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역할 최선..후배들 위해 할 일 있어” KT행 오재일이 보인 ‘베테랑의 품격’
[잠실=뉴스엔 글 안형준 기자/사진 표명중 기자]
베테랑 오재일이 이제는 '마법사'로 커리어를 이어간다.
KT 위즈는 5월 28일 밤 삼성 라이온즈와 트레이드를 전격 단행했다. 방출까지 요구했던 박병호를 삼성으로 보내고 오재일을 영입했다. 오재일은 29일 서울로 올라왔고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전을 준비하는 1군 선수단에 합류했다.
두산전에 앞서 새 유니폼을 입고 취재진을 만난 오재일은 "(트레이드는)어제 늦게 알았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트레이드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 끝나고 부랴부랴 짐을 싸고 오늘 아침에 올라왔다"며 "오늘 합류해서 운동까지 하고 인터뷰를 계속 하고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고 웃었다. 갑작스러운 이적에 얼떨떨하다는 것.
오재일은 "기분도 잘 모르겠다. 이게 잘 된건가 잘 안된건가도 잘 모르겟다. 정신이 없다"며 "그래도 가족들이 모두 당황스러운 가운데도 괜찮다고 잘 가게 된 것이라고 말해줘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오재일은 2020시즌을 앞두고 삼성과 4년 50억 원 FA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오재일은 계약 첫 2시즌은 준수했지만 지난해 106경기 타율 .203/.302/.356 11홈런 54타점으로 부진했고 올해도 22경기에서 .234/.296/.484 3홈런 8타점으로 아쉬운 성적을 쓰고 있었다. 대형 FA 계약까지 맺은 입장에서 성적 부진으로 팀 내 입지가 좁아진 끝에 트레이드 된 것인 만큼 당연히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제대로 남겼다. 28일 대타로 출전해 홈런을 기록하며 삼성에서의 마지막 홈 경기, 마지막 타석을 홈런으로 마친 것. 오재일은 "그 때는 트레이드 사실을 몰랐다. 그 순간에는 정말 그냥 삼성 선수로 기뻐했었다"며 "그래도 마지막에 홈런을 쳐서 팬들께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 같아서 좋다"고 웃었다.
삼성 동료들과도 아쉬운 작별을 했다. 오재일은 "(박진만)감독님은 '개인적으로 기회일 수 있으니 가서 잘하고 다치지 말라'고 격려해주셨다. (강)민호 형, (오)승환이 형, (구)자욱이 등과 어제 짐싸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미팅에서 작별인사를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조금씩 이야기를 했다. (원)태인이한테는 '조심해라, 얼마나 컸는지 보겠다'고 말하고 왔다. 삼성 선수들에게 새로운 친구 잘 부탁한다고 하고 왔다"고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지만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오재일은 KT에서 등번호 40번을 사용한다. 외국인 투수 데스파이네가 사용한 뒤 비어있던 번호다. 오재일은 "남은 번호가 몇 개 없었고 그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나중에 더 좋아하는 번호가 생기면 바꿀 것이다"고 말했다.
유니폼을 바꿔입은 박병호는 1986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또 2005년 신인 드래프트 동기 사이기도 하다. 오재일은 "어제 (박)병호와 긴 전화 통화를 했다"며 "솔직히 제일 친한 친구인데 친구끼리 트레이드 되니 웃기다는 말을 했다. 병호가 자기 때문에 내가 갑자기 팀을 옮기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괜찮다고, 서로 가서 자기 자리에서 잘하면 둘다 잘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유니폼을 바꿔입는 두 동갑내기 친구는 '윈-윈'을 다짐했다.
아쉽게 삼성을 떠나게 됐지만 오재일은 긍정적인 쪽으로 마음을 먹기로 했다. 오재일은 "아무래도 좀 타격이 안되는 시기가 있었다보니 환경이 바뀌면 더 잘되는 효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입지는 불안하다. 박병호의 입지를 그대로 물려받는 오재일은 교체 멤버로 KT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강철 감독은 문상철을 1루수 주전으로 이미 낙점한 상황. 오재일은 "주전 자리를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한 타석 한 타석 내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좋은 결과도 나오고 결과가 좋다보면 경기에도 많이 나갈 수 있는 것이다"며 "경기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내가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오재일은 "나는 야구를 굉장히 재밌고 즐겁게 하는 사람이다. 얼굴 표정이 늘 밝은 사람이다. 하지만 최근 좀 야구가 안되다보니 지쳐있었던 것 같다. 이제 팀이 바뀌었으니 다시 더 재밌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후배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그런 역할을 열심히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며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 KT도 이제 올라갈 것이다. 이제 우승을 할 것이다. 난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운이 좋은 사람이다"고 웃었다.
현재의 입지에 불만을 갖기보다는 기량이 하락한 노장의 현주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옛 명성에 집착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후배들을 돕겠다는 '베테랑의 품격'이 느껴졌다.
어려운 상대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도 있었다. 오재일은 "쿠에바스가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싫었다. 몇 년째 보면서 계속 싫었는데 이제는 같은 팀이 됐다. 너무 좋다. 벤자민도 싫었다. 벤자민에게는 그랬다고 얘기를 했는데 쿠에바스에게는 아직 말을 못했다"며 "이제 같은 팀이라 너무 든든하다"고 활짝 웃었다.
오재일은 "삼성 팬들이 3년 동안 야구장 안팎에서 너무 많은 관심과 응원을 주셨다. 3년 전 처음 대구에 갔을 때도 정말 많이 환영해주셨고 이번 트레이드에도 아쉬워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내 인생에서 잊지못할 3년이다. 항상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야구를 할 것이다"며 "이제 KT에 합류했으니 KT가 우승하는데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삼성과 KT 팬들에 대한 감사와 인사를 전했다.(사진=오재일)
뉴스엔 안형준 markaj@ / 표명중 ace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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