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전 총리, 귀국 3개월 만에 왕실모독죄 기소 위기…“태국 보수파의 견제”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이번엔 왕실모독죄로 기소될 예정이다. 태국으로 복귀 후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 키워가고 있는 탁신 전 총리를 향해 보수파가 반발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29일(현지시간)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태국 법무부는 이날 탁신 전 총리를 왕실모독죄와 컴퓨터범죄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탁신 전 총리에게 적용했던 혐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탁신 전 총리는 2015년 5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군주제를 비방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그는 여동생 잉락 친나왓 정부를 축출한 쿠데타를 추밀원이 지지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태국 추밀원은 국왕의 자문기구 역할을 한다.
이에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당시 총리 측이 법무부에 법적 조처를 하라고 촉구했고, 법무부가 탁신 전 총리를 고소했다. 체포영장까지 발부됐으나 탁신 전 총리는 당시 해외에 망명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지난해 8월 태국으로 돌아오며 사건이 진척됐다. 이 밖에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컴퓨터 시스템에 정보를 입력한 혐의도 적용됐다.
이로써 탁신 전 총리는 귀국 후 가석방된 지 3개월 만에 또 다른 법적 위기를 맞이했다.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부패와 직권남용 혐의를 피해 자진 망명했으나, 지난해 자신의 세력들로 구성된 프아타이당이 정권을 잡은 후 귀국했다. 이후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수감됐으나 국왕의 사면으로 1년으로 형기가 줄었고, 6개월 만인 지난 2월18일 가석방됐다.
탁신 전 총리 측은 “무죄를 입증할 준비가 됐다”며 반격에 나섰다. 그의 변호인은 “수사관들이 증거로 사용한 발언 영상이 조작된 복사본으로 의심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전문가 조사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탁신 전 총리에게 기소 절차를 위해 다음 달 18일 오전 9시 법원에 출석하라고 명령했다. 탁신 전 총리는 검찰이 기소 방침을 밝히기 하루 전인 지난 28일 코로나19에 걸렸다고 알리며 절차 연기를 요청한 바 있다. 어떻게 바로 전날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진단서는 의료 전문가가 발급한 것”이라고 답했다.
일명 왕실모독죄로 불리는 태국 형법 112조는 왕과 왕비 등 왕실 구성원,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등의 경우 최고 징역 15년에 처하도록 한다. 이는 지난 수년 동안 민주화 운동가 250명 이상에 적용돼, 정치 탄압의 수단으로 쓰인다는 비판을 태국 안팎에서 받고 있다.
이번 기소 결정은 탁신 전 총리의 여전한 정치적 영향력을 보수 세력이 견제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쿠데타로 실각했으나 여전히 정계에 막강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그의 딸 패통탄 친나왓은 현 여당 프아타이당의 대표이며, 탁신 전 총리는 귀국 후 여러 정치인을 만나는 모습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티띠난 뽕수디락 쭐라롱꼰대학 교수는 “기소는 탁신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됐다. 그를 묶어두려는 것이다. 또한 선을 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 탁신의 움직임과 정략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AP통신에 밝혔다.
프아타이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보수파와도 손을 잡아 연정을 꾸렸으나, 이 ‘불편한 동거’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왕실모독죄로 평생 정치활동 금지 처분을 받은 빠니까 와닛 전 미래당(FFP) 대변인은 “지금 일어나는 일은 보수파와 프아타이당의 관계가 긴장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보수파는 자신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정치적 도구로 법원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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