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명 참사 ‘없었던 일’로 만든 ‘팡마오의 죽음’…누가 덮었나

한겨레 2024. 5. 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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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착취 논란 뒤늦게 불붙으며
‘메이다고속도로 붕괴 참사’ 잊혀
팡마오 사건이 이슈가 된 뒤 창장대교를 메운 꽃다발과 배달 음식들. 중국 비아르티브이(BRTV) 화면 갈무리.

2024년 4월11일 새벽 4시23분께, 한 젊은 남자가 중국 충칭 창장대교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로부터 열흘여 뒤인 4월23일, 경찰 수색대가 그의 주검을 강물에서 건져 올렸다. 그는 후난성 출신의 21살 청년 류제로 밝혀졌다. 그는 생전에 직업 게이머로 활동했고 그 세계에서는 ‘팡마오’라는 아이디로 불렸다. 팡마오가 창장대교 아래로 뛰어내려 자살한 이유는 여자친구와의 ‘애정 싸움’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팡마오는 자신의 죽음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을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애인에게 돈 보내고 사망한 21살 청년

2021년 11월, 팡마오는 평소처럼 게임을 하던 중 우연히 충칭에 사는 한 여성을 알게 됐다. 그 여성은 팡마오보다 6살이 많았다. 온라인으로 거의 매일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을 키워가던 둘은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를 즈음해 연인 사이가 되었다. 둘은 약 2년여 동안 후난과 충칭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를 하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러다 2023년 10월, 팡마오가 충칭으로 이주했고 여자친구 집 근처에 세를 들어 살았다. 그 사이 둘은 여느 연인들처럼 다툼도 자주 했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둘은 팡마오가 자살하기 전까지도 가족과 지인들이 다 알고 있던 공인된 연인 사이였다.

온라인 대리게임으로 제법 많은 돈을 벌던 팡마오는 꽃가게를 차리고 싶어 하는 여자친구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줬다. 또 여자친구가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금전을 제공했다. 여자친구 역시 팡마오가 돈이 필요할 때 급전을 여러 차례 빌려줬다. 둘은 겉으로만 보면 그저 흔하고 흔한 보통의 연인 사이였다.

그러다 팡마오가 자살하기 며칠 전인 4월3일과 4일 이틀 동안 둘은 크게 다퉜다. 급기야 둘은 홧김에 ‘헤어지자’고 했다. 4월10일, 팡마오는 스마트폰으로 여자친구에게 ‘66666.66’위안(약 100만원)을 송금하며 꽃가게 경영에 보태 쓰라고 했다. 그 돈은 순전히 자발적인 증여라고 강조했다. 여자친구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팡마오는 입금 직후 바로 여자친구를 친구 목록에서 삭제하고 블랙리스트로 지정했다. 이 때문에 여자친구는 그 돈을 다시 돌려주고 싶었지만 스마트폰 계정으로는 돌려줄 방법이 없었다. 여자친구에게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송금한 몇 시간 뒤인 4월11일 새벽, 팡마오는 창장대교 아래로 몸을 던진 것이다.

팡마오가 단지 ‘실연의 아픔’ 때문에 투신자살을 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삶의 좌절과 고통이 잠복해 있던 중 실연의 고통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충동적인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팡마오의 죽음을 알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24년 5월1일 중국 광둥성 메이저우시 다부현의 고속도로 차선 한편이 무너져 있는 모습. 메이저우/AFP 연합뉴스

51명 삼킨 고속도로 붕괴 참사와 ‘보도 실종’

2024년 5월1일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광둥성 메이저우시 메이다(梅大)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도로가 붕괴했다. 이제 막 약 일주일간의 노동절 황금연휴가 시작되던 첫날 새벽, 대부분의 사람은 단잠에 빠져 있던 시각이다. 그 시간에 메이다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차량에는 대부분 인근 광저우와 선전 등에 있는 자동차 부품 및 정비공장 등에서 일하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고향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4월30일 오후에 일을 마치자마자 저녁을 먹고 바로 차를 타고 출발해 밤새 고향으로 달려가던 중이었다.

메이다고속도로는 광둥성과 푸젠성을 잇는 주요 고속도로다. 2010년 도로 건설이 시작돼 2014년 말 완공됐다. 메이다고속도로가 건설되던 시기는 중국 전역에서 고속철도와 고속도로 건설 붐이 일던 ‘고속 붐’ 시대이기도 했다. 이 고속도로는 여러 개의 산맥이 연결된 구릉지대인데다 복잡한 지질환경과 잦은 폭우 등으로 광둥성 고속도로 공사 중 난도가 가장 높았다고 손꼽혔던 곳이다. 원래도 우기에 폭우가 자주 쏟아지고 산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었는데, 2020년 이후에는 기후위기가 극대화하면서 매년 ‘역대급’ 가뭄과 폭우가 수시로 발생해 도로 붕괴 위험성이 자주 지적됐던 곳이다. 2023년 4월에도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로 안전 위험성이 지적되자 사흘간 도로를 봉쇄하고 안전진단을 했다. 올해에도 봄부터 4월까지 거의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잦은 비가 내려 도로를 자주 지나던 주민들 사이에 붕괴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한다.

도로 붕괴 사건이 발생한 직후 관계 당국이 내놓은 첫 사상자 발표는 이랬다. “1명 사망, 30명 부상.” 그 발표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은 그나마 인명피해가 적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몇 시간 뒤, 두 번째 발표가 들려왔다. “19명 사망, 30명 부상.”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새벽에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관계 당국도 구조에 허둥대며 경황이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또 몇 시간 뒤 세 번째 발표가 이어졌다. “24명 사망, 30명 부상.” 부상자 수는 변하지 않는데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는 발표가 이어졌다. 이 발표도 최종 발표가 아니었다. 네 번째 발표에서는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났다. “36명 사망, 30명 부상.” 사람들은 설마 이번이 마지막 발표이겠거니 생각했다.

5월2일 오후 3시께 사고수습을 책임지고 있는 메이저우시 정부 차원의 발표가 ‘또’ 나왔다. 다섯 번째 발표였다. “사망자 48명. 다른 3명 사망자는 유전자 감식 중. 부상자 30명.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음.”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거의 하루 반이나 지나서 나온 최종 발표였다. 시 당국은 이날 발표에서, 총 23대의 차량이 붕괴된 도로 밑으로 추락했고 그 과정에서 차량이 겹겹으로 충돌하면서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사상자 규모가 늘어났다고 했다. 기이했던 점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3명의 사망자까지 합치면 총 사망자가 51명인 셈인데, 굳이 사망자 수는 48명이고 다른 3명은 유전자 감식 중이라고 ‘따로’ 발표한 점이다. 자세히 듣지 않으면 사망자 수를 48명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이 발표를 끝으로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발표를 끝으로 메이다고속도로 붕괴 사고에 대한 언론의 보도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51명의 인명을 앗아간 초대형 사고였음에도 5월2일 오후 사상자 최종 발표 이후 거짓말처럼 언론과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하루아침에 ‘스타’ 된 팡마오

그 자리에 다시 팡마오가 ‘살아 돌아왔다’. 5월2일 이후 중국의 모든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는 갑자기 ‘팡마오’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로 떠올랐다. 팡마오는 4월11일 죽었고 그의 주검은 4월23일 발견됐는데 5월2일 이후 난데없이 그의 이름이 온 언론과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을 도배한 것이다. 5월2일, 죽은 팡마오의 누나가 갑자기 웨이보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 팡마오가 생전에 여자친구와 주고받았던 메시지 등을 공개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온갖 영향력 있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이 팡마오의 자살과 관련된 일을 종일 떠들어댔다. 전국 각지의 주요 언론매체에도 마치 주요 사회 사건처럼 대서특필하며 보도하기 시작했다. 젊고 순진했던 청년이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자살한 것처럼 여겨지던 팡마오의 죽음은 갑자기 거대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으로 비약, 발전해나갔다.

메이다고속도로 붕괴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부터 팡마오의 누나는 인터넷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열혈 투사’가 됐다. 동생이 나이 많은 사악한 여자친구의 온갖 꼬드김과 사기꾼 수법에 빠져 금전과 감정을 갈취당했다고 주장하며 ‘정의를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온갖 인플루언서들의 ‘정의를 위한’ 맹활약도 이어졌다. 5월3일, 팡마오 누나가 동생의 화장 증명서를 인터넷에 올리자 전국 각지에서 팡마오가 투신한 창장대교로 배달 기사들의 오토바이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나는 풀때기는 먹기 싫고 맥도널드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던 팡마오의 생전 소원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보낸 햄버거와 각종 음료수 배달이 몰려들었고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도 창장대교를 가득 메웠다. 약삭빠른 업체들 중에는 어차피 죽은 사람에게 배달되는 물건인 걸 알고서는 빈 상자만 넣어서 배달하다가 들켜서 ‘악덕업체’로 공개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죽은 팡마오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반대로 그의 여자친구는 하루아침에 나이 어린 남자를 등쳐먹는 ‘꽃뱀’(捞女)이 됐다. 팡마오 누나가 그 둘이 생전에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공개하자 여자친구 신상이 금방 온라인에 유포됐고, 그가 운영하는 꽃가게에도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인신공격이 가해졌다. 온라인 대리게임 일을 하며 밤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종일 힘들게 일만 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꽃뱀 같은 사기꾼에게 갖다 바친 팡마오의 짧은 인생이 너무 불쌍하고 가엾다며 전국 각지에서 곡소리가 쏟아졌다. ‘그런 나쁜 년’은 반드시 법의 응징을 받아야 한다며, 팡마오 가족이 고소하기만 하면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고 자처하는 법률가도 나타났다. 5월3일, 온·오프라인에서 인신공격을 당하던 팡마오의 여자친구는 견디다 못해 자신의 신상과 팡마오와 주고받은 사적 메시지를 공개한 팡마오 누나를 사생활 침해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5월5일, 팡마오 누나도 그 여자친구를 동생의 돈을 갈취했다며 맞고소했다. 인터넷에서는 팡마오의 여자친구를 향한 온갖 협박과 욕설이 난무했고 ‘팡마오 사건’은 이제 남자를 꼬드기고 사기 쳐서 금전 갈취를 일삼는 세상의 모든 ‘꽃뱀들과의 전쟁’으로 비약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2시간 만에 사라진 르포 기사와 죽은 사람들

5월1일 새벽, 메이다고속도로 붕괴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부터 갑자기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팡마오 사건’은 노동절 연휴 기간 내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하마가 됐다. 사람들은 메이다고속도로 붕괴 사고로 51명이 순식간에 죽었고, 그 안에는 고향 집으로 돌아가던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일가족과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린 듯했다. 노동절 연휴 내내 중국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는 ‘억울하고 불쌍하게 죽은 청년 팡마오’ 이슈가 폭발 직전 용암처럼 들끓어 올랐다. 5월6일, 시사주간지 <싼롄생활주간>은 인터넷판에서 메이다고속도로 붕괴 사건에 대한 장문의 르포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사건 발생 후 중국 내 주요 언론에서 처음으로 내보낸 종합 르포 기사였다. 하지만 이 기사는 인터넷판에 게재된 지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404’(금지 문장)로 분류돼 사라졌다. 메이다고속도로 붕괴 사고로 죽은 51명의 인생도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5월19일, 충칭 공안국은 팡마오 사건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팡마오와 그의 여자친구 사이에 오고간 금전 거래는 연인 간에 있을 수 있는 정상적인 것이었고 어떤 사기와 갈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모든 자료와 증거를 검토한 결과 그들은 정상적인 연인관계였다고 발표했다. 그를 고소했던 팡마오 누나도 조사 결과를 인정했다. 경찰은 팡마오 여자친구의 신상정보와 메시지 등을 허락 없이 유포한 팡마오 누나를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 밝혔다. 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짧은 기간 수많은 팬덤을 거느리던 팡마오 누나의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은 순식간에 ‘법대로’ 폐쇄됐다. 타인의 사생활을 ‘불법으로’ 폭로하고 거짓 정보를 유포해 대중을 선동했기 때문이다.

메이다고속도로 붕괴 사건이 파묻히자 팡마오도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갔다. 한 누리꾼은 이렇게 푸념했다. “어떤 죽음은 파묻히고 어떤 죽음은 이용당하고, 또 어떤 죽음은 아예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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