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관측 기록 없는 먼 과거의 ‘지구 기후’가 궁금해요

김정수 기자 2024. 5. 3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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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쫌’ 아는 기자들
나무 나이테·빙하·호수 퇴적물 등 활용
온도계 등 측정기기 발명되기 전부터
수십억년 전 고기후 추정까지 가능해
과학자들이 극지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하기 위한 ‘아이스 코어’ 시추를 준비하는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A. 지구가 곳곳에 남겨둔, 과거의 기후를 읽을 수 있는 자료인 ‘프록시 데이터’가 기상 관측 훨씬 이전의 상황을 대신 말해줍니다.

얼마 전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에 지난해 여름이 2천년 만에 가장 더운 여름이었다는 내용의 연구 논문이 실렸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학교의 과학자들이 중심이 된 연구팀은 이 논문에서 2023년 북반구의 여름 평균 기온이 지난 2천년 사이 가장 서늘했던 536년 여름보다 3.93도나 더 따뜻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연구팀은 어떻게 536년 여름 북반구 평균 기온을 확인해 논문을 쓸 수 있었을까요? 독일의 과학자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가 정밀 온도 측정이 가능한 수은 온도계를 발명한 것은 1714년의 일이거든요. 스웨덴 천문학자 안더스 셀시우스가 섭씨 눈금을 제안한 것은 1742년으로 알려졌지요. 이런 온도계가 지구 곳곳에 널리 설치돼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지구 기온 측정 자료가 쌓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세기가량 지나서입니다. 기후 연구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전지구 기온 관측 자료인 영국 기상청(Met Office) 자료는 1850년부터, 미국 해양대기청(NOAA) 자료는 1880년부터 시작되지요.

연구팀이 536년 여름 북반구 평균 기온 확인할 수 있도록 도운 건 나무의 나이테였습니다. 나이테는 추운 계절에 나무가 느리게 성장한 부분이 따뜻한 계절에 빠르게 성장한 부분보다 짙은 색깔을 나타내면서 만들어집니다. 연구팀은 이렇게 수많은 나무의 나이테에 담겨 있는 기후 정보를 정밀하게 읽어내 평균 기온 기록으로 재구성했던 것이죠.

기후 연구자들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온도계 기록을 대신한 자료를 대리인이란 뜻을 지닌 ‘프록시’(Proxy)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기후 연구에서 ‘프록시 데이터’라는 말은 과학자들의 직접적인 관측을 대신하는 자연 기록물 자료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기온을 관측하고 기록해 온 역사도 짧지만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체계적으로 측정한 역사는 70년도 되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됐다는 미국 하와이 마우나로아산 관측소 측정 기록도 1958년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다 보니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 기후를 재구성해볼 때 프록시 테이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21년 내놓은 ‘제6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과학적 기초)를 보면 과학자들이 프록시 데이터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인 자연 기록물 매체로는 나무, 빙하 얼음, 산호, 꽃가루, 동굴 속의 종유석과 석순, 황토 퇴적물, 호수와 해양의 퇴적물 등이 꼽힙니다. 이런 기록물에 담긴 프록시 데이터를 종합하면 과거 특정한 시기에 나타난 홍수나 가뭄과 같은 일시적인 사건부터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같은 장기적인 변화까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자연 기록물 가운데 언론에 사진이나 영상으로 자주 등장해 잘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아이스 코어’일 것 같습니다. 수백~수천년간 내린 눈이 다져져 만들어진 극지의 빙하를 시추해 뽑아낸 얼음 기둥입니다. 아이스 코어에는 눈 사이에 있던 공기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눈과 함께 다져지면서 만들어진 작은 기포들이 많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공기 방울에서 먼 과거의 대기 속 이산화탄소 농도를 알아내고, 산소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당시 온도를 추정하기도 하지요.

기후변화 연구를 위한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동 그린란드 아이스 코어 프로젝트’(East GRIP)를 통해 확보된 아이스 코어의 일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깊은 바다와 호수 바닥의 퇴적층은 수십억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연 기록물의 기후 프록시 데이터의 보물창고입니다. 이런 ‘퇴적물 코어’에 층층이 발견되는 생물체의 석회질 껍질과 꽃가루에 그 껍질이나 꽃가루가 만들어졌을 당시의 해양 환경과 기후, 식생 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죠.

특히 바닷물 속 탄산칼슘으로 만들어지는 산호의 골격에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장기적인 변화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수온과 같은 환경 변화에 따라 골격의 밀도가 달라지면서 만들어진 것이죠.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해양 퇴적물에서 추출한 고기후 정보로 수백만 년에 걸친 기온, 빙하량, 해수면 높이까지 정량적으로 추정해 냅니다.

인간이 다양한 목적으로 작성한 문서와 자료도 기후 프록시의 출처가 됩니다. 가뭄, 홍수, 서리 내린 날 등이 기록돼 있는 역사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선박 운항일지, 농부의 일기장 등도 과학자들이 과거 기후를 재구성하는데 활용될 수 있지요.

아이피시시는 제6차 보고서에서 “서리, 해빙, 개화일, 작물 수확, 작물 가격, 가뭄과 같은 기후 관련 사건을 설명하는 일기, 연감, 상인 기록 등의 매체는 단기적 고기후 재구성을 지원한다”며 그런 사례로 “중국 학자들과 공무원들의 세심한 기록을 통해 중국의 기후를 기원전 1000년 전 과거, 심지어 그 너머까지 상세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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