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의원들의 첫 출근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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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매주 참여하는 소모임에서 모임원인 20대 ㄱ씨가 언론사에 기자로 취업했다는 소식을 조심스레 알렸다.
ㄱ씨는 30대 직장인인 다른 모임원들에게 첫 출근을 앞두고 무엇을 유념하면 좋을지 물어왔다.
30일은 22대 국회 개원일로 국회의원들의 첫 출근날이었다.
요즘은 정말이지, 첫 출근 전날 밤처럼 복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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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연 | 정치팀 기자
몇주 전, 매주 참여하는 소모임에서 모임원인 20대 ㄱ씨가 언론사에 기자로 취업했다는 소식을 조심스레 알렸다. ㄱ씨는 30대 직장인인 다른 모임원들에게 첫 출근을 앞두고 무엇을 유념하면 좋을지 물어왔다. “상사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서 행동하라” “회사와 나를 분리하는 시간을 가져라” 등 조언이 쏟아졌다.
이윽고 ㄱ씨가 아무 말 않는 나를 쳐다봤다. 꼰대 같지 않으면서도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왔다. “술 좋아하고 잘 마신다고 하지 마세요.” 다소 엉뚱한 조언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사실 첫 출근에서 무리하게 잘 보이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첫 회사에 처음 출근했던 날, 입사 면접에서 어필한 각종 특기로 선배들에게 이미 각인이 된 동기들을 보며 주눅이 들었다. 나도 회사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언론사 준비를 상대적으로 길게 했다는 것을 빼고는 도저히 특별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결국 그날 저녁 마련된 술자리에서 무리수를 던지고야 말았다. 술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는 호기로운 선언으로 선배들의 눈길을 끌려 한 것이다. 대가는 혹독했다. 온갖 술자리에 불려 다니며 감당 못 할 양의 술을 마셨다. 이어진 회사 생활에서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첫눈에 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해나가는 이들이 직장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30일은 22대 국회 개원일로 국회의원들의 첫 출근날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신입사원처럼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분주했다. 특히 ‘국회 1호 법안’을 제출하기 위한 밤샘 대기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반복됐다. 시각장애인인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비례)의 보좌진들은 법안 접수가 시작되는 30일 가장 먼저 법안을 제출하기 위해 지난 27일부터 교대로 의안과 앞에서 대기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당론 1호 법안으로 해병대원 특검법과 민생위기 특별조치법을, 조국혁신당은 22대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 등을 발의했다.
그러나 ‘1호 법안’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의 끝은 대부분 초라했다.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은 결국 폐기됐다. 보좌진의 희생으로 언론의 반짝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결실을 보지는 못한 것이다. 이 밖에도 21대 국회 의안 접수 첫날에만 56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절반이 채 안 되는 26건의 법안만이 국회를 통과했다.
꼭 1호 법안이 아니더라도, 몇몇 의원들은 국회 임기 초반부터 선명한 구호나 특이한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으려 할 것이다. 특히 22대 국회에서는 국회의 입법권과 대통령의 거부권이 충돌했던 21대 국회 후반기의 강 대 강 대치 양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실종된 협치 탓인지 이제는 상대와 잘 싸우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국회의 뉴노멀이 돼버린 듯한 분위기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단어가 어느덧 구식처럼 느껴지는 22대 국회는 입법과 정치라는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정치인들을 제대로 알아보고 독자들에게 소개해 좋은 평가를 받게 할 수 있을까. 요즘은 정말이지, 첫 출근 전날 밤처럼 복잡한 마음이다.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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