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권 수십억대 전세사기 잇달아…핵심 피의자는 해외로 잠적(종합)
전문가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태 지속할 듯"…경찰 "중심관서 지정해 수사"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김솔 기자 =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 사이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 등의 세입자들이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경찰서를 찾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주택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높은 역전세 상황이 심화한 2020~2021년 사이 맺어진 전세계약의 계약만료 시점이 도래하면서 당시 무자본 상태에서 은행 대출을 받아 이른바 '깡통주택'을 양산한 임대인들이 임차인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줄줄이 피소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 사업장 등이 밀집한 수원권에서는 피해 금액이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사건이 잇달아 터지고 있는데, 사건이 각 경찰서에 분산된 데다가 핵심 피의자의 해외 잠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수사에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바지 임대인에 공동투자자까지…다수가 얽히고설켜
30일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수원지역에서 거물 임대인으로 불렸던 강모 씨는 시내 신축 빌라 등 8채의 건물을 바지 임대인들과 함께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상태로 전세사기를 벌여 입건된 상태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29일까지 수원남부경찰서에 강씨 일당을 상대로 고소장을 낸 세입자는 총 86명으로 집계됐다.
이 사건의 특징은 주범인 강씨가 5명의 바지 임대인을 두고 사기 규모를 키워나갔다는 점이다.
강씨는 빌라를 짓기 좋은 땅을 찾은 뒤 바지 임대인의 명의를 빌려 은행 대출을 받아 무자본으로 건물을 짓고, 세입자들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 1억~2억원 대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채 왔다.
바지 임대인의 대출금이 많아 추가 대출이 막히면, 다른 바지 임대인 명의를 빌리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에 앞서 강씨는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수원시 권선구 소재 신축 빌라에 바지 임대인 1명을 명의자로 두고, 세입자 14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18억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로 지난해 8월 기소돼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바지 임대인은 징역 4년에 처해졌다.
이 사건이 강씨 관련 건물 단 1채에서 벌어진 일인 점, 해당 재판에 넘겨진 뒤인 지난해 10월 이후 80건이 넘는 추가 고소장이 들어와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 점 등을 고려하면 강씨 일당이 벌인 사건의 전체 피해 규모는 15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가 다수인 사건은 또 있다.
백모 씨를 비롯한 7명의 공동투자자가 소유한 수원시 권선구 소재 한 다세대주택에서도 70억원대의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터졌다.
수원남부경찰서는 세입자 44명으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했다. 현재 고소인 조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피의자 해외 잠적…수사 완료까지 난항 예상
일부 사건의 경우 주요 피의자가 해외로 달아나 사실상 수사가 중단됐다.
강씨 일당이 벌인 사건에서 바지 임대인 '모집책' 역할을 한 이모 씨는 고소장 접수 직전 중국으로 출국한 이후 10개월 가까이 잠적 중이다.
강씨의 '작업'을 통해 권선구와 팔달구에 건물 3채를 보유한 바지 임대인이기도 한 이씨는 그 역시 세입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고소당했다.
수원남부경찰서는 지난해 8월부터 이씨와 계약한 세입자 35명으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했다. 피해 규모는 50억원 상당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씨를 제때 출국금지 조처하지 않아 그의 출국을 막지 못했다. 경찰은 뒤늦게 이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명수배했지만, 이씨가 스스로 입국해 조사 받을 가능성은 적은 상태다.
이씨는 강씨 일당 사건 수사에서 제외된 상태로, 경찰은 이씨 외 나머지 바지 임대인들에 대한 수사만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원에서 임대업을 하는 동시에 공인중개사 사무실도 운영해 온 김모 씨 역시 전세사기 사건으로 피소됐지만, 피소 전 해외로 나가 귀국하지 않고 있다.
확인된 것만 팔달구에 각각 20세대가 넘는 건물 2채를 보유한 김씨는 지난 2월부터 최근까지 10명이 넘는 세입자들로부터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피해 규모는 10억원 이상이다.
김씨는 권선구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또 다른 20억원대 규모의 전세사기를 벌인 혐의로도 별도의 고소를 당한 상태이다.
김씨를 상대로 한 고소는 수원권 3개 경찰서에 분산 접수돼 있어서 수사가 경찰서별로 제각각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김씨의 경우에도 이씨와 마찬가지로 검거는 요원한 상황이어서, 수사 완료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고소한 지 수개월인데"…경찰, 중심관서 지정할 듯
이처럼 최소 수십억대의 피해가 예상되는 전세사기 사건이 수원지역 곳곳에 도사린 상황이지만, 경찰 수사는 속도감이 떨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수원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원 정모 씨 일가족 전세사기 사건'의 경찰 수사가 100일도 걸리지 않은 것과는 대조된다.
정씨 일가 사건의 경우 지난해 9월 최초로 고소장이 접수돼 수원남부경찰서가 수사하다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상급 기관인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이관됐다.
경찰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거쳐 수사 착수 3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정씨 부부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정씨의 아들 또한 이후 구속됐고, 현재 이들 일가족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반면, 현재 수원권 경찰서가 진행 중인 사건들은 길게는 1년 가까이 결론이 나지 않고 있어 피해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강씨의 바지 임대인으로부터 피해를 본 30대 임차인은 "임대인을 고소한 지 수 개월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 않으니 답답하다"며 "경찰에 계속 피의자를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아직 불구속 상태여서 중간에 도주하지는 않을까 불안하다"고 했다.
또 다른 피해 임차인은 "강씨 일당에게 전세금을 뜯긴 임차인들과 수시로 연락 중인데, 아직 경찰에 고소되지 않은 바지 임대인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피해 규모가 훨씬 커질 듯한데 경찰이 하루빨리 해외로 도주한 피의자들부터 신속히 검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서 여러 곳에 분산된 사건의 경우 특정 경찰서에 전담 수사팀을 마련해 수사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사건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에 따라 제2, 제3의 정씨 일가 사건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주택 가격 하락이 계속되고 있고, 매매량(거래량)도 쪼그라든 상태"라며 "고금리로 인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임대인이 많아 임차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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