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 “서울대 출신 보좌관 父 식물인간→암투병 별세” 그리움에 울컥(유퀴즈)[어제TV]

서유나 2024. 5. 30. 05: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뉴스엔 서유나 기자]

배우 김무열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했다.

5월 29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 246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특집에는 '범죄도시4'로 천만 배우에 등극한 김무열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김무열은 육상을 하다가 한 선배에게 "안양예고에 가면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안양예고에 가기 위해 연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밝혔다. 하지만 아버지는 공부를 통해 다른 길로 가길 바라셔서 "아버지 몰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연기 학원을) 2년 정도 다녔다"고.

김무열은 "아버지가 학교는 서울대 정치학과 나오시고 국회의원 보좌관을 오래 하셨다. 되게 엄한 분이셨다. 어렸을 때는 공부를 좀 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안양예고를 가고 싶다고 하고 연기 배우는 걸 말씀 못 드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입학 쯤부터 김무열의 집안 사정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김무열은 "어머니께서 상가 분양 관련한 사기를 당하셔서 여러가지 일이 겹치며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 살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쳐 빨간 딱지를 붙이기도 했다"며 "예를 들어 제가 대학로에 나가야 하는데 광명에서 대학로까지 버스, 전철을 타야 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이웃들에게 돈을 빌리실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비극은 이뿐만 아니었다. "아버지가 제가 20살, 21살에 사고로 쓰러지셨다. 어떤 사고를 당하신지는 혼자 계셔서 모른다. 다치신 채로 발견돼 경찰차를 타고 병원까지 갔다. 그때 갔는데 아버지가 머리를 밀고 다 누워 계신 거다.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계시다가 암이 발견돼 가족이 또 아버지 암 치료를 계속 수발을 해야 됐다"고.

김무열은 "항상 실려가고 또 병원 가고 그런 걸 반복하다 보니 제가 저희 집 장남으로서 계속 '강해져야 한다. 내가 굳건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심지어 성균관대 연기과에 입학했지만 생계를 책임지느라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사연도 공개했다.

그는 "집안이 힘들어지다 보니 등록금 내는 일이 부담이 되잖나. 또 등록금 외에도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돈이 많이 생기잖나. 그런 게 부족한 시기였다 보니까 학교를 휴학하고 알바를 계속 했어야 했다. 일용직 노동, 휴대폰 공장, 각종 행사, 건물 경비 기억 안 날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가장 특이했던 일이 카포에라라는 무술을 오래 했는데 보디포인팅 한 채로 카포에라 공연을 하면 수입이 짭짤했다. 영종도 공항 기념 행사, 지역 축제, 지방 대학교 축제에 보디페인팅하고 공연을 했다. 배달 알바나 개업하는 가게들이 전단지와 볼펜을 많이 돌렸잖나. 그 알바하고 신문 돌리는 것도 하고 찹쌀떡도 떼어다 팔았다"고 밝혔다.

이어 "일이 늦게 끝나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데 길이 꽤 길었다. 그 길이 저에게 연기할 시간이었다. 만약 걸어오는 시간이 한 시간이면 혼자 소리내 노래하고 대사 치고 사람 없는 공터나 산에 가서 노래 연습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유일한 현실에서의 탈출구였던 것 같다"고 고백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김무열은 아버지에 얽힌 뭉클한 일화도 전했다. 힘든 시기 아버지께서 동네 슈퍼에서 아들 자랑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김무열은 "제가 연기를 하는 것을 선뜻 허락을 안 해주셨던 분이셔서 항상 아버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컸다. 그러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같이 겪은 것 같다. 아버지가 주변에 제 자랑을 그렇게 하셨다고 얘기하시는데 그게 너무 슬프다. 그때도 저희 집이 어려웠을 때고 산동네 판자촌에 살 때였는데 그때 제가 TV 드라마에 나오게 됐다. 동네 사람들한테 '우리 아들이 TV에 나온다'고 자랑하셨다더라. 슈퍼 아주머니나 세탁소 아저씨에게 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열은 "제가 서른 초반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마지막에 워낙 힘들어 하셔서 장례식장에서도 이러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혼자 정신을 잃을 뻔한 적이 있다. 친구가 괜찮냐며 잡고 있더라"면서 "그때가 참 제 인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닥쳤던 때 같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안겼다.

요즘 특히 아버지 생각이 난다는 김무열은 "이번에 영화가 천만 관객분들이 보실 정도로 성공을 하고 작년엔 제가 아들도 보게 되어서 그게…"라고 말하다 울컥 눈물을 보였다.

그는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아버지가 어디가서 제 자랑을 하시면 제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은데 곁에 안 계신다는 게…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이거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난다. 무의식적으로 아들 보면서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땠겠다'라는 말을 하게 되더라. 항상 생각이 든다. '손주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는. 아버지가 연세 있을 때 저희를 보시고, 저희 어렸을 때 좋아하고 예뻐해 주셔서 아들을 보니까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고 더 많이 생각나더라"고 토로했다.

김무열은 "이 단어를 이렇게 소리내서 이야기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는 걸 오늘 깨달은 게 너무 미안해 아빠. 곧 있으면 손주 돌이고 잘 크고 있다. 저희도 잘 있고. 잘 있죠? 보고 싶습니다"라고 아버지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뉴스엔 서유나 stranger77@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