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문학 속 ‘불빛’ 향해…함께 산책하는 기분이란[그림책]
불이 켜진 창문
피터 데이비드슨 지음 | 정지현 옮김
아트북스 | 292쪽 | 1만8500원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4)은 강가 앞에 있는 벽돌집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세 개의 빛이 있다. 하나는 그림 왼쪽에 있는 집 창문의 노란색 빛, 두 번째는 그림 정면의 벽돌집 앞에 있는 가로등이 내는 빛이다. 마지막 빛은 창문과 가로등에서 나오는 빛이 강물에 거울처럼 비치면서 내는 빛이다. 빛이 있는 지점 외에 나머지는 마치 그림자처럼 새카맣다. 창문과 가로등, 강물의 빛을 보면 분명 밤이지만 그림의 절반을 차지하는 하늘의 색은 푸르다. 낮이다. 그럼 지금은 낮일까 밤일까. <빛의 제국>은 불 꺼진 창문, 거리를 통해 낮과 밤의 모호함을 보여준다.
피터 데이비드슨의 <불이 켜진 창문>은 이런 불빛을 담은 예술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쓴 책이다. 옥스퍼드대 미술사학과 객원교수이자 같은 대학 챔피언홀 르네상스·바로크 큐레이터인 저자는 어렴풋한 빛을 소재로 한 회화, 문학 작품 등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부제가 ‘시와 소설, 그림 사이를 거니는 저녁 산책’인 이유는 저자가 산책을 하다 마주친 풍경을 통해 떠올린 생각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산책 중 했던 과거 회상, 약속 장소에 가는 길에 어떤 풍경을 보고 떠올린 그림, 누군가를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마치 하루일과를 기록하듯이 자세히 써 내려간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저녁, 저자는 런던 마운트 스트리트에서 북쪽으로 메릴본역까지 걸으며 사색을 한다. 그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웨스트햄프스테드역 기차의 노랗고 파란 불빛을 보며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떠올린다. ‘전차는 등에 푸른 불꽃을 일으키고 레일을 끝까지 따라가며 기계의 광기 속에서 음악을 만든다.’(사랑받지 못한 자의 노래) 런던의 겨울 분위기와 어울리는 시다. 시에서 출발한 저자의 생각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셜록 홈스>로, 이저벨 코드링턴의 그림 <저녁>(1925)으로 뻗어 나간다.
책을 읽고 나면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거리를 저자의 머릿속에서 함께 산책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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