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청 개청] 인구 50만 툴루즈는 어떻게 프랑스 우주산업 중심이 됐나

이병철 기자 2024. 5.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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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 계획으로 우주항공 산업 육성
앵커기업과 협력 기업 870여 곳 입주
위성 기술에 특성화해 전략적 육성
국제학교 만들어 직원 이주 돕기도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도시 툴루즈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우주항공 산업의 중심지다. 한때 풍부한 철광석을 바탕으로 철광도시로 성장했으나, 지금은 프랑스 국립우주센터(CNES), 양대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과 에어버스를 중심으로 현대 항공우주산업을 선도하는 도시가 됐다. 우주항공청이 들어서는 경남 사천도 한국의 툴루즈를 표방하며 우주경제 7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툴루즈에서 일했던 한국 우주 스타트업 대표에게 우주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한 비결을 알아봤다.

프랑스 남부 지역의 도시 툴루즈에 있는 에어버스 조립 공장에 2011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방문해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툴루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우주항공 클러스터인 '에어로스페이스 밸리'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우주항공 산업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AP연합뉴스

국내 우주 스타트업인 텔레픽스의 조성익 대표는 “툴루즈는 프랑스가 국가적으로 우주항공 산업을 육성하면서 다양한 업체들이 모여든 도시”라며 “발사체, 위성 제작은 물론 우주 서비스 기업들까지 다 모였다”고 말했다. 2019년 설립된 텔레픽스는 전 세계 야적장을 촬영한 위성 영상을 분석해 원자재 공급을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사 설립 전에 조 대표는 2007년부터 2008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두 차례 위성 제작을 위해 툴루즈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툴루즈는 인구가 약 50만명으로 한국으로 치면 포항과 비슷한 규모이다. 다만 경제 규모는 프랑스 남서부에서 가장 크고, 전국적으로 따져도 5위권 내에 드는 대도시다. 2차 대전 당시 공군 기지가 있었던 덕분에 전쟁이 끝난 이후 프랑스 정부가 전략적으로 툴루즈를 우주항공 산업도시로 육성했다.

기업들이 모여들면서 도시는 한층 더 성장했다. 툴루즈에는 현재 870여 항공우주 기업이 있다. 조 대표는 “당시 툴루즈에서 일하던 프랑스인들은 파리에서 태어나 공부하다가 직장 때문에 이주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외국인들도 많았으나 툴루즈 출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툴루즈의 성장 배경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에어버스는 툴루즈 우주항공산업을 주도하는 앵커기업이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프랑스 정부다. 일부 위성 기업도 프랑스 국영 기업으로 설립돼 CNES와 밀접한 협력을 통해 산업을 성장시켰다. CNES가 정부 사업을 추진하면 에어버스가 장비 설계를 맡고, 협력 업체를 통해 부품을 제작해 조립하는 방식이다. 성능 시험을 전담으로 하는 업체들도 툴루즈에 있어 대부분 과정이 도시 안에서 이뤄진다.

조 대표는 “사천에도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협력 업체가 포진하고 있어 기업 구성에서 툴루즈와 큰 차이가 없다”며 “KAI가 에어버스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부품 업체와 조립, 시험 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우주기술을 상업화하기 전에 발사 경험을 통해 신뢰성을 인정 받는 ‘헤리티지(heritage, 우주검증 이력)’ 문화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새롭게 개발한 장비를 정부 사업으로 발사해 헤리티지 확보를 돕고 있다.

영국의 위성 인터넷 기업 '원웹'의 위성 생산 공장. 원웹은 프랑스 기업과 협력해 위성을 개발하고 있다. 생산 공장도 툴루즈에 설립했다. 툴루즈에는 원웹 같은 위성 기업이 모여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산업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원웹

툴루즈의 우주항공 산업체는 ‘에어로스페이스 밸리(Aerospace Valley)’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도시 전반에 퍼져 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우주항공 산업 단지인 셈이다. 에어로스페이스 밸리에서는 우주항공 산업 모든 분야를 다루기도 하지만 특히 위성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 특성화를 통해 전문성을 높인 것이다.

우주 산업은 크게 위성 제조, 발사, 운영, 서비스 분야로 나뉜다. 위성의 제조와 발사 영역은 업스트림(Upstream)으로 분류하며, 다운스트림(Downstream)은 우주로 발사된 위성이나 발사체 운영과 여기서 나온 데이터를 서비스하는 부문이다. 툴루즈는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을 모두 갖고 있다.

에어버스는 영국 위성 인터넷 기업인 원웹과 합작 회사를 설립해 툴루즈에서 위성을 제작하고 있다. 프랑스 통신사 오렌지 그룹과 위성 기업 유텔셋,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는 툴루즈에서 공동으로 고성능 위성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위성을 제작하고 발사하는 업스트림 산업의 모든 과정이 한 곳에서 이뤄진다. 위성에서 수신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운스트림 산업도 활발하다. 에어버스의 자회사인 DS 지오는 위성 영상을 활용한 지구 관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기업이 위성 서비스를 이용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툴루즈가 우주항공 산업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던 비결이다. 외부에서 우수한 인재가 모여드는 곳인 만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국제학교도 마련해 교육 문제도 해결했다. 조 대표는 “프랑스가 아닌 영어권 국가에서 온 직원들의 자녀는 대부분 국제학교를 다녔다”며 “교육·주거 환경이 우수하다는 점이 툴루즈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우주항공청이 들어서는 경남 사천은 한국을 대표하는 우주항공 산업 단지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인프라, 정주여건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으나 거제도가 세계적인 조선업 도시로 성장했던 것처럼 사천도 산업도시로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사천시

우주항공 산업을 육성하기 전에도 큰 도시였던 툴루즈와 달리 경남 사천은 인프라(기반 시설)와 정주여건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사천을 툴루즈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물론 정부 지원과 산업계의 노력이 지속된다면 툴루즈에 버금가는 도시로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다.

조 대표는 “거제도도 조선업이 호황이던 당시 큰 발전을 이뤄내며 세계적인 조선업 도시로 성장했다”며 “이미 국내에 우수 사례가 있는 만큼 사천이 툴루즈 같은 산업 도시로 성장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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