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소영, 이혼 소송에 SK 퇴거 요구에 미술관 개점 휴업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4. 5. 3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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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지만 미디어 아트는 더 짧다. 작품은 남기기 어렵지만, 정신은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2022년 펴낸 저서 '미디어 아트와 함께한 나의 20년'(북코리아 펴냄)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4월에는 아트센터 나비가 입주한 건물주인 SK이노베이션이 노 관장 측에 미술관 퇴거를 요구하며 부동산 인도 등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갈등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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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인생은 짧지만 미디어 아트는 더 짧다. 작품은 남기기 어렵지만, 정신은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2022년 펴낸 저서 ‘미디어 아트와 함께한 나의 20년’(북코리아 펴냄)에서 이렇게 썼다. 2019년부터 긴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자신의 미술관을 분신처럼 아꼈다.

노 관장은 1984년에는 워커힐 미술관을 개관해 이끌었고, 2000년 12월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서린빌딩 4층에 나비를 개관했다. 이 공간을 이끌면서 노 관장은 ‘미디어아트 선구자’로 불렸다.

아트센터 나비는 ‘미디어 아트’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2000년에 개관한 대한민국 최초의 미디어 아트미술관이다. 지난 20여 년간 디지털 혁명의 태동기에 시작해 그 궤적을 함께해왔다. 기획자만 200여 명을 배출했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이 됐다.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도 해왔다. 미디어아트, AI 등 기술을 활용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학교 융합기술대학원 디지털정보융합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서강대학교 지식융합학부 아트앤테크놀로지전공 초빙교수와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노 관장은 저서에서 “‘창조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정체성에 닻을 내리면서 나는 열정적으로 창작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면서 “미디어 아트라는 작은 입구로 들어가서 헤매다가 정체성, 특히 기술 시대의 인간 정체성이라는 광활한 출구로 나온 것 같다. 이제는 가야 할 곳이 좀 더 뚜렷이 보인다”라고 썼다.

그는 지난해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백남준 다큐멘터리영화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 시사회에 참석하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연 ‘미디어 아트의 미래’ 주제 세미나에 참여하는 등 미디어아트 관련 국내외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지난 4월에는 아트센터 나비가 입주한 건물주인 SK이노베이션이 노 관장 측에 미술관 퇴거를 요구하며 부동산 인도 등 청구 소송을 제기하며 갈등을 빚었다. 아트센터 나비가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당시 노 관장의 변호인은 “노 관장 개인보다는 미술관의 대표자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며 “미술관은 미술품을 보관하는 문화시설로서 그 가치가 보호돼야 하고, 근로자들의 이익을 고려해야 할 책임과 책무가 있기 때문에 퇴거는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소송 등의 여파로 인해 아트센터 나비는 최근 전시를 여는 횟수가 뜸해지면서 개점 휴업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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