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만한 땅에서…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60%가 태어난다

김성모 기자 2024. 5. 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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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TSMC도 입주한 신주과학단지...연매출만 62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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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수도 타이베이 남서쪽 신주시엔 1980년 대만 정부 주도로 신주과학단지가 설립됐다. 서울 동대문구 크기의 땅에서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를 비롯, 620여 테크 기업이 밀집해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곳 신주(新竹)는 전 세계 반도체 분야에서 ‘넘버 원’이 허다합니다. 전 세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생산의 65%를 차지해 전 세계 1등, 패키징·테스트 분야 점유율도 53%로 전 세계 1등이죠.”

22일 오전 ‘대만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신주시 신주과학단지의 행정건물 8층 회의실. 황위싱(黃玉興) 부연구원이 발표 자료를 넘기며 속사포처럼 신주과학단지 소개를 쏟아냈다. 그의 말엔 대만 반도체에 대한 자부심이 진득했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남서쪽으로 차로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신주시는 세련되고 깔끔한 건물들이 곳곳에 솟아난 모습이었다. 특히 신주시 내 14.67㎢ 크기의 서울 동대문구만 한 땅에 조성된 신주과학단지는 ‘대만 반도체의 심장’으로 통한다. 이곳에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TSMC 본사를 비롯해 620여 곳의 하이테크 기업이 빼곡히 입주했기 때문이다. WEEKLY BIZ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최전선 중 하나인 신주과학단지를 찾았다.

22일 오전 황위싱 부연구원이 신주과학단지 행정건물 8층 회의실에서 과학단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신주(대만)=김성모 기자

◇상전벽해… 연매출만 62조원

신주과학단지가 세워진 곳은 1980년 이전만 해도 온통 논밭뿐이었다. 그러나 1980년 대만 정부 주도로 과학단지가 육성되며 이곳 풍경은 완전히 탈바꿈됐다고 한다. 과학단지 곳곳에 테크기업 생산기지와 연구개발(R&D) 센터가 들어서고, 대만 유수 대학들의 캠퍼스, 직원 복지를 위한 근로자 주거시설과 체육 시설들도 줄줄이 세워진 모습이었다.

“대만에서 개인 평균 소득 1위인 부자 동네가 바로 이곳입니다.” 황 부연구원이 설명을 이었다. 대만 기업은 수백곳과 글로벌 기업 80여 곳까지 이 과학단지에 입주해 각종 첨단 제품을 쏟아내니 1인당 평균 소득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신주과학단지에 따르면, 이곳엔 반도체 집적회로(IC), 광전자, 바이오 테크, 기계류, PC, 통신기기 등 주요 6개 산업 분야에 총 17만60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한다. 서울의 한 자치구만 한 크기의 과학단지에서 나오는 연매출만 455억달러(약 62조원)에 이른다. 신주에서만 세계 반도체(비메모리)의 60% 이상, 첨단 반도체의 경우 90% 이상이 생산된다는 설명이다. 과학단지에선 정부출연연구기관과 기업들 그리고 대학 사이 산학연 협력도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과학기술력이 곧 대만 국력이 되는 현장인 셈이다.

전 세계 1위 파운드리인 TSMC에 대한 대만인의 자부심은 특히 남달랐다. 과학단지 관계자는 “TSMC에선 바이러스 크기(10~100nm)보다 작은 3nm(나노미터·10억분의 1m)짜리 미세공정이 가능하다”면서 “첨단 반도체 수율(收率·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까지 높아 전 세계에 이를 따라올 기업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가난’을 겪은 뒤 악바리 근성으로”

그렇다면 대만이 이같이 수준 높은 반도체 기술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신주과학단지 행정건물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만 반도체 기업 매크로닉스 인터내셔널(MXIC)에선 우민츄(吳敏求·76) 회장이 직접 나와 글로벌 기자단을 맞이해 대만 반도체의 경쟁력을 설명했다. MXIC는 1980년대 후반 신주과학단지에 설립된 대만의 주요 메모리 제조업체 중 하나다. MXIC 본사 건물 쇼룸엔 반도체 각 제조 공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MXIC가 만들어 내는 제품들이 전시된 모습이었다.

대만 반도체 기업 매크로닉스 인터내셔널 우민츄 회장이 22일 자사 쇼룸에서 대만 반도체의 경쟁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주(대만)=김성모 기자

각국 기자들이 “대만의 앞선 반도체 기술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쏟아내자, 우 회장은 유창한 영어로 ‘옛날얘기’부터 꺼내놨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우리(대만)는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도 충분하지 않았어요. 열심히 일해야만 했지요. 이런 가난을 이겨내려는 악착같은 문화, 소위 ‘아시아 문화’가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겁니다.” 유럽에선 근로자들이 ‘오랜 휴가 즐기며’ 한가하게 일해왔다면, 아시아에선 잠시라도 공장 멈춰 설까 눈에 불을 켜고 일해 지금의 성공을 일궜다는 게 우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반도체 공장은 잠시만 멈춰도 피해 금액이 엄청난 ‘비싼 공장들’”이라며 “결국 누군가 24시간 365일 일하며 지켜야 한다는 얘기인데, 이를 해낸 나라들은 근면성실을 중요하게 여긴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었다”고 했다.

다만 일본과 대만의 서로 다른 기업 문화가 지금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우 회장은 “예컨대 일본 기업에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집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만의 경우엔 대부분 최고경영자(CEO) 한 명이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진다”며 “이에 대만 반도체 기업들은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움직여 지금의 성공을 일궜다”고 했다.

◇대만의 도전 과제는

그러나 대만의 반도체 질주에 넘어야 할 산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뛰어난 반도체 제조 기술을 활용해 AI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느냐가 대만이 직면한 큰 도전 과제란 게 대만 전문가들 설명이다. 앞서 라이칭더 대만 신임 총통도 취임사에서 “대만을 ‘실리콘(반도체) 섬’에서 ‘AI 섬’으로 변모시키겠다”고 한 바 있다. 대만경제연구소 브라이언 창 부연구위원은 “뛰어난 반도체 기술력을 AI 연구 발전에 적용시켜 대만 경제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반도체 제조 현장에선 라이벌 ‘한국’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는 눈치였다. “대만 업체의 가장 큰 경쟁자가 누구인지” 묻는 글로벌 기자들 질문에, 우 회장은 답했다. “물론 한국 기업들이죠. 삼성과 SK하아닉스는 매우 공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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