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Good)이로구나…무연고사망자 기리는 씻김 [진옥섭 풍류로드]
아는 이들은 굿을 축제(祝祭)의 원형이라 하고, 나이 든 어른들은 축제에 가서도 옛말대로 굿을 본다고 한다. 2024년에 열리는 축제가 1170개다. 무분별한 축제로 ‘축제공화국’이라 비판하지만, 올곧은 축제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잘 고르면 축제만한 풍류의 장이 없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주는 오동나무나 대나무 지팡이를 짚어야 한다. 망자가 생전에 상주를 키우느라 속이 썩어 텅 비었기에 속 빈 나무를 짚는 거다. 그러나 상장(喪杖)을 짚을 상주 없이 이승을 하직한 영혼들이 있었다. 2023년 4월6일 한식날, 주최 측과 관객이 상주가 되어 상장을 짚는 것처럼, 오동나무 장구에 대나무 대금 소리를 내었다.
향을 피우고 술을 부어 혼백을 부르고 “부산광역시 서구청장 공한수 감소고우” 감히 아뢰기 시작했다. 가족해체와 이산을 연고로 무연고사망자가 된 106인의 신위를 동대신1동 000부터 일일이 호명하였다. 나는 집례가 되어 관객에게 “배-”하면 고개를 숙이고, “흥-”하면 고개를 드시오 했다. 대신공원 내 구덕민속예술관 앞마당, 관객의 반이 등산객이었는데 숙연히 예를 갖추었다. 진도씻김굿의 악에 맞춘 유교의 예를 마치고, 씻김을 시작하였다.
씻김굿은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천도하는 굿이다. 망자를 위한 굿이라도 앞은 산자를 위한 축(祝)을 하고, 뒤는 망자를 위한 제(祭)를 하는 이중구조다. 물론 경사굿도 역시 산 자에게 축을 하고 도와준 조상에 제를 한다. 그래서 아는 이들은 굿을 축제(祝祭)의 원형이라 하고, 나이 든 어른들은 축제에 가서도 옛말대로 굿을 본다고 한다.
“신이로구나, 신인 줄을 몰랐더니…” ‘초가망석’은 씻김굿의 대상이 된 망자와 각 신들을 불러들이는 첫대목이다. 망자의 팔자가 ‘무연고사망자’ 육 자가 될 줄 꿈엔들 알았으랴. 서구청 관계자 말로, 시신의 70%는 가족이 인수를 거부했다 한다. 텅 빈 삶을 기리는 듯 대나무 대롱을 빠져 온 대금의 공명이 얼얼했다.
“손님아 손님네야…” 양용운 무녀가 ‘손님굿’을 이어 나갔다. 손님굿은 원래 천연두의 신인 손님마마를 달래는 굿이다. 그런데 진도씻김굿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1980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천연두 멸종을 발표했다. 그래서 대대로 크게 모셔져 탁월한 음악적 성취를 이룬 손님굿은 ‘오늘 오신 손님’을 위한 감상용 굿이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 다시 역병을 달래는 임무를 시작해야 했다. 게다가 천연두도 테러리스트들이 생화학무기로 쓸지 모른다 하고, 억만장자 빌 게이츠는 기후변화로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할 확률이 50%라 말한다. 이러니 손님굿은 테러와 기후변화까지 감당해야 하는 심히 중한 굿거리가 되었다.
그러면 ‘오늘 오신 손님’들은 누가 챙길 것인가. 바로 제석신이 감당하는 것이다. 원래 제석의 이름은 인드라(Indra)로 기원전 1500년경에 형성된 ‘리그베다’에서 아수라를 이긴 전쟁의 신이다. 이 힌두의 신이 불교로 개종해 호법신이 되었고 한자 제석(帝釋)으로 번역되었다. 삼국시대에 이 땅에 도착했고 고려에서는 호국신으로 성대히 모셔졌다. 그리고 고려 후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무속의 신으로 변모한 제석이 나온다.
불교에서 왔기에 고깔을 쓰고 장삼을 입는데, 조선왕조를 거쳐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한 신이다. 관객에게 수명장수 부귀공명을 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너도나도 시줏돈을 들고나와 빌었다. 판을 쥐락펴락하는 박미옥 무녀가 “자손 주머니 품에 안고, 복주머니 손에 들고”와 복을 챙겨 주겠다니, 산 정상에서 등산객 뛰어 내려올 정도였다.
관객은 “파안대소에서 멜랑꼴리 모드로 전환”되었다. 판이 드디어 씻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망자가 입고 갈 새 옷을 돗자리 위에 펴고, 이를 잘 묶어 세우는 것이 ‘영돈말이’이다. 그 위에 누룩, 밥그릇, 똬리를 얹고 솥뚜껑을 덮으면 마치 갓을 쓴 사람의 모양이다. 무녀는 이 신체를 향물, 쑥물, 맑은 물로 닦아내는 데, 이 대목이 ‘씻김’이다. 무녀 송순단이 들어서서 굿판을 압도해 나갔다. “넋이로구나 넋인줄을 몰랐더니…” 아랫배를 신축해 강약을 만들고 끌어올린 한 음 한 음에 희비(喜悲)를 다 새긴다. 예전 ‘진도 삼례’로 불린 채정례, 조공례, 김대례를 잇는 최고의 목이다.
옛 성음이 담긴 리드미컬한 슬픔, 마이크를 쥐고 버텨보려 해도 팔이 둥둥 떴다. 옛날 권커니 잣 커니 차오른 취기에 비닐 술잔이 손아귀를 빠져나가던 때였던가 보다. 무게를 떨군 빈손이 바람결에 저절로 들리던 순간들을 내 견갑골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울어 텅 빈 상주의 몸을 흥이 과한 자가 부축하며 춤을 권했다. 처연한 밤 누구라도 노래와 춤으로 눈물과 땀을 다 쏟아야 했다. 그래야 삶이 소금기 없이 뽀송뽀송해지는 것, 그렇게 산 사람까지 싹싹 씻기는 게 진도 땅의 씻김굿판이었다.
“할리우드 스타는 레드 카펫, 우리네 혼령은 화이트 카펫.” 씻김굿의 마지막은 망자의 저승길을 닦아주는 ‘길닦기’이다. “저기 저, 저 산밑에는, 무슨 꽃이 피었는지…” 저승 가는 길을 상징하는 하얀 ‘길 베’가 펼쳐진다. 그 길이 물길인지 망자를 태운 배인 ‘넋당석’이 지나간다. 흰 천 위를 떠가는 배, 그것은 씻김굿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 관객들이 다투어 나와서 저승길의 노잣돈을 놓았다. 마음은 원이로되 쑥스러웠던 ‘샤이보수’들도 나온다. 내내 참았던 이들이 재빨리 노자를 놓고 해우소를 찾는다. 그렇게 모두 쏟아져 나와 덩실거리는 난장이 펼쳐졌다.
2024년, 5월은 축제의 계절. 가는 곳곳마다 축포가 터진다. 그 많은 축제의 개막식은 공식처럼 동일하다. 단체장 축사의 내용이 시도의원과 지역유지를 호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선출직의 앞날은 표가 좌우하기에 일일이 들먹인다. 관객들도 그 정도는 견뎌야 2부에 나오는 연예인을 볼 수 있으니 묵묵히 듣는다. 마치 대한뉴스를 봐야 신성일 엄앵란 영화를 시작했던 옛 시절 같다. 눈치 빠른 관객은 인사말만 마치고 떠날 유력인사의 귀빈석을 노리는 게 축제 관람의 노하우가 되었다.
각처에서 유지들이 호명될 때, 106인의 신위를 부르던 작년의 굿판이 생각났다. 행사라면 유력한 사회단체의 요구로 벌어지는 데, 투표권을 반납하고 이승을 떠난 무연고사망자가 무슨 힘으로 굿판을 요구할 것인가. 또 굿이라면 유력한 종교단체의 표가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떨어져 나갈 일 아닌가. 그럼에도 뚝심으로 밀어붙인 구청장이 있었다. 혹시 몰라 한식날 일정을 비웠는데 기별이 없었다. 만만치 않았겠지, “공한수는 굿청장”이라 쑤군댔을 거야. 그런데 “6월5일 오후 4시 송도오션파크.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진도씻김굿” 문자가 왔다.
굿(good)이로구나! 영남 판에 호남 굿이니, ‘영호남 씻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집계에 따르면 2024년에 열리는 축제가 1170개다. 무분별한 축제로 ‘축제공화국’이라 비판하지만, 올곧은 축제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잘 고르면 축제만한 풍류의 장이 없다. 부지깽이를 꼽아도 꽃이 피는 5월은 산이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6월은 바다다. 신(新)이로구나! 송도 앞바다에 축제가 난다.
사족을 붙이면, 씻김굿의 주선율은 대금이 담당한다. 그래서 영호남 씻김에 오시걸랑 대금을 살펴보시라. 두툼한 대나무를 촘촘히 휘감고 있는 낚싯줄이 눈에 띌 것이다. 워낙 통 큰 소리기에 쪼개지지 말라고 18호 낚싯줄로 감았다. 18호라면 수온 상승으로 부산 송도 앞바다까지 올라오는 다금바리(자바리)를 낚을 수 있는데, 굿판에 수용되어 사람 낚는 어구가 된 것이다. 굿판의 호남 대금, 분명 나라의 근심과 걱정을 제하던 영남의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될 터이다.
진옥섭 | 담양군문화재단 대표이사.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소룡의 ‘당산대형’을 보고 ‘무(武)’를 알았고, 탈춤과 명무전을 통해 ‘무(舞)’에 빠져들었다. 서울놀이마당 연출로 서울굿을 발굴하면서 ‘무(巫)’에 심취했고, 초야를 돌며 기생, 무당, 광대, 한량 등 숨은 명인을 찾았다.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 ‘여무, 허공에 그린 세월’, ‘전무후무(全舞珝舞)’를 올리며 마침내 ‘무(無)’를 깨닫게 되었다. 이 사무친 이야기를 담은 ‘노름마치’를 출간했고, 무대와 마당을 오가며 판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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