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미술관을 품은 KAIST
KAIST 산업디자인과 2학년 때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안내서를 보니 꼭 가봐야 할 곳으로는 여러 곳이 있었지만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곳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작품이었던 모나리자 그림은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했다. 인류 대대로 보존해야 할 중요한 예술작품이 인간에게 주는 존재의 가치는 매우 높다는 걸 실감했다.
내가 태어난 1976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 GDP는 725달러였다. 이번 봄 학기 내 수업에 늘 맨 앞줄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제자는 GDP가 2만 달러인 2005년에 출생했다. 그리고 작금의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2000달러가 훌쩍 넘는 잘사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젠 과학도 중요하지만 예술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살만한 시대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카이스트인들은 대전에 살면서 과학기술이야말로 개인의 행복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꿈꿀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ChatGTP4o를 일상에서 사용하고, 강의실 안에서 학문적 소통도 하고 캠퍼스 문화를 공유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지, 과연 저 친구가 나에게서 뭔가를 정말 배울게 있긴 한가 늘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나의 심정을 ChatGPT가 눈치라도 챈 모양이다. 나와 제자 간 국가 경제적 상황은 '27'배라고 구체적으로 일러주었다. 얄밉도록 영리한 인공지능 같으니라구.
성장 환경의 경제적 상황은 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세대는 실용성이나 효율성에 방점을 두지만, 내 제자가 속한 MZ 세대는 개인의 행복과 삶의 즐거움이 중요한 가치라고 한다. 미술관이 MZ 세대의 핫플로 성장하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다.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자 트렌드를 읽고 있다는 자존감을 선사하는 공간이 아니겠는가. 미술관이 어느덧 MZ 세대의 성지가 돼 방문객의 과반이 넘는 미술관도 많다고 한다.
현재 KAIST에 건립 중인 미술관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는 첨예한 대비를 보여준다. 우선 과학기술에 매진해야 할 국가적 사명으로 임해야 할 사람들이 한가하게 그림 감상을 하고 있어선 안 된다는 말도 있다. 미술관 건립비용은 기부금으로 충당함에도, 미술관을 지을 예산으로 고가의 분석 장비를 구입해서 연구 성과를 하나라도 더 내야하지 않겠냐고도 한다.
반면, 건립비용에 보태라며 거액을 기부하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을 기증받을 수 있도록 인맥을 총동원해 앞장서는 분도 있다. 미술관을 개관하고 전시를 기획해 공간을 운영해야 하는 미술관장으로서 다양한 관점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것은 성장의 가능성이며 다른 생각을 개진하는 것은 그 조직이 건강하다는 증빙이다. 무엇보다도 KAIST 의 발전과 구성원의 행복을 위하자는 마음은 매한가지다.
KAIST 미술관은 약 4년 전 이광형 총장의 추진으로 출발했다. 미술관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넘어, 각자의 성장 배경과 경험에 따라 형성된 가치관이 충돌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충돌은 갈등을 일으키지만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창의성과 혁신을 촉진할 것이다. 미술관을 품은 KAIST는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날 것이다.
열린 창으로 싱그러운 오월의 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지난 5월 캠퍼스에 설치된 한진섭 작가의 작품, 생생이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 뿜어 초목들의 갈증을 풀어 주는 것 같다. 오늘도 생생이를 사랑하는 카이스트인들의 감성이 한 뼘 더 자란 것 같아 뿌듯하다.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씩 떠오른다. 피카소, 뭉크, 르누아르, 김홍도, 모네, 백남준, 클림트, 이중섭, 한진섭….
우리 KAIST 미술관도 세계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길 꿈꾸며. 석현정 카이스트 교수 겸 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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