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윤곽만 보였던 금성의 활화산, ‘결정적 증거’ 찾았다

곽노필 기자 2024. 5. 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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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1990년대 초반 용암 흐름 직접 증거 발견
금성 표면에서 화산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시프 몬스 지역. 마젤란호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묘사한 그림이다. 나사 제공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인 금성은 태생적 측면에서도 지구와 닮은꼴이다. 지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생긴 암석행성으로 크기와 질량, 밀도, 구성 물질도 지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지구는 인간을 포함해 수백만종의 생물이 살아숨쉬는 생명의 천체인 반면, 금성은 표면온도 460도가 넘는 지옥의 천체가 돼버렸다.

과학자들은 오래 전 대형 화산 폭발이 잇따르면서 수십만년 또는 수백만년 동안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등)가 방출돼 수증기는 날아가고 대기는 뜨거워졌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금성에서 과거나 현재의 화산 활동 흔적을 찾는 것은 금성 탐사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빛을 산란시키는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96%를 차지하는데다 황산 등이 만드는 두꺼운 구름층으로 인해 금성 표면을 관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1990년대 초반 탐사 활동을 벌인 미 항공우주국(나사)의 금성 탐사 궤도선 마젤란호는 구름을 뚫고 들여다볼 수 있는 레이더 장비 덕분에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금성의 표면을 장기간 상세하게 관측할 수 있었다. 마젤란호는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금성 표면의 98%를 관측했다. 이를 토대로 과학자들은 금성 표면의 85%가 화산으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마젤란호가 찍은 사진의 해상도가 낮아 당시엔 구체적인 분석을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10배로 확대해 본 시프 몬스(왼쪽)와 니오베 플라니티아 지형.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용암이 흘러 지형이 변화한 곳이다. 네이처 천문학

하와이 화산 폭발 때와 비슷한 양 분출

이탈리아 단눈치오대 연구진이 최신 분석 기술에 힘입어 30여년 전의 관측 데이터에서 화산 활동이 만들어낸 용암 흐름 흔적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천문학’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발견한 용암 흐름의 흔적은 2군데다. 하나는 방패 모양의 넓은 순상화산인 시프 몬스(Sif Mons)의 산비탈을 따라 흐르는 용암 줄기이고, 다른 하나는 수많은 화산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평원인 니오베 플라니티아(Niobe Planitia) 서쪽을 가로질러 흐르는 용암이다.

금성의 활화산 활동 증거는 지난해 마젤란호 데이터에서 마트 몬스(Maat Mons)의 화산 분출구 크기가 8개월 사이에 두배로 커지고, 용암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변 지형 변화를 발견한 데 이어 두번째다.

하지만 지난해엔 명확한 용암 흐름 흔적을 발견한 건 아니었다. 연구진은 1990년과 1992년 마젤란호가 16개월 간격을 두고 두 지역을 관측한 데이터를 다시 분석한 결과, 이전에는 없었던 밝고 강물처럼 흐른 용암 흔적을 발견했다. 화산 활동의 직접적 증거인 ‘스모킹 건’을 찾아낸 셈이다.

연구진은 “산사태를 포함한 다른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한 끝에 유일하게 합리적 설명이 가능한 것은 용암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용암의 깊이는 3~20m이며 시프 몬스의 용암은 약 30㎢, 니오베 플라니티아 용암은 45㎢에 이르는 양으로 추정됐다. 이는 각각 올림픽 규모 수영장 3만6천개, 5만4천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연구진은 두 곳의 용암을 합치면 2018년 하와이 킬라우에아화산이 3개월간 폭발했을 때 분출된 양(수영장 10만개)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1989년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에 부착돼 있는 금성 탐사선 마젤란호. 마젤란호는 우주왕복선에서 발사된 최초의 행성탐사선이다. 나사 제공

지구처럼 화산 활동 활발한 듯

또 연간 용암이 분출되는 양은 시프 몬스가 25㎦, 니오베 플라니티아가 38㎦로 추정됐다. 이는 지구 화산의 평균 용암 분출량인 연간 26~34㎦와 비슷하다. 연구진은 금성의 화산 활동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활발하며, 현재 금성의 다른 곳에서도 화산 분화가 일어나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금성 대기 중의 화산 분출물 성분 등으로 보아 금성에서 과거에 활발한 화산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 왔다. 워싱턴대 폴 번 교수(행성과학)는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발견으로 금성 대기에서 잠정적으로 검출된 포스핀(수소화인)의 기원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소화인(PH3)은 수소 원자 3개와 인 원자 1개로 이뤄진 물질로 생선 썩은 냄새 같은 악취가 나는 기체다. 지구에서는 주로 혐기성 생명체, 즉 늪처럼 산소가 희박한 곳의 미생물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화산 활동도 포스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전엔 금성에서는 포스핀을 만들기에 충분한 화산 활동이 없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었지만, 이번 발견은 그런 반박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과학자들은 2030년대 초반 발사가 예정돼 있는 금성 탐사선 베리타스(미국)와 인비전(유럽우주국)이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궤도선인 베리타스와 인비전에는 마젤란보다 10배 이상 선명한 영상레이더가 탑재된다.

*논문 정보

DOI: 10.1038/s41550-024-02272-1

Evidence of ongoing volcanic activity on Venus revealed by Magellan radar.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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