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사건 사법방해, 용산의 ‘김호중’들 [아침햇발]
박용현 | 논설위원
가수 김호중씨의 비뚤어진 행각은 ‘사법방해’라는 낯선 용어를 전 국민과 친숙하게 만들었다. 사법방해가 얼마나 파렴치한 행위인지도 느끼게 해줬다. 김씨는 달아난 지 17시간 만에 음주 측정에 응했고, 사고 직후 이른바 ‘술타기’ 수법으로 편의점에서 술을 샀다. 매니저가 김씨 옷을 입고 허위 자수했다. 소속사 직원이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칩을 빼돌렸다. 사법방해의 전형이다. 경찰을 농락하려 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사법방해의 본질은 비위를 밝혀내 처벌하는 국가의 작용을 속임수나 압박 수단을 통해 왜곡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별도의 ‘사법방해죄’는 없지만, 증거인멸죄나 범인도피죄, 위증죄 등으로 사법방해 행위를 처벌한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더 폭넓게 사법방해죄를 규정하고 있다. 경찰·검찰·법원은 물론 의회의 조사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까지 아우른다. 조사기관에 진실을 감추거나 오도하는 말을 하는 행위, 법 집행 공직자를 허위로 비방하는 행위, 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조사에 협조하지 말도록 영향을 끼치는 행위 등 다양한 행위가 사법방해죄로 규율된다.
김호중씨는 애초 저지른 음주 뺑소니보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이후 감행한 행위들로 인해 더 큰 분노를 샀고, 지난 24일 구속됨으로써 일차적 응징을 당했다. 그러나 김씨가 상기시킨 사법방해라는 프리즘을 들이대야 할 더 거대한 사건이 남아 있다.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은 사법방해가 층층이 쌓이고 교차해 덩어리로 불어난 사건이다.
첫 단계로, 채 상병 사망의 원인과 책임 소재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및 경찰 이첩이 방해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31일 해병대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실 전화를 받은 뒤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해병대 수사단이 이첩을 강행한 8월2일에는 윤 대통령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국외출장 중인 이 장관에게 세 차례나 전화를 했다. 이날 대통령실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도 국방부·해병대·경찰에 바쁘게 연락했다. 이후 박정훈 수사단장은 보직 해임되고 경찰에 이첩된 사건 기록을 국방부 조사본부가 회수했다. 군에서 사망 사건과 관련한 범죄를 인지하면 바로 경찰에 넘기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이에 따른 해병대 수사단의 정상적인 사건 처리가 심각한 방해를 받은 것이다. 법을 집행했을 뿐인 박정훈 수사단장은 엉뚱하게 항명죄로 기소됐다. 박 단장의 ‘대통령 격노’ 주장은 “망상”이라고 비방당했다. 전형적인 사법방해다.
두번째 단계에서는 이런 수사 방해(외압)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국회 등의 수사·조사가 방해받았다. 이종섭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이 건과 관련해서 (대통령과) 통화한 게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29일에도 그는 통화 내용이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경찰 이첩이 이뤄진 직후 한 시간 동안 세 차례나 통화가 이뤄졌는데 이 사건과 무관한 통화였다고 믿으란 말인가.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방비서관도 지난해 8월 국회에서 “7월31일 해병대 사령관하고 통화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으나 해당 날짜에 두 차례나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번째 단계에서 사법방해의 압권은 이종섭 장관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로 임명해 국외로 빼돌린 것이다. 이 장관은 공수처에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제출하고 출국했다.
세번째 단계는 특검 수사에 대한 원천 봉쇄다. 국회가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위해 특검법을 만들어 특검에게 수사를 맡기는 것은 국가 사법 작용의 한 방식이다.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 역시 본질상 사법방해에 해당한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특검을 해임함으로써 의회의 탄핵 추진을 촉발시켰다. 닉슨의 탄핵 사유에는 연방수사국(FBI)과 특검의 수사를 방해한 사법방해가 적시됐다. 자신을 수사하는 특검을 해임한 것이나 아예 원천 봉쇄한 것이나 다를 게 뭔가.
한가지 더 짚을 점은 사법방해는 국가기관뿐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닉슨의 사법방해 혐의 중에는 공개적 발언을 통해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오도함으로써 미국 국민을 속인 행위도 포함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격노설 질문에 ‘수색 작업을 무리하게 진행한 데 대해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고 동문서답했다. 교묘히 국민을 오도한 게 아닌가.
김호중씨는 법망을 피해보려는 헛된 바람을 품고 잡범 수준의 사법방해를 시도했다. 이에 견줘 채 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다층적 사법방해는 권력자들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해 저지르는 권력형 사법방해다. 수사기관을 속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짓눌러버리니 ‘사법파괴’라고 해야 맞다. 더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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