오셨는가?"라고 외쳤다. 그는 의대생들을 향해서는 '잘못된 의대 교육을 받아 돌팔이가 될 수는 없다고 힘든 휴학의 길을 선택했다'고, 의대 교수들을 향해서는 '전공의들 사직한 자리, 죽을 고생을 하며 오늘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치하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정부 한국 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에서 의대 증원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2024.5.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그는 정부를 향해서는 '나치시대 게슈타포나 했던 짓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임 회장은 "정부는 14만 의료 전문가 단체의 대표인 나를 잡범 취급하며 고발했고, 경찰은 온갖 창피를 주며 없는 죄도 만들어 내고 있다"며 "사직한 전공의들을 파렴치한 범죄자 취급하며 처벌 위협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단 사직한 전공의, 집단 휴학한 의대생을 이어 이제는 '선배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그는 강조했다. 임 회장은 폐회사를 통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의료 농단에 대한 큰 싸움을 시작한다. 교수님들께서도 기꺼이 동의해 주셨다"며 "전공의·학생·교수님들뿐만 아니라 개원의·봉직의 선생님들까지 본격적으로 이 큰 싸움에 나서 주시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다음 달 대정부 강경 투쟁을 예고한 것이다.

이날 서울 촛불 집회에 참석한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사망 선고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도 "하지만 사망 선고를 내리고 싶지는 않다. 다시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정부 한국 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에서 의대 증원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2024.5.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부산=뉴스1) 윤일지 기자 =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에 반대하는 부산·울산·경남의사회, 전공의, 의대생 등이 3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 광장에서 '대한민국정부 한국의료 사망선고'를 주제로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2024.5.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부산=뉴스1) 윤일지 기자

'의료 개혁'을 주장해온 정부를 겨냥한 황규석 회장은 "우리 의사들이 무슨 폭력 집단도 아닌데, 정부가 우리를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햄버거값의 반값도 안 되는 '3300원'에 의사를 만날 수 있다. 단 1시간 이내에 전국 어디서든 원하는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며 "정부가 항상 얘기했던 OECD 나라로 가는 것을 원한다면 감기 걸려도 3~7일 후에 의사를 만날 수 있고, 전문의를 만나려면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하고, 수술받기까지 3~6개월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서울 집회 참석자들은 덕수궁 대한문 입구부터 시청역 3번 출구까지 약 150m 거리를 꽉 채웠다. 이들은 촛불과 종이컵, 모형 LED 촛불, 스마트폰 조명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을 밝히며 정부의 의대증원책에 저항했다. 이날 초등학생 아들과 손잡고 촛불을 든 40대 여성 A씨는 기자에게 "내과 의사의 삶을 걸어왔지만, 정부의 의대증원책에 희망을 잃었다"며 "내과 의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다는 전공의(1년 차) 남성 B씨는 기자에게 "병원을 떠난 후 별도의 아르바이트나 구직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정부가 의대 증원책을 의사들과 원점에서 재논의하지 않는 이상, 병원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이날 서울 집회에 참석한 70대 남성 이상렬 씨가 촛불을 들고 있다. 그는 사직 전공의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사진=정심교 기자

의협은 이날 집회에 앞서 '의사가 아닌' 일반 국민 중에서도 정부의 의대 증원책에 반발한다면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실제로 이날 서울 집회를 찾아 촛불을 든 이상렬(76) 씨는 "전공의들이 보수도 적은 채로 일만 열심히 해왔는데 정부가 협박하는 상황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집회에 동참하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서 올라왔다"고 울먹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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