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실점' 기록적 난타에도 묵묵히 지켜본 명장의 진심. 에이스는 '도련님'이 아니다 [대전포커스]
[대전=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박세웅)본인은 대전구장 어쩌고 하는데…그러면 안된다. 에이스잖아."
천적 관계로 몰리는 팀, 데뷔 이래 단 한번도 승리해본 적 없는 무대. 하지만 투수 최고 연봉을 받는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라면 그만한 존재감을 보여줬어야했다. 사령탑은 변명도, 핑계도 용납하지 않았다.
롯데 자이언츠 박세웅 이야기다. 박세웅은 28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 마치 홀린듯한 난조를 경험했다.
5회 한이닝에만 무려 5안타에 2볼넷, 몸에맞는볼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닝을 마무리짓지도 못했다. 4⅔이닝 11피안타(홈런 1) 4사구 4개, 10실점(9자책)의 참담한 성적을 남긴 채 교체됐다. 박세웅에겐 2016년 8월 26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3이닝 9실점)을 넘어선 개인 1경기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팀도 3대12로 완패했다.
모양새도 좋지 않았다. 박세웅은 총 112구 중 무려 59구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슬라이더 비중이 무려 52.7%에 달했다. 무려 8구 연속 슬라이더를 연투하기도 했다. 정경배 한화 감독대행은 "박세웅이 정말 좋은 변화구를 던졌는데, 채은성이 참고 밀어내기 볼넷으로 걸어나간 순간이 인상적"이라며 승부처로 꼽았다.
김태형 롯데 감독은 난타당하는 에이스를 묵묵히 지켜봤다. 마운드에 올라 박세웅을 달래거나, 벤치에서 적극적으로 볼배합을 바꾸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소의 지론대로 반박자 빠른 투수교체에 나서지도 않았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29일 만난 김태형 감독은 "책임지라고 내버려뒀다. 150구까지 가더라도 5회 마치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패배로 박세웅의 통산 대 한화전 성적은 17경기(선발 16) 1승9패, 평균자책점 8.51로 치솟았다. 무대를 대전으로 한정하면 승리없이 10경기 8패, 평균자책점 9.00으로 더 올라간다.
하지만 박세웅은 롯데 자이언츠의 토종 에이스다. 최동원-염종석의 계보를 잇는 '안경에이스'에게 변명이나 핑계는 필요없다. 데뷔 11년차, 올해 나이 29세, 선발로만 통산 222경기에 등판한 선수다. '강하게 커야한다' 운운하기엔 이미 베테랑의 반열에 올라있다.
구단이 안긴 5년 최대 90억원의 연장계약은 박세웅의 과거 공헌도 뿐 아니라 미래 가치에 대한 투자다. 그 무거운 왕관을 견디는게 에이스의 숙명이다.
"작년에는 대전 등판이 한경기도 없더라. 말도 안되지. 앞으로는 대전에 (박세웅의)로테이션을 맞출까 싶다. 직구 맞아나가니까 변화구 쓰고, 카운트 싸움이 안되니까 또 변화구 쓰고, 에이스가 마운드에서 그런 모습이 나오면 안된다."
맞대결 상대였던 문동주, 29일 데뷔 첫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한 황준서와는 다르다. 구단의 보살핌이나 위로를 받기보단 앞장서서 이끌어야하는 입장이다.
박세웅 스스로 입버릇처럼 말해온 에이스의 책임감이다. 선발투수의 최고 가치를 승수나 탈삼진이 아닌 '이닝'이라 말하는 그다. 실책이 나왔을 때 실점하지 않고 막아냄으로써 야수를 도와줘야한다고 강조한다. 언제나 더그아웃 맨앞에서 서서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자신의 이닝을 마친 뒤엔 야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소통하는 그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은 박세웅이 그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는 선수가 되길 원한다.
주전 포수 유강남이 옆구리 통증으로 빠지면서 신예 손성빈이 마스크를 썼다. 백업으로 대기한 선수도 서동욱이었다. 둘다 1군 경험이 많지 않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은 포수 핑계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포수 출신이다. 캐칭부터 투수 리드까지, 그 누구보다도 포수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물론 유강남이 패턴이나 스타일을 더 잘 알거다. 하지만 포수 문제는 아니다. 어린 투수 아니고 박세웅이다. (포수가 어리면)본인이 리드해서 가야지. 슬라이더 연투? 할수도 있다. 그럼 자신감있게 존에 던져서 결과를 봤어야한다. 자신감이 없어서? 에이스는 그래선 안된다."
박세웅은 오는 6월 2일 부산 NC 다이노스전까지 주 2회 선발등판을 소화해야한다. 찰리 반즈가 부상으로 빠지고 김진욱-이민석이 선발진에 추가된 상황. 박세웅의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다.
대전=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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