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이 부족한 흡연구역…비흡연자는 ‘짜증’, 흡연자는 ‘눈치’
부족하 흡연구역에 뒷골목 여기 저기서 흡연
서울 금연구역 30만곳…흡연구역 118곳 불과
흡연단체 “담배 기금 이용해 흡연구역 늘려야”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담배 연기 피하다 차도까지 간다니까요.”
점심시간 여의도의 한 직장가. 보도블록에는 빨간색으로 ‘금연’ 표시가 붙어 있었지만 표시가 무색하게 직장인 대여섯명이 횡단보도 인근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점심식사 후 흡연을 하던 A(35)씨는 “금연 장소인 것은 알지만 근처에 담배 피울 곳이 없다”며 “눈치 안 보고 편히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세계금연의날(31일)을 하루 앞둔 30일, 비흡연자들은 길거리 간접흡연에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은 담배 연기도 괴롭지만 이들이 버리는 담배꽁초 등으로 길거리가 불쾌할 정도로 더러워진다고 비판했다. 흡연자들 역시 담배를 피고 싶어도 필 곳이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에 흡연자·비흡연자 모두 만족할 수 있도록 실외 흡연 부스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찾은 여의도·서초동 인근 직장가에는 골목 곳곳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길거리 곳곳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고 흡연자들이 뱉은 침 자국도 남아 있었다. 건물 자체적으로 마련된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금연’ 표시가 붙어 있는 곳에서 흡연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흡연자 옆을 지나가는 비흡연자들 중 일부는 표정을 찡그리며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기도 했다.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박모(45)씨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은 이해하지만 분명 금연이라고 적혀 있는 길거리에서 피우는 것은 매너가 아니다”라며 “보도블록 양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 위험하지만 차가 다니는 길로 걸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흡연자들이 금연구역에서 버리고 간 담배꽁초 등으로 건물 관리원 등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서초동의 한 빌딩 앞에서 담배꽁초를 쓸고 있던 B씨는 “꽁초만 안 버리면 되는데 쓰레기통이 없으니 엉망”이라며 “빗물받이 안에도 담배꽁초로 가득해 여름 장마철마다 곤욕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흡연자들 역시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건물에 자체적으로 흡연 구역을 마련한 곳은 상관 없지만 인근에 흡연구역이 없는 경우 눈치를 보며 빠르게 담배를 피운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교대역 인근에서 만난 50대 채순기씨는 “죄인처럼 구석에서 눈치를 보면서 담배를 피운다”며 “흡연자에 대한 인식이 안 좋기도 하고 보행자에게 연기가 날아가 미안하기도 하다”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11년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며 연면적 1000㎡ 이상의 사무용 건축동 등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게 하며 금연구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금연을 장려하는 문화로 각 건물에서 흡연구역을 없애는 추세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서울 내 금연구역은 29만 9780곳이지만 흡연구역은 118곳에 불과했다.
실제로 흡연구역이 다수 마련된 여의도역 인근 직장인들은 흡연구역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흡연자인 이모(29)씨는 “눈치 안 보고 담배 피울 수 있고 청결하게 운영되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비흡연자인 소모(34)씨는 “근처에 버려진 담배꽁초도 없고 흡연구역 인근을 피해가면 돼 간접흡연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흡연구역 설치는 정치권에서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지만 매번 좌초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담배를 통해 걷히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활용한 흡연부스 확충을 공약했지만 현재 답보 상태다. 올해 국민건강증진기금 사용 계획에 따르면 올해 예상 기금 3조 6377억원 중 흡연부스 설치 등 흡연자를 위한 예산은 금연 지원 예산을 제외하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흡연단체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활용해 흡연구역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상륜 흡연자인권연대 대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흡연자뿐만 아니라 비흡연자에게도 간접흡연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담배 판매 수익으로 조성한 기금으로 흡연 공간을 늘리는 것은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형환 (hwan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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