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출혈(出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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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어 선생님' 영화를 추천받았다.
'나의 문어 선생님', 이 영화는 325일 동안 암컷 문어를 알아간 크레이그의 기록이다.
암컷 문어는 파자마상어에게 팔을 하나 뜯기는 상처를 입었다.
알이 부화되기 시작하자 암컷 문어는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굴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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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문어 쫓아다니며
다시 일어설 힘 얻어
인생에 쉬어감 필요하지만
바깥세상도 소중한 배움터
'나의 문어 선생님' 영화를 추천받았다. 월드컵 우승팀을 맞힌 문어처럼 예지능력을 갖춘 선생님 얘기인가 싶어 클릭한 순간, 완전한 오해였음을 알았다. 진짜 문어가 주인공이었다.
다큐 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는 무기력증과 불면증으로 인생의 위기를 맞았다.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 과정에서 그는 폭풍의 곶이라 불리는 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과 칼라하리에서 동물들의 작은 흔적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동물의 동선을 예측하는 현지 사냥꾼의 태도에서 받은 감동을 떠올렸다. 인생의 풍랑을 만난 그가 선택한 동아줄은 바다였다. 매일 바다를 만났고, 거센 물살과 낮은 수온과도 친해졌다. 그는 잠수복을 입지 않았고, 산소통도 메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잠수 시간을 길게 확보한다는 편리성을 접었다. 바다 생물과 만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거센 물결이 잦아드는 다시마숲에서 크레이그는 우연히 암컷 문어를 만났다. 그 이후 크레이그는 운명인 듯 문어를 쫓아 다녔다. '나의 문어 선생님', 이 영화는 325일 동안 암컷 문어를 알아간 크레이그의 기록이다.
암컷 문어는 다시마로 몸을 가리기도 하고 설치해둔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며 다리로 툭 치기도 했다. 크레이그에게 팔을 내밀었고, 애완견처럼 품속에 안기기도 했다. 크레이그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라포르가 형성된 결과였다.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는 125일째 되는 날의 촬영분이었다. 암컷 문어는 파자마상어에게 팔을 하나 뜯기는 상처를 입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조개를 까서 가까이 놔두지만 암컷 문어는 입도 대지 않고 굴속에서 견뎠다. 놀랍게도 일주일 후 뜯겨진 곳에서 다시 팔이 자라기 시작했다. 자연의 신비를 보면서 그는 자신의 회복도 낙관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크레이그는 항상 혼자 있던 굴속에 다른 문어가 들어와 있는 장면을 포착했다. 짝짓기를 끝낸 암컷 문어는 알이 부화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알이 부화되기 시작하자 암컷 문어는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굴 밖으로 나갔다. 새끼 문어들이 천적에게 들키지 않고 이동하도록 시간을 벌어주려는 행동으로 보였다.
암컷 문어는 종족 보존이라는 자연적 의무를 다하고 바다에서 사라졌지만 크레이그 인생에 큰 흔적으로 남았다. 무기력한 그에게 따뜻한 렌즈를 선물했다. 마감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이끌었다. 그는 바다를 사랑하게 됐고 가족을 돌아보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번아웃에 빠졌던 크레이그는 다시 세상으로 나와 '시 체인지 프로젝트'의 일환인 다시마숲 보호 다이버로 활동 중이다. 암컷 문어를 통해 얻은 선물을 바다에 돌려주며 살아가는 셈이다.
영화 속 굴 밖은 처절한 생존 게임이 벌어지는 공간이었다. 암컷 문어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생존을 위한 사냥도 만만하지 않았다. 먹잇감을 놓치기 일쑤였지만 암컷 문어는 점점 노련해지고 계획적으로 사냥하게 됐다. 굴 안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필요하지만 굴 밖의 시간도 거쳐야 한다. 치열한 적자생존이 벌어지는 현장을 떠나서는 성장도 배움도 없음을 이 영화는 보여줬다.
사람도 굴속에 숨어들고 싶을 때가 있다. 부딪히기 싫은 사람을 피해 다니고 힘든 일에 엄두를 못 내고 뒷줄에 서기도 한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굴속에서만 지낼 수는 없다. 위험이 따르지만 굴 밖의 시간을 더해야 진짜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낮은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면 크레이그에게 암컷 문어가 선생님이 되어준 것처럼, 생각하지도 못한 대상에게서 소중한 가르침을 받을지도 모른다. 날마다 그런 기대감으로 나가길 소망한다. 굴 밖으로!
[김정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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