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1번’ 대 ‘강한 1번’의 정면 충돌, 다시 볼 수 있을까

심진용 기자 2024. 5. 3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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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잠실 KT전, 두산 1번 타자로 출전한 헨리 라모스가 4회말 2타점 2루타를 때리고 1루로 달리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29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 대 KT전은 KBO에서 보기 드문 경기였다. KT가 리그 최고의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34)를 1번 타자에 배치했고, 두산은 5월 최고의 타자 헨리 라모스(32) 1번으로 맞불을 놨다. ‘강한 1번’ 대 ‘강한 1번’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로하스와 라모스는 첫 타석부터 화끈하게 방망이를 돌렸다. 로하스가 1회초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갔다. 라모스는 1회말 우익선상으로 향하는 빨랫줄 같은 타구로 2루타를 때렸다. 결과는 로하스가 5타수 2안타 2타점, 라모스가 5타수 3안타 2타점. 라모스가 판정승을 거뒀고, 두산도 12-6으로 크게 이겼다.

가진 능력과 성적을 볼 때, 사실 로하스와 라모스는 ‘교과서적인 1번’을 넘어 ‘이상적인 1번’에 가까운 타자들이다. 이날까지 로하스의 출루율은 0.427로 리그 5위다. 라모스는 5월 들어 타격이 폭발 중이다. 월간 타율 0.376에 출루율은 0.442다. 다리도 그리 느리지 않고, 여느 1번 타자와 다르게 장타력까지 갖춰 파괴력이 더하다. 이날 경기도 로하스가 2루타 1개, 라모스가 2루타 2개씩을 때렸다.

두 사람 모두 1번 타자에게 바라는 스윙이 아닌, 원래 자기가 가진 스윙을 했다. 경기 후 라모스는 경기 후 “1번 타자의 역할이 다른 타순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경기 전 (이승엽) 감독님이 원래대로, 공격적으로 스윙하라고 했다. ‘내 스윙’을 가져가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9일 잠실 두산전 KT 1번 타자로 출장한 멜 로하스 주니어가 안타를 때리고 있다. KT 위즈 제공



로하스는 최근 꾸준히 KT 리드오프로 출장 중이다. 지난 19일 LG전부터 8경기 연속 1번 타자로 나섰다. 그전에도 간간히 1번으로 선을 보였다. 그에 비하면 라모스는 1회성에 가깝다. 고정 1번이던 정수빈이 최근 부진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겸해 ‘라모스 1번’ 카드를 꺼냈다. 다만 대량 득점을 하며 라모스 1번 타자 효과를 크게 본 만큼 당분간 라인업을 유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날 경기 전 이승엽 감독은 “정수빈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게 베스트”라면서도 “경기에서 이긴다면, 라인업을 굳이 바꿀 필요도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메이저리그(MLB)는 ‘강한 2번’을 넘어 ‘강한 1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지난 시즌 내셔널리그 15개 팀 1번 타자들의 OPS 평균이 0.801으로 각 타순 중 최고였다. 가장 강한 타자들이 가장 먼저 타석에 섰던 셈이다. 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1번 타자의 OPS는 0.770이었다. 2번 0.785와 3번 0.774에 이어 3번째로 1번 타순의 기록이 좋았다.

지난 시즌 MLB에선 무키 베츠(LA다저스·107타점),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106타점), 마커스 시미언(텍사스·100타점) 등 100타점 이상 리드오프만 3명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그 이전 100타점 리드오프는 2017년 104타점의 찰리 블랙먼(콜로라도) 하나뿐이었다. 블랙먼은 시즌 162경기 중 절반을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에서 뛰었다.

KBO는 아직 ‘강한 1번’ 기조와는 거리가 있다. 이날 현재까지 10개 구단 1번 타자의 평균 OPS가 0.739로 0.8이 넘는 2~4번 기록과 차이가 상당하다. 중심타선에서 해결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직은 강하다. KT와 두산이 로하스와 라모스를 타순 맨 앞에 배치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도 중심타선에서 해결해 줄 타자들이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KT는 강백호와 문상철이 버티고 있고, 두산은 김재환(13홈런), 양석환(12홈런), 강승호(10홈런) 등 두 자릿수 홈런 타자만 3명에다 양의지까지 보유하고 있다.

다만 변화의 흐름은 보인다. ‘강한 1번’은 아니라도 ‘강한 2번’의 활약이 올 시즌 두드러진다. 이날까지 KBO 10개 구단 2번 타자의 평균 OPS가 0.825로 3번 타자들의 기록과 같고, 4번의 0.835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다. 키움 로니 도슨, 한화 요나단 페라자 등 강한 타격에 빠른 발을 겸비한 외국인 타자들이 2번 타순에서 활약 중이다. 리그 타격 1위 두산 허경민도 부상 전까지 고정 2번으로 팀 타격을 주도했다.

LA다저스 무키 베츠는 지난 시즌 1번 타자로 나서 39홈런에 107타점을 기록했다. 올 시즌도 1번 타자로 활약 중이다. 게티이미지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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