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업튀' 솔선파괴자 허형규 "미안했다 혜윤아"

황소영 기자 2024. 5. 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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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규
배우 허형규(41)가 tvN 월화극 '선재 업고 튀어'(이하 '선업튀') 김영수 역을 통해 분노유발자로 활약했다. 2008년 영화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부터 차근차근 매체 연기를 해왔던 그가 드디어 빛을 본 것. 로맨틱 코미디를 순식간에 스릴러로 바꾸는 압도적 존재감을 자랑했다.

지난 28일 종영된 '선재 업고 튀어' 최종회는 변우석(류선재)과 김혜윤(임솔)이 서로의 곁을 굳건히 지키며 운명 서사의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시청률은 닐슨코리아 수도권 가구 기준 평균 7.2%, 전국 가구 기준 평균 5.8%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화제성은 드라마 부문 4주 연속 1위를 달렸다. 글로벌 흥행까지 성공했다.

이런 뜨거운 반응은 처음이라는 허형규는 "보내기 싫다. 너무 사랑하는 작품이었고 촬영 기간뿐 아니라 방송 기간에도 너무 행복해서 떠나보내는 게 섭섭하기만 하다. 그 어떤 수범이들보다 제가 더 사랑했던 드라마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극 중엔 연쇄살인자로 공포감을 유발했던 허형규였지만 실제로 만난 그는 특유의 눈웃음이 매력적인 배우였다. 시종일관 웃기 바쁜 그였다. "'선업튀'에선 악역을 맡아 욕을 먹으며 사랑받지 않았나. 내가 본래 가진 장점은 눈웃음이 예쁘다는 것이다. 이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라는 바람을 내비쳐 눈길을 끌었다.

허형규
-성공적으로 '선업튀'를 마쳤다.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감독님께 미팅하자는 연락이 왔다. 오디션장에 들어가면 매번 감독님이나 조감독님들한테 웃으면서 인사하고 그러는데 영수 캐릭터와 관련해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란 두 가지 키워드만 듣고 갔다. 너무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집에서부터 안 웃는 연습을 하고 갔다. 예의는 갖추되 정색하며 '연기 인생에서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역할이라 시놉시스를 봤는데 이 역할에 욕심이 많이 난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전해 들었는데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죽일 듯이 쳐다봐서 그때 굉장히 섬뜩했다고 하더라. 나와 미팅을 한 뒤 다른 후보들은 아예 만나지도 않았다고 해서 '내 작전이 먹혔구나!' 싶었다."

-작품의 흥행을 예상했나.

"첫 미팅 끝나고 나서 대본이 나와 있는 걸 일단 다 줄 테니 읽어보고 캐릭터 연구를 해오라고 했다. 영수 역할이 아니라 전체적인 내용을 보려고 1회부터 봤는데 2회 엔딩에 선재 시점이 나오면서 '그랬나봐' 노래가 깔리는데 안 볼 수가 없겠더라. 내가 맡은 역할이 그 둘(솔선커플)을 방해하는 역할이라니 배우로서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외부에선 '잘 될까?' 그런 반응이 있었지만 난 대본을 보자마자 물론 이 정도까지 잘 될 줄은 몰랐지만 잘 되겠다 싶었다."

-가족들이나 주변 반응은 어떤가.

"내가 맡았던 역할 중 가장 주목받고 있고 잘 되고 있는 작품이라 부모님이 기뻐했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니 본 방송을 같이 봐도 되겠다 싶어 13회쯤 할 때 포항에 내려갔는데 그때가 담포리 절벽에서 솔선커플을 위협하는 날이었다. 부모님이 '굳이 저기까지 왜 따라가서는!'이라고 하더라. 부모님마저 내 캐릭터를 미워하는 걸 보고 사과할 일이 많아졌지만 사과할 때도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사과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웃음)"

-SNS를 재치 있게 활용해 더욱 화제를 모았다.

"평소 밈도 많이 보고 네티즌 생활을 오래 했어서 '이렇게 하면 웃기겠다'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처음에 휴대전화 사진에 '폰 주웠다'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꽤 좋아해 주더라. 너무 과몰입만 하면 사람들이 관종인가 그렇게 생각할까 봐 한 번쯤 방향을 틀어주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비하인드 영상이랑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음악도 깔고 그랬더니 반전 매력으로 좋아하더라. 몽타주 사진도 보자마자 웃겼다. 이걸 SNS 프로필로 바꾸면 웃기겠다 싶었는데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다. 실제 허형규는 위트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봐 주는 것 같아 (SNS 반응들을) 격려로 받아들였다."

-극 중 캐릭터인 김영수와의 싱크로율은.

"영수와 닮은 점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좋은 점이 하나도 없지 않나.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스탑 플리즈(Stop Please)'를 받은 것 같다. 영어로 하지 마!(hajima)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언어도 있었는데 이모티콘 보고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솔친자'라고 불릴 정도로 김혜윤에 집착했는데 임솔 역의 김혜윤과 호흡은 어땠나.

"촬영하면서 내 잘못은 아닌데 혜윤이 같은 경우 밖에서 냅다 뛰고 난 편하게 차로 다니니 미안했다. 추격 장면 찍은 날은 다 추웠다. 너무 미안해서 트럭 장면의 경우는 촬영 끝나는 스폿까지 가면 옆자리에 혜윤이를 태워 본래 촬영장 스폿으로 오고 그랬다. 슛 들어가기 전까지 핫팩도 주고 그랬는데 그거라도 해야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선재 역의 변우석과는 액션 장면이 많았다.

"격투 장면이 세 번 있었다. 처음 만난 날, 내 첫 촬영 날부터 격투신이 있었다. 인사하고 30분 뒤 서로 목 조르는 연기를 해야 했다. 대면대면했는데 오히려 만나자마자 그런 장면을 찍으니 서로 배려하게 되어서 다른 장면들 찍을 때도 수월하게 했던 것 같다. 촬영하면 할수록 친해졌다. 사실상 우석이랑 만나는 신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싸우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힘 조절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켜줘야 했기 때문이다. 호흡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우석이한테 '이번 작품으로 영수를 만난 것도 좋고, 작품이 잘 된 것도 좋고, 감독님이랑 친해진 것도 좋은데 너를 만나 좋다'라고 했다."

-작품 공개 후 변우석은 스타가 됐다.

"기본적으로 우석이한테 그 얘길 했었다. 드라마 2회쯤 끝나고 나서 '너 이번에 작품 끝나면 지금의 너와는 달라져 있을 것 같다. 그때도 우리 사이가 변치 않길 바란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우석이가 '형 무슨 말씀이에요?'라고 하더라.(웃음)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모두가 잘 되고 있다. 물론 우석이와 나와의 위치는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심히 또 쫓아가면 언젠가 다시 또 만날 수 있지 않겠나."

-'선업튀'는 어떤 의미의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앞으로의 연기 인생이 어떻게 될지 허형규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이정표이자 인생작이 될 것 같다. 앞으로 롤이 커지든 작아지든 더 유명해지든 안 유명해지든 평생의 인생작일 것이다."
허형규

-그간의 시간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던 원동력은.

"처음엔 현장 자체가 신기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역할, 더 큰 역할 하고 싶다 보니 갈증이 느껴졌다. 그러다 뒤돌아봤다. 처음에 카메라 앞에 섰을 땐 대사가 없었다. 그다음엔 대사 한 두줄을 하고 다음엔 하나의 신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더라. 지금 당장은 갈증 나는데 매년 조금씩 성장했더라. 내가 버티고 역할에 대한 갈증으로 힘들어하기보다 내가 발전했던 모습을 보고 긍정적인 면으로 힘을 받자고 생각하니 버틸 수 있더라. 올해는 '선업튀'를 만났고 이전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를, 그전엔 넷플릭스 시리즈 '택배기사'를 만났다. 새로운 롤을 만나고 촬영장 횟수도 많아지고 감독님과 소통도 잦아지니 배우로서나 사람으로서 성숙해지고 있는 게 느껴지더라."

-생계는 어떻게 유지를 했나.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내 목소리를 살려 녹음하는 아르바이트나 광고, 영화 스태프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뮤직비디오 스태프도 하러 다녔다. 가끔 좀 신기했던 게 전날 내가 배우로 촬영장에 가서 반사판을 받고 있지 않나. 다음날엔 누군가를 빛내주기 위해 반사판을 들어줬다. 거기서 오는 온도 차가 재밌었다. 오히려 배우의 입장을 잘 아니 더욱 잘 맞춰주게 되더라."

-스태프들의 고충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겠다.

"스태프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게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배우나 매니저들에게 사과하러 오지 않나. 제가 늘 우스갯소리로 '그만 미안해하라'라고 한다. 기다리는 시간은 내 페이에 포함되어 있으니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네 할 일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제작부로 일할 때 누군가 그렇게 얘기해 주면 너무 고맙더라. 그래서 나도 똑같이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스스로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지 터득한 방법이 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배우, 감독님, 스태프들 사진을 찍어 마지막 방송 때 보내준다. 배우들은 일 할 때 찍어주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태프들은 잘 안 찍지 않나. 그걸 찍어서 보내주니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면 선물을 보내준 사람으로서도 기분이 좋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을 전공했더라.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영화 '친구'가 그때 당시 누아르의 정석 같은 작품이었다. 유오성, 장동건 선배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멋있다!'란 생각과 함께 연극영화과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게 됐다. 매체 연기를 하고 싶어서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보통 연극영화과의 베이스는 연극이다. 연극으로 커리큘럼이 이뤄진다. 근데 연극 무대에 서 보니 커튼콜이라는 것의 매력이 어마어마하더라. 졸업할 때까지 연극을 두고 고민하다가 애초 하고 싶었던 게 매체 연기였으니 매체 연기에 도전하자는 생각으로 오디션 프로필을 돌리고 그러면서 버텼다."

-그때 당시 소속사가 없었나.

"첫 회사가 35살 때 생겼다. 그전까지는 프로필을 직접 돌리곤 했다. 50군데 정도 돌려서 1군데 연락이 오면 운이 좋은 것이었다. 연락이 아예 안 올 때도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았는데 돌리다 보니 오디션 기회가 닿았고 하나가 좋게 되니 다른 작품에 들어가고 누군가 불러주고 그랬다.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쉴 때는 무엇을 하나.

"제일 많이 하는 건 봤던 영화, 드라마를 또 보는 것이다. 드라마로 따지면 '그레이 아나토미'다. 의학 드라마인데 말이 의학이지 막장적인 요소가 많다. 정말 다양한 감정들을 가진 배우들이 많이 나와 연기적으로 막힌다 싶을 때 그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 하면서 공부한다. 연기 외에 제일 많이 하는 게 친구들이랑 카페 가서 수다하는 것이다."

-평소 술은 잘 안 마시나.

"소주를 한 잔에서 두 잔 정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진다. 귀까지 빨개진다. 소주 3분의 2병 정도 마시면 취한다. 더는 못 마신다. 한 병이 넘어가면 숙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맥주는 500ml 한 캔 다 못 마신다."

-하반기 계획은.

"'선업튀' 후광에 힘입어 다른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열심히 찾아보고자 한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이번 역할을 맡았던 것처럼 시청자분들이 내 캐릭터가 미운 역할이면 미워하고 사랑스러운 역할이면 사랑해 주고, 재밌는 역할이면 함께 웃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박세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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