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맑은 곳에 가면 함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주현 한겨레신문 뉴스총괄 2024. 5. 3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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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권귀순 한겨레 편집부 선임기자 추도사

권귀순 한겨레 종합편집부 선임기자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52세. 이주현 한겨레 뉴스총괄이 그의 너무 이른 죽음을 추모하며 쓴 추도사를 싣는다.

21세기 초반, 한겨레에선 유명한 여성 건각 2명이 있었습니다.

권귀순 선배와 그리고 저 이주현이었습니다. 권 선배는 본래 등산과 달리기를 좋아하는 건각 1호였고, 저는 2호였습니다. 제가 건각 2호가 된 것은 권 선배 덕분이었습니다.

2005년 어느날 회사에서 야근하던 중이었습니다. 권 선배가 갑자기 제게 다가오더니 “달리기 같이 할래?”라고 했습니다. 그때도 이후에도 왜 제게 달리기 제안을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 잡던 베드로에게 같이 가자 하니 스르르 따라 나섰던 것처럼, 저도 그냥 자연스럽게 “네”라고 답했습니다. 권선배에 이끌려 한겨레건강달리기모임 이른바 ‘한건달’ 신입 회원이 되어 달리기 연습을 했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라톤 대회에도 나갔습니다. 저는 풀코스를 한번 뛰어보곤 이건 다시 할 일이 아니다 싶어 접었지만, 권 선배는 너무 힘들어 엉엉 울면서도 2번이나 풀코스를 완주했습니다.

그저께 장례식장에서 선배가 만든 동영상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선배가 제게 같이 달리자고 했는지. 권 선배는 그 영상에서 자신을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몇년 전 앓았던 병에서 채 회복되지 않았고 회사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움츠린 모습을 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선배는 제게 달리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고 온전한 내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인생 선배이자 은인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권 선배가 왜 저를 만날 때마다 손을 꼭 잡아줬는지, 등을 어루만져 줬는지, 팔짱을 끼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때로 저는 선배가 내게만 유독 칭찬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했는데, 알고보니 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권 선배와 편집부에서 같이 일했던 후배들은 “예전엔 권 선배가 칭찬을 너무 많이 해줬는데 그 칭찬이 그리 소중했는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소중한 건 나중에야 소중한 걸 알게 된다고 합니다. 아니, 소중한 건 나중에 더 소중해진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선배의 칭찬은 후배들을 키우는 소중한 자양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우리가 그리운 권 선배의 소중한 칭찬을 다시 후배들에게 돌려줘야할 때가 왔습니다.

권 선배는 2000년 한겨레에 입사한 이후 많은 시간을 편집부에서 보냈습니다. 사안의 본질을 짚는 정확한 제목을 달고, 편집디자인 프로그램까지 직접 다루며 세련된 지면을 만든 뛰어난 기자였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편집부 외에도 권 선배는 한동안 미디어·여론 담당 기자로 일했습니다. 편집 기자로 내근을 주로 했던 권 선배가 늦깎이로 취재 현장에 나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굳이 말 안해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선배가 미디어 기자로서 취재했던 유명한 정치인이 연루된 사건이 몇년 뒤 터졌을 때였습니다. 그 정치인이 기자회견을 한 날 벌어진 사건과 관련한 의혹이었는데, 놀랍게도 권 선배는 당일 그 정치인과의 통화 내용과 일정 등을 상세히 적은 취재 메모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권 선배의 메모는 그 정치인이 내놓은 알리바이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치열하게 일했던 권 선배는 암과도 치열하게 맞섰습니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했던 지난해 가을, 집 근처 산에서 맨발걷기를 하고 있다는 선배를 따라나선 적 있습니다. 흙과 풀과 맞닿는 느낌이 너무 좋다며 길 초입에서부터 신발을 벗은 선배는 3시간이나 내내 걸었습니다. 권 선배는 이후 병색이 짙어지던 무렵에도 걷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걷고 있는 모습은, 예전에 걷고 뛰고 산을 오르내리던 것처럼 기운차진 않았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암도 절대 훼손할 수 없는 본연의 모습을 지키려는 자존감, 권귀순다움이었습니다.

빈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권 선배가 너무 열심히 살아서 병을 재촉해 이른 죽음을 만났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는 그 말은 권귀순이라는 사람의 삶과 죽음을 요약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권 선배가 그리 열심히 살았고 살아야 했던 이유는,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애정하는 한겨레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슬픈 까닭은 그가 너무 열심히 살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게 한스러워서가 아니라, 건강하던 시절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분투했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곁에서 더 많이 돕지 못해 미안합니다.

육신을 죄어오는 고통에 지상에 머무르기가 버거웠던 5월,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몸은 바싹 말라 아이처럼 조그마해졌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한 편의 시 같았어요.

“풀냄새가 맡고 싶다. 자연으로 가고 싶어. 산과 들을 뛰어다니던 그날로 가고 싶어. 밭에서 따먹던 빨간 토마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앵두, 살구가 익어 떨어지길 기다리던 시간. 너무 그립다.”

선배가 사랑했던 북한산, 마지막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지리산, 그 어디든 바람 맑은 곳에 가면 선배도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나중에 만나면 살구나무 아래 손잡고 서서 기다려요. 새콤달콤 살구를 함께 맛봅시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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