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맛의 에스파 vs 달콤한 뉴진스
모두 힙합...색깔은 강렬한 세련미 vs 일렉트로닉+뽕기 완전 달라
에스파 14개 지역 월드 투어...뉴진스 일본서 데뷔 싱글·팬미팅도
‘정통 SM’ 에스파 vs ‘이지리스닝’ 강자 뉴진스. 4세대 걸그룹의 포문을 연 에스파와 바통을 이어받아 걸그룹의 전성시대를 이끈 뉴진스가 마침내 맞붙었다. 두 그룹은 2022년 8월 뉴진스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적이 없다.
이번에는 다르다. 불과 사흘 차이로 컴백했다. 게다가 두 팀 사이에 ‘서사’까지 만들어졌다. 하이브와 내홍을 겪고 있는 어도어(뉴진스 소속사)의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 측 사이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다. 뉴진스 데뷔 프로젝트 당시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민 대표에게 “에스파 밟을 수 있죠”라고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에스파의 리더 카리나는 최근 컴백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도 이슈를 알고 있다”며 “그 그룹(뉴진스) 분들과 음악 방송에서 만났는데 대기실에서 ‘사랑한다’며 서로 하트를 주고받았다. 좋은 동료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K-팝 정복을 위해 나란히 시동을 건 두 그룹은 설상가상 타이틀곡의 장르마저 겹친다. 두 팀의 선택을 받은 장르는 ‘힙합’. 트렌드에 기민한 두 대형 기획사의 선택이지만,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본격적인 선의의 경쟁인 셈이다.
에스파, ‘다중 우주’ 세계관 확장
단단하고 쨍한 보컬, 변칙적 리듬, 분석이 필요한 노랫말.... 에스파의 음악은 누구와도 다르다. K-팝 트렌드가 된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꽉 채워진 사운드로 돌아왔다.
2020년 데뷔한 에스파는 4년 만에 첫 정규앨범을 발매, 보다 확장된 세계관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정규 1집 ‘아마겟돈(Armageddon)’에는 더블 타이틀곡 ‘슈퍼노바(Supernova)’와 ‘아마겟돈’ 등 총 10곡이 수록됐다.
이미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27일 공개된 앨범은 발매도 되기 전 선주문량이 102만장을 돌파했다. 전작 ‘걸스(Girls)’, ‘마이 월드(MY WORLD)’, ‘드라마(Drama)’에 이어 네 작품 연속 밀리언셀러 달성이 예고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에서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25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에스파가 기록한 역대 최고 성적이다. 중국 텐센트뮤직 산하 5개 음원 플랫폼 통합 K-팝 차트 1위, QQ뮤직 디지털 앨범 판매 차트 1위도 기록했다.
무엇보다 미국 빌보드 보다 뚫기 어려운 ‘콘크리트 차트’의 대명사가 된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일간 차트에서 선공개곡 ‘슈퍼노바’는 28일 까지 9일째 왕좌를 지키고 있다. 이전과는 속도·화력 면에서 완전히 달라 에스파 최고의 복귀전이라는 게 대중음악계의 평가다.
이번 앨범에서 들고 나온 세계관의 확장 역시 흥미로운 지점이다. ‘아바타와 동행’을 내건 가상현실을 살다 ‘리얼 현실’로 돌아오더니 이번엔 ‘다중 우주’로 세계관을 확장했다. 앨범의 주제는 ‘나는 나로 정의한다’. 멤버 윈터는 “이번 앨범을 통해 다중 우주로 확장된 세계관 시즌 2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귀띔했다.
세계관이 달라지니 음악도 진화했다. 앨범 곳곳에 ‘SM 색깔’이 묻어난다. 한 마디로 SM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음악이 에스파로 투영된 것이다.
카리나는 더블 타이틀곡에 대해 “‘슈퍼노바’가 깡통 맛이라면 ‘아마겟돈’은 흙 맛”이라며 “조금 더 퍽퍽하고 딥(Deep)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에스파는 데뷔 초부터 일명 ‘쇠맛’으로 불리는 에스파만의 독특한 색깔을 유지해왔다. 카리나 역시 “우리 곡을 이지 리스닝 혹은 하드 리스닝으로 구분하기보다 ‘에스파 음악’이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멤버 지젤은 “보컬과 음악을 합쳐서 들었을 때 강렬한 ‘땅땅’ 소리가 들리지 않냐.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슈퍼노바’는 묵직한 킥과 베이스 라인이 심장을 쾅쾅 울리면서도 미니멀한 트랙 사운드에 독특한 리듬, 캐치한 톱라인(주요 멜로디)이 강렬한 중독성을 보여준다.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사건의 시작을 ‘초신성’에 빗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이 곡을 포스팅하기도 했다. ‘아마겟돈’은 강렬한 신스 베이스 사운드에 올드스쿨 스타일의 힙합 댄스곡이다.
성공적인 컴백 첫 주를 보내고 있는 에스파는 6월 29∼30일 서울을 시작으로 아시아, 호주 등 14개 지역을 도는 두 번째 월드투어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을 만난다.
‘트렌드 아이콘’ 뉴진스, 힙합에 섞인 뽕
‘트렌드 아이콘’인 뉴진스는 이번에도 건재했다. 하이브와 민 대표 사이의 갈등 속에서 나온 컴백이었지만 우려는 기우였다. 10개월 만의 컴백은 매 순간 ‘기록 경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뉴진스가 들고 나온 장르는 ‘힙합’. 에스파보다 3일 앞선 24일 발매한 더블 싱글 ‘하우 스위트(How Sweet)’엔 동명의 타이틀곡과 4월 선공개한 ‘버블 검(Bubble Gum)’, 두 곡의 연주곡까지 총 4곡이 수록됐다.
뉴진스의 이번 컴백은 가요계 안팎으로 주목받았다. 멤버 절반 이상이 아직도 10대인 그룹이 어른들 싸움에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염려 섞인 시선과 달리 뉴진스는 본격적인 컴백과 함께 이전보다 한층 더 성장한 모습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컴백 곡 ‘하우 스위트’는 멜론 일간 차트에서 28일 현재 에스파의 ‘슈퍼노바’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1980년대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 태생의 파티 음악을 기반으로 한 이 곡은 ‘어텐션(Attention)’, ‘하입 보이(Hype Boy)’, ‘디토(Ditto)’ 등 뉴진스의 메가 히트곡을 작곡한 프로듀서 250(이오공)이 만들었다.
음악에서는 250의 색깔이 강하게 묻어난다. 힙합에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더해지고, 여기에 ‘뽕기’가 가미돼 묘하게 힙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누군가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노랫말도 돋보인다. 멤버 다니엘이 참여했다. 뉴진스는 이 곡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인 노래다. 곡, 안무, 스타일링 모두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했다.
새로운 곡은 벌써부터 안무가 인기다. 뉴진스는 데뷔 때부터 각 잡힌 ‘칼 군무’가 아닌 자유분방하게 즐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이번에도 통일성은 주되 멤버들의 ‘느낌 그대로’의 안무를 강조했다.
‘하우 스위트’는 매일 ‘기록 행진 중’이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글로벌 데일리 톱 송’에선 27일 현재 75위에 올랐다. 26일(81위)에 비해 여섯 계단이나 뛰어오른 기록이다. 이 노래는 앞서 25일 138위로 이 차트에 오른 후 ‘매일의 순위’를 경신 중이다.
사실 해프닝도 있었다. 28일 뉴진스의 ‘하우 스위트’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연령 제한 콘텐츠로 분류된 것이다. 하이브는 이에 유튜브 본사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 29일 오전 기준 시청 연령 제한은 해제된 상태다. 조회수는 1000만 뷰를 향해가고 있다.
현재 뉴진스는 왕성한 컴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 봄 대학 축제의 제왕으로 떠올랐다. 고려대(25일)를 시작으로 30일 동국대·세종대, 31일 중앙대 등에서 축제 무대를 이어갈 예정이다. 어도어 관계자는 “일주일 동안 총 7개 대학 축제 무대를 통한 수익금은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6월부터는 본격적인 일본 활동이 예정돼 있다. 뉴진스는 일본 활동을 염두하고 이번 싱글을 내면서, 팝아트 거장인 무라카미 다카시, 스트리트 패션 대부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후지와라 히로시 등과 협업했다. 일본 데뷔 싱글은 6월 21일 발매된다. 이 싱글의 타이틀은 ‘슈퍼내추럴(Supernatural)’이다. 이후에는 6월 26~27일 도쿄돔에서 현지 팬을 대상으로 팬미팅을 연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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