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묵묵]실패의 말
구치소에서 특강하다 들은 말
“지금 우리 깨우러 온 거예요?”
일본 학자의 산문집 ‘전쟁의…’
실패의 여정 거쳐 도달한 성숙
“그래서 지금 우리 깨우러 온 거예요?”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만난 청년은 그 한마디로 내 아름다운 말에 흠집을 내버렸다. 교도소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던 중이었다. 그날 나는 중국 작가 루쉰이 <외침>의 서문에 썼던 ‘철방에 잠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절대 부술 수 없고 창문도 없는 철로 된 방. 수많은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모두가 곧 죽겠지만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고통이나 슬픔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한다. 루쉰은 물었다. 이 사람들을 깨워야 하는가.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어쩌면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 어차피 살아나갈 방법도 없는 이들을 깨워야 하는가.
그날 나는 이 물음에 인문학 공부의 이유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 부스러기 하나 구해오지 못하는 인문학, 미래의 단꿈이라도 꾸고 있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괜히 부자유와 고통의 현실만 일깨우는 인문학, 그것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이날 나는 자유인만이 부자유를 답답해하고,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만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인문학은 철방에서 사람들을 꺼내줄 수는 없지만 자유인으로 만들어줄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때 날아온 말이 저 말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깨우러 온 거예요?”
내 스스로 꽤 그럴듯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가 한 줌의 소금을 뿌렸다.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해라’, 그의 눈빛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날 내 계몽주의는 파탄났다. 지난 연말에 산문집 <사람을 목격한 사람>을 펴내면서 이때의 일을 에필로그에 실었다. 시간이 좀 지났으니 체기처럼 남아 있던 말을 소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의 물음에 괜찮은 답변을 할 수 있다면 책의 마무리로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꾸며낸 말이었다. 철방 청년의 말은 여전히 눈을 치켜뜨고 있는데 내 글은 그 눈을 덮기 위해 안달하고 있었다. 몇번이나 글을 고쳐 쓰다 포기한 나는 저 말을 어찌할 수 없노라고 고백하고 글을 맺어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고백이 마음을 환하게 해주었다. 실패를 자각하면 마음이 환해진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최소한 철방 바깥에서 온 잘난 구원자가 되지는 말자는 생각, 누군가를 구원하는 공부가 아니라 함께 헤쳐 나가는 공부를 하자는 생각도 들었다. 말의 실패를 감추었다면 실패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볼이 빨간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야 실패의 말이 선생의 말임을 알 것 같다.
쓰루미 슌스케의 산문집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를 뒤늦게 읽었다. 이 책에는 실패가 건넨 말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그는 그 말들을 듣기 위해 기꺼이 패배의 장소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다. 태평양전쟁 중 미국에 있던 그는 일본의 필패를 예감하고도 귀국해서 참전했다. 군국주의 일본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그 반대였다. 그는 “나의 ‘나라’와 함께 패배하는 쪽에 서 있고 싶다”고 썼다. 패배한 나라에 “‘영어 가능자’의 신분으로”, 다시 말해 성공한 자로 귀국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언제나 성공에서 성공으로 갈아탔던 엘리트들, 그 상습적인 전향이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도 모르는 엘리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실패를 실패로 겪지 않는 한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본의 유력가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했던 이 초엘리트가 반전평화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패배의 자리로 걸어가 기꺼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아름다운 실패담 중에는 이런 게 있다. 재일조선인 작가 김학영의 <얼어붙는 입>을 읽고 쓴 독후감인데, 일본에서의 재일조선인 차별과 언어의 문제를 언급한 뒤 그는 이렇게 글을 맺었다. “나는 예순 살에 한국어를 배웠다. 그 두 해 동안 겪은 실패의 경험은 내게 하나의 선물을 남겼다. 내가 그때까지 생각했던 것만큼 머리가 좋지 못하다는 깨달음이다. 늦은 감이 있는 이 깨달음은 앞으로 남아 있는 인생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차별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일본어를 대하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나의 상상력이 작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학영의 말더듬 앞에서 그의 일본어는 패배했을 것이다. 직접적 계기는 알 수 없지만 한국어를 더듬더듬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그 패배를 자각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노년의 그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 실패가 여생을 더 낫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패로 점철된 대가의 성숙이 한없이 부럽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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