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화당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인도태평양 핵 공유 구축” 공론화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2024. 5. 3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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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에서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와 인도태평양 핵 공유 협정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미국이 현재 구축한 핵우산 체제로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갈수록 위태로운 핵 위협과 군사 협력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의 지원 속에 미국 본토 공격이 가능한 핵·미사일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북한과 핵무기를 급격히 늘리고 있는 중국,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가인 러시아를 억제하기 위해선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와 핵 공유를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핵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탈(脫)냉전과 함께 30여년간 지속된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정책이 분수령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전술핵 재배치 후 한·일·호주와 핵공유

미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은 이날 국방투자계획 ‘21세기 힘을 통한 평화’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안보 환경”이라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침략자의 축(axis of aggressors)’에 대응할 세대를 아우르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중러와 이란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등 추축국(axis of powers)에 비유한 것.

특히 위커 의원은 “북한의 핵·미사일은 예상을 뛰어넘어 미국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김정은은 미국과의 외교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것 같지 않다고 인식하고 최근 전시 기조로 전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경제를 마비시켰던 국제제재는 러시아와 중국의 이행거부로 효과가 없어졌다”며 “더욱이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전략적 연대를 맺으면서 북한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 불안정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한반도에서 억지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주한미군 주둔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 기존 준비태세 유지와 함께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와 인도태평양 핵 공유 협정 체결 등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들과 체결한 것과 유사한 핵 공유(nuclear burden sharing)에 한국과 일본, 호주가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91년 철수한 주한미군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방안을 먼저 한국과 먼저 협의한 뒤 미국 주도로 한국과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나토식 핵공유를 구축해야 한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위커 의원은 또 내년도 국방예산을 550억 달러(약 75조 원) 증액하고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9% 수준인 국방비를 5~7년 내 5% 수준으로 올릴 것을 제안했다. 1991년 걸프전쟁 당시 전시 수준으로 국방비를 높여야 한다는 것. 또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 대응해 해군 함정을 2035년까지 357척으로 확대하고, 핵잠수함(SSBN) 14척 확대 등 핵 군비 증강을 추진하는 방안도 담겼다.

위커 의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포함한 국방투자계획을 내년도 국방수권법에 반영하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 북중러 핵위협 확장 맞선 동북아 핵균형론 부상

주한미군 전술핵무기가 철수된 이후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가 의회에서 공론화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2년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이후 미 하원 공화당 주도로 국방부 장관에게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검토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방수권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당시 이 조항은 상하원 논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위커 의원의 공개 제안 역시 내년도 NDAA에 포함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통과된 하원 국방수권법에는 전술핵 재배치 등이 담기지 않은 가운데 상원은 다수당인 민주당이 군사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제임스 리시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 등을 중심으로 전술핵 재배치와 핵 공유 등 핵균형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11월 대선 이후 미국 정치지형 변화에 따라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위커 의원이 공개한 국방투자계획 제목인 ‘힘을 통한 평화’는 옛 소련 봉쇄 전략을 추진하며 국방비를 크게 늘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슬로건이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2017년 북미관계가 악화되자 백악관은 “한국이 요청한다면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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