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서둘러야'하는 통화정책...하반기 피벗 시점 안갯속
피벗 너무 빨리하면 물가 둔화 느려지고 환율·가계부채↑
늦을 경우 내수 회복세 약화하고 연체율 상승세 지속
“균형적인 정책 결정 중요해”...피벗 시점 불확실성 커져
한국은행이 너무 이르지도, 지나치게 늦지도 않은 통화정책 기조 전환(피벗)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원칙을 인용했다. 물가·환율·가계부채·경기·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국내 경제의 상충적 리스크가 산재하는 만큼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선 보고서는 현재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은 완만한 둔화세를 이어가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은 3% 안팎 높은 수준에서 정체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지난 몇 개월간 커진 공급 충격(농산물 가격 및 국제유가 상승·환율 변동성 확대 등)의 지속성과 파급영향의 불확실성도 커졌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영환 한은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장은 “아직은 공급측 상방압력이 기조적인 물가 둔화 추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면서도 "기대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고 공급 측면의 리스크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너무 이른 기조 전환이 이뤄지면 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가 느려져 목표 수렴 시기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계량모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금리 인하의 물가 영향 정도가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은 경우의 1.5배에 달했고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비(非)근원물가의 근원물가 영향력과 환율의 물가 전가율이 높아졌다.
환율의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피벗 시기와 인하 폭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완화되기 전까지 미국 달러화 지수(DXY)의 강세 흐름과 이에 따른 글로벌 외환시장의 큰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를 작성한 성현구 한은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 과장은 "이처럼 국내외 외환시장의 경계가 고조된 상황에서는 내외 금리차가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환율 변동성 확대는 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를 늦추는 요인일 뿐 아니라 자본 유출입, 국내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 등 금융 안정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계속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가계부채 측면에서는 정책금융 확대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락 등으로 주택 매수심리가 개선되면서 금융권 가계대출이 지난 4월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앞으로 피벗이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면서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특히 금리 수준이 낮을수록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기조 전환 시에 이러한 특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수출은 강한 증가세를 이어가지만, 1·4분기 반등한 소비와 건설투자의 경우 2·4분기 조정을 받는 등 수출·내수간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출 호조는 글로벌 IT(정보기술) 경기 등 대외 요인 덕이지만, 내수 부진에는 고금리·물가의 영향이 상당히 큰 것으로 확인됐다. 통화긴축 기조가 오래 지속되면 내수 회복세가 더 약해져 수출·내수 간 차이가 더 커지고 물가 상승률이 전망 경로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 있다는 뜻이다.
박 팀장은 "2018∼2019년 사례처럼 국내 경기의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대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경기가 빠르게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 과장은 "로마 전성기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를 정책 결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며 "무슨 일이든 너무 서두르면(festina)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반대로 너무 기다리면(lente) 타이밍을 놓쳐 의도한 효과가 약해지기 때문에 균형적 정책 결정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천천히 서둘러라'는 국내외 중앙은행이 앞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하반기 이후 통화정책은 양 측면의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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