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청 개청] 우주항공 전문가 6人 “우주항공청에 바란다”
발사체·위성 아닌 의약·농업 키워야
현장 의견 들어야…적극적인 소통 필요
지난 27일 우주항공청이 문을 열고 공식 업무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민간 주도의 우주개발인 뉴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접어드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한국판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도 불리는 우주항공청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떤 혁신과 노력이 필요할까. 조선비즈는 우주항공 분야의 산·학·연 전문가들에게 우주항공청의 성공을 위한 조건을 들었다.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전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
“우주항공청이 생기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예산이다. 우주 개발할 때 예산을 몇 년에 얼마씩 받으면 딱 그것만 써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못 쓰면 못 쓰는 대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계획이 세워지면 그 계획대로 몇 년 동안 가야 하는데, 우주 분야는 장기 과제가 많아서 (유연하지 않은 예산 집행이) 힘들었다. 우주항공청이 출범하면 예산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연구개발(R&D)과 평가의 연결성도 중요하다. 이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한국연구재단에 평가를 맡기다 보니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과기정통부, 연구재단이 따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우주항공청이 직접 과제를 관리하고 평가도 해서 R&D와 평가가 일관성있게 잘 연결되기를 바란다.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평가 같은 부수적인 일에 시간을 뺏기지 않길 바란다.”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
“우주항공청의 주 역할은 민간 분야를 육성하는 것이지 않을까. 민간 우주 산업을 육성하려면 반드시 기업이 해외에서 사업을 수주해야 한다. 우리가 브라질 발사장을 구할 때, 민간 기업이 직접 브라질 우주청을 상대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 해외 협력을 할 때 우리 우주청이 상대 국가 우주기구의 카운터파트로 나서서 국가 간 협력의 틀에서 협의를 진행할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민간 입장에서는 다양한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인데,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다 보니 독자적으로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주청이 전면에 나서서 기업들을 도와주면 좋겠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지금까지는 국가 R&D 체제를 바탕으로 우주 개발을 했다. 국가 사업에 따라 장비를 개발하고 운영을 하다보니 실용적이지 않았다. 우주항공청을 만든다는 건 우주 기술 개발을 실용적으로 하겠다는 건데, 그러려면 당연히 새로운 비전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7대 우주경제 강국을 제시했지만 세부적인 전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국은 ‘스페이스 이니셔티브(Space Initiative)’, 중국은 ‘우주 굴기(崛起·우뚝 일어섬)’ 같은 가시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우리도 어떤 우주 선진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보여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와 계층을 통틀어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과거 국가 R&D 체제에서 만들어진 4차 우주개발진흥계획도 보완이 필요하다. 더 확장된 비전과 목표를 담아야 한다.”
◇김민석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상근부회장
“뉴스페이스는 단순히 발사체나 위성을 만드는 걸로 끝이 아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우주 경제다. 10년 후면 달이나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다. 사람을 화성으로 보내는 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지만, 건축이나 식량, 자원 채굴 같은 분야에서는 한국도 최고가 될 수 있다. 발사체 기술에서 한국은 미국보다 18년쯤 뒤처져 있지만, 전체 우주 경제에서 발사체 시장은 5% 미만이다. 우주 경제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게 뭐고,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항공산업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국내 항공산업은 지난 40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고, 생산 품목이나 체제도 비슷하다. 그만큼 낙후됐다는 이야기다. 항공산업의 제조 공정을 현대화할 수 있는 핵심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차세대 기술인 도심항공교통(AAV) 기술에 선제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AAV 시장이 3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 10%만 확보해도 3000억달러의 가치가 창출된다. 인력 확보 방안과 인프라, 제도 개선 방안도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성문 우주로테크 대표
“우주항공청은 그동안 분산돼 있던 역할과 기능을 한 곳으로 모으는 만큼 쉽게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산업계와 연구계, 우주 분야의 여러 주체를 잘 묶어줄 수 있는 중심이 되길 바란다. 그동안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인력이 정해져 있다 보니 업무가 과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우주청은 열린 태도를 가지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연구 기회를 제공해주면 좋겠다.”
우주청에 대한 쓴소리도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우주 분야의 한 연구자는 우주청이 국내 우주 분야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다양한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우주청도 성공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자의 이야기다.
◇익명의 우주 분야 연구자
“미국이나 중국처럼 우리도 우주 분야의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국내에 유일한 싱크탱크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산하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였는데 6월 말로 사라진다.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가 내는 목소리가 값진 내용인데 이런 의견을 우주청을 만들면서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것 같다. 우주청을 만들면서 국내 우주 분야 연구자들의 의견을 정부가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주청은 출범하면서 언제, 어디에서 할지만 정해놓고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모아야 한다.
우주청이 챙겨야 할 분야도 다양하다. 위성이나 발사체 말고 오히려 답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 의약 분야가 대표적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머크 같은 굴지의 글로벌 제약사가 우주 의약 분야를 파고 있다. 우주 분야의 매출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이 의학과 제약에서 나올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나사는 종합연구소다. 우주 음식, 우주복, 우주 농법, 건설, 심리학, 의약을 다 하니까 여러 기관과 협력도 많이 한다. 우주청도 이런 역할을 하려면 범부처 협력이 필요하다. 과기정통부는 우주 의약이나 우주 농법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우주청은 이런 분야에 힘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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