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 다녀온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준비한 것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4. 5. 3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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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으로 환영한다”는 메시지... 조카인 내가 다 감동

내가 12살 때 이모가 결혼했다. 이모는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살았다(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결혼 이후 내가 사는 곳에서 이모네 집까지 혼자서 전철을 타고 갔더랬다. 이모가 보고 싶어서. 단칸방 신혼집이었는데... 그때 내가 뭘 알았겠는가. 그만큼 이모와 나는 각별했다. 그런 이모가 최근 큰아들을 결혼시켰다.      

결혼식 이후 모처럼 나 홀로 이모를 보러 가는 날.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혼자 이모를 보러 갔던 그 길. 가는 길도 비슷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는 구로에서 인천행을 탔는데 지금은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7호선을 탄다는 정도다. 내가 애들이랑 남편 없이 혼자 간다고 하니까 이모도 옛날 생각이 났다고 했다. 띠동갑인 이모와 나는 생각도 비슷하다. 

이모가 저녁 메뉴 이야기를 하면서 각종 반찬을 줄줄이 읊는다.     

"이모는 일하느라 바쁜데 웬 반찬을 이렇게 많이 했어?"

"며느리가 잘 먹어서... 어찌나 잘 먹는지 음식을 안 할 수가 없어."     

며느리가 생기기 전에는 늘 "나 온다고 했지" 하던 이모였는데... 서운하진 않다. 이모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니까. 덕분에 얻어먹고 좋지 뭐. 열무김치, 파김치, 갓김치, 명이나물 장아찌, 데친 오가피잎, 고구마튀김, 직접 만든 쌈장, 간장 게장까지. 온갖 반찬이 줄줄이다.      

"내가 해보니까 애들 반찬 해주는 것도 쉽지 않더라. 너네 시어머니는 아직도 매달 반찬 해주고 하시지?"

"응. 어머니도 이젠 힘드시니까 매달은 아니고... 한두 달에 한 번씩 해주시지. 그러고 보니 우리 어머님 연세도 이제 75세시네. 그래도 여전히 꼬박꼬박 김치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고..."

"진짜 대단하셔. 존경해. 근데 애들이 잘 먹으니까 나도 해주고 싶더라고. 너네 시어머니 마음 알겠더라고. 너희들도 잘 먹으니까 어머님이 해주시는 거겠지. 어머님한테 잘해드려."     

아닌 게 아니라 시어머니는 나의 든든한 살림 조력자시다. 친정어머니는 재료를 주신다면 시어머니는 완제품을 공급해 주신달까? 내 입장에서는 다듬고 데치고 무치지 않아도 되는 시어머니 반찬이 더 반갑다(엄마 미안). 내가 직장 생활하는 동안, 그러니까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시어머님이 해주신 음식들의 공이 크다. 건강한 음식 먹고 자라서 그런지 아이들 크게 아픈 것도 모르고 자랐다.      

봄이면 물김치, 여름이면 열무김치, 가을이면 총각무김치, 겨울이면 김장으로 사계절 김치는 물론이고 그 틈으로 제철 김치들이 파고들었다. 오이소박이나 깍두기, 무생채 같은. 반찬집 하셔도 될 만큼의 음식 솜씨라 맛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퇴근 후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는데 애들 밥은 차려줘야 할 때,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반찬 해놨다고 가져가라고 하시는 날엔 허리가 절로 숙여진다.      

그렇다고 먼저 반찬 좀 해달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가 주시는 대로 감사히 먹을 뿐이지. 가끔씩 시어머니가 "반찬 뭐 해주랴?" 하며 문자나 전화를 주시는데 늘 말문이 막힌다. 주는 대로 먹어도 황송한데 주문이라니, 그걸 내가 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내년이면 결혼도 20년 차, 이제는 애들이 좋아하는 거나 내가 먹고 싶은 걸 말하는 정도의 관계는 되었다.      

바삭하고 쫀쫀한 시어머니표 멸치볶음이 먹고 싶었는데 마침 물어보셔서 어렵게(?) 말씀드렸다. 얼마 전 점심에 엄마가 보내주신 상추에 시어머니가 해주신 멸치볶음을 얹어 쌈을 싸 먹었는데... '쌈밥집 왜 가요?' 할 만큼 맛있었다. 누구라도 불러서 같이 먹고 싶은 맛이었다고 하면 오바려나?      

이모와 결혼 뒷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신혼여행 끝나고 인사 오는 날 이벤트를 하나 했다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사진을 보는 데 내가 다 울컥하더라. 며느리도 감동이라며 눈물을 흘렸단다. 대단하다... 내 이모지만 정말 멋있다. 사진 속 꽃바구니에서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우리 가족으로 환영합니다. 항상 사랑해줄게.'       

이모가 "우리 가족 되었으니 아끼고 사랑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는 이벤트. ⓒ최은경

결혼하기 전까지는 남남이던 사람들이 결혼으로 한 가족이 된다지만 하루아침에 편하진 않을 거다. 그 마음을 아는 이모가 "우리 가족 되었으니 아끼고 사랑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는 이벤트. 시댁이 싫어서 시금치의 시 자만 들어도 싫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훈훈해지는 것도 사실. 어떤 관계든 일방적인 것은 없다. 어른이 먼저 배려하고 손 내밀어 준다면 젊은 사람의 마음도 쉽게 열리지 않을까. 물론 반대여도 좋고.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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