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정치 회복과 방송법 개정 [세상읽기]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21대 국회의 마지막 이벤트로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이 있었지만 예상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의 기대 섞인 이변 전망에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재의결 반대와 무효표의 합은 정확하게 국민의힘 의원 수와 일치했다. 대통령의 거듭된 거부권 행사에 속절없이 무기력했던 21대 국회는 그렇게 초라하게 끝이 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통령에 의해 철저하게 종속된 여당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이전 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이후인 21대 국회 하반기엔 여당 당대표가 수시로 쫓겨나는 꼴사나운 모습이 공연히 드러나는 가히 목불인견의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22대 총선에서 정부 여당은 심판을 받은 셈이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국회 본연의 기능은 사라져버리고 국민들에게 의회 정치는 오로지 정쟁의 모습으로만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우리 사회가 시민운동의 시대에서 정당운동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화 운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87년 체제에서 대략 40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 시민운동의 역동성은 제도적 체계로 전이·흡수되어왔을 것이다. 어쩌면 ‘번영의 역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과거 각종 운동이 가지고 있던 역동성은 사회체제가 점차 고도화되면서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듯하다. 국회가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제도적 체계의 정점에서 민의의 대변자로서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22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각 정당들은 무기력했던 21대 국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은 공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은 개원과 함께 주요 특검 법안들과 21대 국회에서 대통령에게 거부당했던 여러 법안의 재상정을 준비하고 있다. 무기력한 여당에 대한 이번 총선의 심판을 생각한다면, 여당의 입장에서도 22대 국회에서는 21대처럼 일방적으로 대통령에게 끌려다니는 모습만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22대 국회의 의회 정치 회복을 보여줄 기회가 바로 ‘방송 3법’ 개혁안이라 생각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방송 3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와 시청자위원회 등 외부로 확대하는 내용 등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그리고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대한 것이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와 소모적인 공정성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 개정의 주요 취지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실패한 바 있다. 22대 국회에서는 현 정부의 이해득실을 떠나서 이 법안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논의해주길 기대한다. 사실 여야의 공영방송에 대한 정책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입장을 번번이 바꿔왔었지만, 정권 교체의 경험이 쌓여오면서 공영방송의 독립적 성격을 보장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의견 공유가 이뤄져왔다. 현재 민주당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송 3법’ 개정안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과거 여야 모두 공영방송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공영방송 이사진 수를 늘리고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을 담는 개정안을 각각 제안한 바 있다. 현재 개정안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살펴본다면, 개정안 그대로는 아니라도 여야가 충분히 합의할 여지가 있다.
방송 3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올해 8월 공영방송 이사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엉망이 되어 있는 우리 방송에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8월의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를 강행하고 또다시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한다면, 이는 곧 방송 전반의 파국이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이미 유튜브를 포함한 수많은 미디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몇몇 방송채널을 장악한다고 해서 선거에 도움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시민들의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라는 사실을 지난 총선 결과가 보여주었다.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대통령에 더해서, 국회까지 유명무실한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의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부디 22대 국회는 방송 3법에서부터 의회 정치의 자율성을 회복해줄 것을 기대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SK 지분 안 건드릴 것”…최태원, 1조3800억 마련 어떻게?
- 법원 “최태원, 노소영에 1조3808억 줘야…SK 주식도 분할”
- 첫 검사 탄핵 기각…헌법재판관 4명만 “유우성 기소 중대 위법”
- 배임 논란 턴 민희진, 하이브 ‘인의 장막’까지 버틸 수 있을까
- 윤 “지나간 건 다 잊고, 우린 한 몸”…국힘 워크숍서 ‘집안 단속’
- 이재명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 추진…대표 연임하고 대선후보로?
- [단독] “근육 녹을 정도…” 숨진 훈련병 추정 사인, 윤 일병과 같다
- 윤 대통령 “2032년 달 탐사, 2045년 화성에 태극기 꽂자”
- 비수도권 의대 신입생 60% 지역인재로…‘지방유학’ 우려
- 코 클수록 고환 크고 짝짓기도 유리…수컷 ‘코주부원숭이’의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